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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Apr 30. 2024

아이들은 신나고 선생님들은 파김치가 되는 운동회날

일 년에 두 번 크게 운동회를 한다. 보통은 소체육대회라고 해서 어린이날 기념으로 작게 한 번, 그리고 가을 대운동회라고 해서 날 좋은 가을날 크게 한 번 한다. 어쩌면 이렇게 초등학교는 행사가 끊이지 않는지 나도 참 신기하다. 지난주에는 과학의 달을 맞이해서 과학체험한마당을 했다. 아이들은 또 신이 난다. 내가 근무하는 학교는 서울시 안에서도 손꼽히는 큰 학교라서 대부분의 행사가 이틀에서 사흘 정도로 여러 날에 걸쳐서 진행이 된다. 과학체험한마당도 무려 사흘에 걸쳐서 진행이 되었다. 아이들이 신나게 16개 정도 되는 부스를 돌아다니며 체험을 하는 동안 선생님들은 아이들이 혹여라도 다치지 않는지 수시로 돌아보고 가능한 많은 활동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함께 다니는 모둠원들이 기분 좋게 다닐 수 있도록 계속 돌아다닌다. 그날도 매우 힘들었다.


하지만 더 큰 행사가 기다리고 있으니 바로 소체육대회날이다. 학급별 체육이 아니라 학년별 체육으로 진행하기 때문에 조금 더 많이 신경을 쓸 수밖에 없다. 작년에는 긴 줄넘기와 제기차기를 했는데 올해는 제기차기는 그대로 살리고 다양한 종류의 원투피구를 하기로 했다. 제기를 처음 차 보는 아이들은 당황스럽다. 나는 어릴 때 동생 덕에 제기를 좀 차 봤다. 동생처럼 열몇 개씩 찰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여섯 개 정도는 찰 수 있다. (참고로 동생은 여동생...) 대부분 한 개에서 많아야 두 개를 차는데 가끔 네 개, 다섯 개 차는 아이가 나오기도 한다. 10개 반 평균 25명이니까 250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모두 제기를 차고 있으면 그 흙먼지가 정말로 장관이다. 어우.


한바탕 제기를 차고 나서 이제는 본격 피구 타임이다. 이 시간을 위해서 피구를 조금 연습했는데 닷지비와 바운드 피구는 조금 낯설어서 아직 손에 덜 익었다. 큰 원 속에 한 반이 수비팀이 되어 들어가고 다른 반은 공격팀이 되어 밖에서 둘러싼다. 잘하는 한 명만 계속 던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던진 아이는 자리에 앉는다. 그렇게 전체가 다 앉게 되면 다시 일어나서 시작이다. 잘하던 못하던 한 번은 던져 보고 다양한 변수가 등장하니 나로서는 맘을 덜 졸이게 된다. 체육 시간은 체육을 잘하는 아이와 못 하는 아이 사이에서 늘 명암이 갈리기 때문이다. 잘하는 아이들이 많다는 4반과의 경기에서는 이겨서 행복했고, 꼭 이겨야 한다고 이를 갈던 8반과는 무승부, 그리고 나머지 해 볼만할 것 같았던 다른 두 반과는 모두 졌다. 


다들 다른 반을 이기려고 어찌나 열심히 했는지 나올 때만 해도 좀 추운 것 같았는데 지금은 얼굴이 벌게지고 나도 이젠 덥다. 추워도 그냥 반팔 입고 있기를 잘했다. 마지막 라운드를 하려고 하는데 이미 시간이 넘어버렸다. 아쉽게도 마지막 반과의 대결은 하지 못하고 여기서 끝내야 한다. 체조를 하기 전 마무리를 지으려고 반별로 길게 섰다. 부장님이 마이크를 들고 마무리를 하신다. 1반부터 물어본다. "1반! 다친 사람 있나요?" 했더니 아무도 없단다. "안 다치고 잘 한 1반에게 박수!" 이렇게 차례로 돌다가 우리 반 차례가 되었는데 ㅇㅇ이가 크게 외친다. "마음이 다쳤어요!" 그러자 부장 선생님 왈, "마음이 다친 친구는 속상하니까 다음에는 피구를 안 하도록 합시다!" "아니, 아니에요! 마음 안 다쳤어요!" 장난 한 번 치려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우리 ㅇㅇ이. 나와 아이들은 깔깔깔 웃었다. 


열 개 반 아이들이 운동장에서 열나게 피구를 했으니 그 먼지는 정말로 상상하기도 싫다. 그나마 마스크를 껴서 버틸 수 있었다. 5교시는 꿀 같은 귀한 교과 시간이지만 교실로 올라오니 이미 10분이 지났다. 오늘을 위해 아이들에게 줄 아이스크림도 사놨는데 먹고 한숨 돌리면 교과 수업은 하나마나다. 일단 아이들 입에 아이스크림을 물려주고 잠깐 숨 돌리는 사이 영어 선생님께는 그냥 수업 쉬시라고 메시지를 보낸다. 잘 되었다. 아까 국어 활동을 다 못 했는데 남은 20분간 국어 게임을 하겠다고 아이들을 살살 꼬셨더니 다들 좋단다. 놀이를 가장한 토론 수업을 하고 나니 나는 또 진이 빠져버렸다. 그냥 교과 선생님 오시라고 할 걸 그랬나 살짝 미적지근하게 들러붙으려는 미련을 밀어낸다. 


자잘한 모래 먼지가 온몸에 달라붙어 몸이 따끔따끔 간질간질하지만 아이들이 즐겁다면 되었다. 하루니까. 거기에 내일은 자율휴업일이라서 아침 일찍 일어나지 않아도 되니까 그 부분이 참 좋다. 이번 어린이날 선물로 일기를 면제해 줄 생각인데 아마도 아이들은 아직 모르니까 열심히 오늘 일을 일기로 쓰고 있을 것이다. 4월의 괜찮은 마지막 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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