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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y 21. 2024

날이 더워서 우는 거니....

ㅎㅅ는 눈이 커다랗고 피부가 하얗고 약간은 통통한 귀여운 여자아이다. 지난주 수학 단원평가를 보는 날 결석을 하는 바람에 따로 시험을 보았다. 앗, 그런데 두 문제를 못 보았는지 풀지 않고 제출했다. 쉽다고 자신 있게 말했는데 급하게 풀었는지 하나는 또 실수를 하는 바람에 90점 이하가 되어 버렸다.


못 푼 시험지를 보았을 때, 속으로 '이거 빨리 다시 풀라고 이야기할까' 마음에 갈등이 있었다. 그런데 그때 마침 자리에 없었고 아이들에게 시험지를 나누어 주어야 하는 때가 되었다. ㅎㅅ에게 "여기 두 문제 못 봤나 봐. 그 아래는 다 풀었는데 아쉬워서 어쩌니."하고 돌려주었다. 사실 성적표에 들어가는 수행 평가도 아니고 아주 못 본 것도 아니니까 괜찮겠다고 여겼다. 그리고 이미 시험지 제출을 완료한 상태에서 다시 돌려주면서 풀라고 하는 것도 형평성에 어긋나겠다는 생각이었다.


시험지를 받을 때까지만 해도 괜찮았던 아이는 갑자기 대성통곡을 하면서 눈물을 그치지 않았다. 마침 과학실에 가야 하는 시간. 다른 아이들은 다 과학실로 가고 ㅎㅅ는 남아서 그러고도 20분 넘게 흐느껴 울었다. 이쯤 되니 슬슬 걱정이 되었다. 진정이 된 것 같아 물어보니 다시 크게 울기 시작한다. 다시 기다렸다. 한참만에 울음을 그친 아이는 "엄마가 기대를 많이 하셨는데...." 하면서 다시 또 눈물을 터트렸다.


아.... 그러니까 엄마에게 자랑스럽게 100점 맞은 시험지를 보여드리고 싶었고, 엄마도 기대를 하셨는데 그 기대에 못 미치게 되었으니 마음이 속상하기 그지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아이의 성품으로 보나 상담 때 통화한 어머니에게서 오는 느낌으로 보나 ㅎㅅ의 어머니는 아이가 시험을 못 봤다고 야단치실 분이 아니다. 그래서 일부러 과장되게 물어봤다. "ㅎㅅ가 시험 못 보면 엄마가 막 야단치셔? 왜 백점 아니냐고 그러셔?" 아이는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그럼 괜찮아 ㅎㅅ야. 오히려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해. 선생님 딸 있잖아. 고1 언니. 그 언니는 시험지 답안을 다 밀려 써서 시험을 완전히 망쳤어. 그런데 이건 성적에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ㅎㅅ가 엄청 못 본 것도 아니고 딱 2문제 못 봐서 못 푼 거잖아. 이렇게 겪어 봤으니까 다음에는 이런 실수하지 않고 잘할 수 있을 거야."


그래도 서러운 ㅎㅅ는 조금 더 울다가 과학 시간이 거의 끝날 때가 되어서야 마음을 진정하고 운동장으로 나갔다. 오늘은 연차시라서 2시간 이어서 수업을 하기 때문이다. 걱정되는 마음에 전화를 드렸더니 ㅎㅅ의 어머니는 오히려 화통하게 웃으시며 "걔가 눈물이 정말 많아요. 그래서 매년 담임 선생님들이 당황하셔서 전화를 주세요. 아마 앞으로도 몇 번 더 있을 거예요. 놀라지 마세요 선생님!"이라고 하셨다. 아아, 아이고 다행이다. 정말로. 물론 ㅎㅅ의 그 여린 마음과 엄마를 기쁘시게 하려는 마음은 잘 알겠는데 이것이 좀 더 심각한 상황이 아니어서 정말 안심이 되었다.


ㅎㅅ가 나가고 바로 이어서 사회 수업 자료를 만들려는 찰나, 교실 전화가 울렸다. 보건 선생님이 ㅊㅇ이가 친구와 싸우고 울면서 들어와 과호흡 증세로 보건실에서 누워있다고. 아니.... 오늘 무슨 날이니.... 보건실에서 안정을 취하고 올려 보내겠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먼저 교실로 올라왔고 이야기를 듣는 중에 ㅊㅇ이도 올라왔다. 아이들의 다툼은 늘 비슷하다. 서로의 엇갈림. 다만 6학년쯤 되면 이 주제로 싸우는 일은 매우 드믄데 우리 반 아이들이 어린 건지 보통 2, 3학년에서 많이 발생하는 그 중재과정이 생각보다 자주 일어난다. ㅊㅇ이는 이야기를 하다가 몇 번을 또 울었고 다시 다리에 힘이 없다면서 친구들의 부축을 받아 보건실로 다시 내려갔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서로의 이해가 부족했다. 이야기 하는 도중 갑자기 제3자인 ㄱㅎ이가 울컥해서 눈시울을 붉혔다. 어찌저찌 아이들 간의 갈등을 마무리하고 해결과정을 향해 갔다. 잠시 뒤 올라온 ㅊㅇ이에게 일단은 아이들 몇몇이 사과를 했고 ㅊㅇ이는 이제 되었다고 했다. (사실 ㅊㅇ이도 아주 잘한 것은 아니지만 여기서 일단은 ㅊㅇ이가 사과를 받는 것이 맞았다.) 그래도 걱정이 되는 마음에 집에 갈 시간에 따로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런 뒤끝도 없고 다 해결되었다면서 아주 밝은 얼굴로 기운차게 교실을 나섰다. ㅊㅇ이 뒤에 덩그러니 남겨진 나... 나는.....


나도 갑자기 울고 싶었지만 그럴 시간도 없었다. 곧이어 교원학습공동체 클래스를 준비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생님들이 가시고 지금 약간은 탈탈 털린 멘탈로 교실에 앉아서 마음을 가다듬고 머리를 비워본다. "날이 더워서 그런가 요새 아이들이 많이 떴어요."라고 하신 어느 선생님의 말씀이 문득 떠올랐다. 정말로 날씨가 더워져서 그런 것일까. 아직은 괜찮은 같아서 에어컨을 틀어준 잘못인가 싶어 내일부터는 덥다고 하면 바로바로 에어컨을 틀어줘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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