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May 24. 2024

집에 가지 않는 아이들

"선생님 힘드시겠어요."

우쿨렐레 선생님이 수업을 마치시고 나가면서 한 마디 하셨다. 지난주에는 "아이들이 참 발랄하네요."라고도 하셨다. 그렇다. 우리 반의 발랄함은 모든 교과 선생님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정말 좋게 순화해서 '발랄함'이라는 단어를 고심 끝에 선택하셨을 것을 알고 있다. 분명히 3월만 해도 고요함이 잘 자리 잡고 있었는데 조금씩 퍼져가던 깔깔 거리는 웃음이 어느 순간 온 교실을 휩쓸고 있었다. 해맑음, 순수함, 천진난만함... 흔히 보이는 6학년 아이들의 사춘기적 특성이 우리 반에서는 유독 희미하다. 물론 여학생들 중에서 몇몇은 눈에 보인다. 날마다 예쁘게 스타일을 연출하고 오는 ㅅㅁ이, 머리 모양이 매일매일 다른 ㅈㅇ이, 쿨한 듯 꾸안꾸 룩을 보여주는 ㅇㅅ... 서서히 외모에 신경을 쓰는 그녀들의 모습이 3월 보다 더 선명하다. 그럼에도 우리 반을 보면 마냥 밝다. 그리고 아이들이 집에 가지 않는다. 물론 가기는 가지만 종 치면 쌩 하고 가는 그런 것이 없다.


수업이 끝나면 달려와 "선생니임~ 있잖아요." 하면서 이야기를 할 때도 있고 "저 오늘은 교실에 남아서 숙제를 하고 갈 거예요!"하기도 하고 그냥 남아서 숙제를 하기도 하고 오늘처럼 저렇게 보드 게임도 하고 피아노도 돌아가면서 치고 악기 연주도 하고 그림도 그린다. 이게 왜 이렇게 되었는지 나도 정말 모르겠다. 분명 작년에는 이렇게까지 많이 남아 있지 않았다. 조금 남아서 놀다가 집이나 학원으로 갔는데 올해는 가라고 말하지 않으면 한 시간은 가뿐하게 그냥 교실에 남아 있다.


아이들이 가야 일도 하고 상담도 할 수 있다. 가끔 전화로 알려드릴 일들이 있기도 하다. "제발 집에 가 주면 안 되겠니."라고 사정을 하면 "아직 안 돼요!"라고 해서 나중에는 "제발 가라, 집에 가자! 선생님 회의 있단 말이지."라고 말해서 반 억지로 보내야 가기도 한다. 급하면 나가서 통화하기도 한다.... 지금도 이 글을 쓰는 것은 아이들 웃음소리와 음악 소리가 교실을 지배하고 있어서 나는 일을 못 하겠고 정신이 1도 없으니 글이라도 쓰자 하고 다다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중이다. 금요일인데, 불금인데 얘들아 제발 가자......


"선생님 연수 안 가세요?" 

결국 5반 선생님이 나를 데리러 오셨다. 오늘은 AI 스파이크 프라임 연수가 있다길래 둘이서 신나게 신청했던 것이다. 공짜 음료수에 혹해서..... 그제야 가방을 주섬주섬 챙기고 있길래 가만히 쳐다보니 또 킥킥대면 말한다. "선생님! 다 알아요. 여태까지 뭐 하고 있다 이제 가방 챙기나... 하는 거죠?" 헐.... 나는 분명 아무 말도 안 했다. 처음에는 열 명 정도 남아 있다가 하나둘씩 떠나고 드디어 마지막까지 남은 두 아이는 킥킥거리며 느으릿느으릿 가방을 챙겨서 교실 문을 나선다. 


"다시 오면 안 된다. 월요일까지는 절대 오면 안 돼!"

하나도 안 무서운 내 으름장에 키득거리는 아이들의 웃음이 복도를 채운다. 



매거진의 이전글 20년 만의 비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