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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y 26. 2024

내 얼굴이 내 삶이라는 것

중학교 때 선생님의 말씀을 평생 마음에 품고 살았던 것 같다. 선생님은 내 얼굴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고 하셨다. 어릴 때, 젊을 때는 모르지만 나이가 들어가면서 그 사람이 품은 생각, 살아온 행적이 고스란히 그 사람의 얼굴에 반영이 된다고. 나는 예쁘지 않았다. 통통했고 눈은 작았고 입술은 굵었다. 코는 애매했다. 성격도 서툴어서 어떻게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지 몰라서 몇 년을 고생고생하면서 조금씩 익혀 나갔다. 


지금의 내 얼굴은 여전히 엄청난 미인은 아니다. 다만 어린시절과 비교하면 지금이 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돌이켜 보면 항상 웃으려고 노력했던 것 같다. 자세를 곧고 반듯하게 하려고 했고 밝은 생각과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지내려고 노력했다. 


요새 읽는 '안녕, 우주 Hello, Universe'에서 이런 부분이 나온다.


His face is scrunched up, like he's sniffing something offensive. .... Meaness always shows on people'sfaces. Sometimes you have to look hard for it. Sometimes it's just a part of a person's features. That's how it is with this Chet.


힘없고 약한 아이들을 괴롭히는 퍼그를 닮은 얼굴의 아이. 남의 약점을 조롱하고 불쾌한 말을 던지며 아이들을 괴롭히는 아이. 이 아이의 마음에는 어떤 것이 있길래 그럴까. 사실 이런 부분들은 가정에서부터 온 것일 때가 많다. 요즘 '가난한 아이들은 어떻게 어른이 되는가'를 읽고 있는데 저자의 통찰력에 감탄하게 된다. 저자가 수년간 지속적으로 인터뷰 해 온 아이들은 어떻게든 그 상황을 뚫고 이기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로부터, 조부모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어두운 굴레와 어려운 환경은 개인의 힘으로 극복하기엔 어려운 부분이 많다. 그럼에도 어머니가 밝으면 아이도 밝은 마음으로 노력하고 적극적으로 이루어나간다. 결국 뭔가를 이루어 내는 것은 그냥 보면 '내'가 '혼자' 열심히 노력해서 이룬 것이 커 보여도 그 기저에는 그 가정의 힘이 깔려 있어서 든든한 바탕을 마련해 주었기 때문인 것이다.


나는 스스로 노력해서 뭔가를 많이 하는 사람이다. 다만 부모님이 좀 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서 내가 하고자 했던 일들을 지지해 주셨다면 더 넓고 깊게 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미련이 늘 마음에 있었다. 대학교 시절 이런 이야기를 하자 친구는 자신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고. 서울대학교에 다니던 남사친 ㅈㅅ이는 단단한 아이였다. 정말로 가정환경이 어려웠고 필사적으로 공부해서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다만 비인기학과라서 늘 그 부분에 좀 어려운 마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긍정적인 마음으로 노력을 한 내 친구는 지금 꽤 유명한 벤쳐기업의 대표가 되어 가끔 신문에서 이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비인기 학과였지만 자신의 길을 찾아서 소신있게 간 그 친구는 어려운 환경에서도 부모님이 늘 바르게 조언을 해 주셨고 그것만으로도 감사하다고 했다. 그 말에 나는 부끄러웠다. 은연 중에 나 보다 잘 살고 좋은 환경에서 자라난 아이들을 부러워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이다. 물론 배우고 싶었던 바이올린이나 플룻을 지원해 주셨더라면 악기 한 두 개쯤은 더 잘할 수도 있었겠고, 적기에 조기 외국어 교육을 시켜 주셨다면 일본어 하나 정도는 더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었겠지. 그러다 정신이 퍼뜩 든다. 엄마는 본인이 너무 배우고 싶었던 피아노를 어려운 형편에도 어떻게든 가르쳐 주셨고 아빠는 공부하겠다는 딸에게 사교육을 시켜주지는 못했어도 다소 비싼 가격대의 문제집 세트는 살 수 있게 해 주셨다. 십대 시절 비뚤게 나가고 싶어도 그럴 수 없었던 것은 부모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결국 내 얼굴이 내 삶이라는 것은 나 혼자 만든 것이 아니라는 것을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이제는 내 얼굴이 아니라 우리집 아이들의 얼굴이 어떻게 만들어져 갈 지를 함께 고민하고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한다. 그래서 30년 뒤 누가 봐도 아름다움이 있는 그런 얼굴의 소유자가 되면 참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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