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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May 30. 2024

초등학생도 화장실 아닌 곳에서 실례를 할 때가 있습니다

비위가 약하신 분들은 패스해 주세요!


동학년 회의 시간이었다. 2학기 현장학습 답사 이야기를 하다가 버스 대절 이야기가 나오고 그러다 이야기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다가 마지막에는 버스에서 실수를 한 아이 이야기가 나왔다. 담임 선생님의 노력으로 그 반 아이들 아무도 몰랐다고 한다! 

"아니 어떻게요? 똥 냄새는 가릴 수가 없는데."

패셔니스트 5반 샘은 평소에도 섬유탈취제를 지니고 다니셔서 칙칙 커버를 잘하시고 현장학습 장소에 도착하자마자 본인의 카디건으로 아이를 감싼 후 재빠르게 화장실로 데려가 씻기고 옷까지 사서 입히셨다고. 그런데 정작 학부모의 반응은...."8시간을 기차를 타도 괜찮았는데... 옷이 버릴 정도로 심각했나요?" 였다고. 그리고 아이도 "나는 바지 디자인 이런 거 안 입는데."였다고. 나중에 아이에게 들으니 장시간 차량을 타면 늘 속이 안 좋아서 장트러블이 있는 아이였다고 한다. 그런데도 고맙다거나 미안하다거나 하는 인사는 듣지 못했고 물론 당연하게도 옷값은 받지도 못했다고 한다. 선생님이 하고 싶었던 말씀은, 최소한 아이의 컨디션에 대해서 미리 언급은 해 주었어야 좀 더 대비를 확실하게 했을 거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갑자기 곳곳에서 제보가 들어온다. 수업 중인데 5학년 아이 자리에서 노란 물이 갑자기 주르륵 흘러내리던 경우, 급하다고 교실에서 똥을 싸 버린 또 다른 아이, 냄새는 확실한데 절대로 아니라고 고개를 흔들며 한 자리에서 꼼짝도 안 하고 세 시간을 내리 앉아 있던 1학년, 한 명이 우유를 먹고 분수토를 하자 갑자기 13명의 아이가 이어서 토를 하던 저학년 교실 (어린아이들은 토 냄새를 맡으면 같이 속이 울렁거려 견디질 못한다), 6학년인데 조금만 조금만 하고 버티다가 결국 실수를 해 버린 남학생...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그리고 여전히 6학년인데도 코를 파고 그 손가락이 입으로 들어가는 경우는 아주 그냥 비일비재하다. 


웃으면서 들었지만 사실 나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다. 사실.... 저도 그런 적 있어요..... 흑흑흑. 쓸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나에게만 부끄럽지 다른 사람은 그냥 넘길 일이니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고 알고 싶어 하지도 않을 일을 굳이 애써 꺼내본다. 


감추었던 나의 흑역사 한 가지는 5학년 때 일이다. 운동장에서 구보 훈련이었는지, 대형 연습이었는지를 한참 하는데 도저히 빠져나가기가 어려운 것이다. 모두가 다 같이 맞추어 행진 연습을 하는데 중간에 나오자니 선생님한테 혼날 것 같기도 하고 어린 마음에 참고 참다가 얼굴이 정말 노래졌다. 선생님께 달려가 배가 아프다고 하고 화장실로 가는데 가는 길에 결국 참지 못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화장실에 도착해서 문을 여는 순간 흘러내려서 바깥쪽에서는 상황을 몰랐던 것이다. 내가 계속 교실에 오지 않자 걱정이 되신 담임 선생님이 화장실로 오셨고 나는 정말 창피해 미칠 것 같은데 바지에 설사를 했다고 말씀드렸다. 그때만 해도 화장실을 반 아이들이 돌아가면서 하던 시절이었다. 엄마가 바지와 속옷을 들고 오셨으니 우리 반 아이들이 그 모습을 보았다. 당연히 "여울이네 엄마 왜 오셨어요?"라고 물어봤을 테고 선생님은 그나마 설사가 아닌 소변을 봐서 그렇다고 돌려 말해 주셨으나 역시 수치스러운 것은 마찬가지였다. 놀라운 것은 아이들이 뭐 그럴 수도 있지 하는 정도의 반응만 보였다는 것이다. 


똥 묻은 바지를 빠는 엄마에게 진짜 죄송한 마음이었는데 엄마는 또 딱히 별말씀은 안 하셨다. 그리고 그때 알았다. 배가 아프면 무조건 화장실로 달려가야 한다는 것을. 그래서 아이들의 그런 생리적 실수에 사실 좀 관대한 편이기도 하다. 아직 장 조절이 미숙한 아이들은 그럴 수 있다는 것을 이미 경험에서 제대로 배웠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민망하고 부끄러운지, 정말 땅 파고 싶은 기분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았기 때문이다. 이 글을 쓰면서도 '발행을 눌러? 말아?'를 수십번을 고민하고 있으니...


교사가 되어 보니 버스나 교실에서 갑자기 아이가 토하는 경우가 간혹 있다. 토하는 거? 그 정도는 그냥 약과다. 달려가 맨손으로 그 토를 받아내기도 하는 것쯤이야. 교실에서 토하면 아무리 닦고 닦아도 냄새가 며칠 간다. 그렇다고 나라고 비위가 아주 좋은 것은 아니다. 사실 나도 냄새에 예민해서 매우 괴롭다. 하지만 교사라는 직업이, 엄마라는 위치는 가끔 알 수 없는 힘을 발휘하게 만드는 것 같다. 결국 사람은 어찌 되었든 닥치면 다 할 수 있는 법이다. 그래도 사람이니까 오늘 하루도 큰 사고 없이 잘 지나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을 매의 눈으로 지켜본다. 많이 힘들어 보이면 상태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정말 안 좋으면 화장실과 보건실에 제 때 보내서 아이가 수치심을 느끼지 않는 경우까지 갈 수 있도록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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