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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Jul 19. 2024

딸 둘을 울린 저녁

막내와 저녁을 먹고 들어오는 길이다. 병원 주차장에서 집까지는 일직선으로 따지면 정말 가까운 거리다. 그러나 사거리 대각선 골목 안쪽에 위치한 특성상 일직선은 고사하고 유턴과 우회전과 좌회전과 우회전과 좌회전을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해야 집에 겨우 올 수 있다. 몇 번의 실패를 겪은 뒤 집에 빨리 올 수 있는 최적의 동선을 파악한 나는 이제 어느 시점에 큰길로 차를 넣어야 되는지를 기민하게 눈치채고 실행에 옮길 수 있게 되었다.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잘못하면 한 블럭은 훨씬 더 가야 유턴이 가능하기도 하고 아니면 아예 뱅글뱅글 돌아야 하기 때문이다. 


성공적으로 유턴을 하고 좌회전을 한 다음 차선을 네 번은 바꿔서 좌회전 차선까지 가야 3단계 성공이다. 5차선 끝자락에서 1차선까지 가는 것은 생각보다 고난이도의 일이다. 지난번에는 반대쪽에서 우회전해서 들어오는 차를 미처 보지 못해서 아슬아슬 스칠 듯 지나간 적도 있기 때문에 1차선에 들어설 가능성이 보이지 않으면 아예 신호를 몇 개 지나 유턴을 해야 하는 먼 길까지 길게 보고 갈 때도 종종 있다. 오늘도 뒤에서 부앙하고 달려오는 오토바이를 먼저 보내고 슬쩍 왼쪽으로 차선을 잘 바꿨다. 적당히 달리다가 뒤차가 간격을 유지해 주는 것을 보고 또 한 번 옆 차선으로 옮겨간다. 한 번 더 가려다가 옆 차선에서 부리나케 달려오는 차를 보내고 깜빡이를 켜면서 적당히 두 개의 차선을 차례차례 서두르지 않고 이동한다. 


깜빡이를 미리 켜면 이상하게도 차들은 갑자기 속도를 낸다. 천천히 오다가도 깜빡이를 켜는 순간 속도를 올린다. 그래 놓고는 정작 다시 느리게 간다. 그래서 옆차선 뒤차와의 거리를 가늠해 보고 들어가기 직전에 켤 때도 많다. 보이진 않아도 느껴진다. 그들의 빡침이. 가끔은 아주 드물지만 일부러 내차를 추월해서 내 앞에 가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옆차선으로 빠지지롱.....왜냐면 좌회전이니까. 나를 약 올리지 못해 안타까워하는 그들의 마음이 슬쩍 옆 차창으로 느껴지는 것이 아예 없지 않다. 어쩌면 이 또한 나의 삐뚤어진 마음의 왜곡된 해석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직설적이다. 기다릴 줄도 알지만 조금 시간을 두고 있다가 재촉을 하는 경우의 비율은 반 정도. 아니면 조금 더. 어쩌면 내 생각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 나 역시 내 앞에 누군가 끼어드는 것을 반기지 않는다. 이건 양보해 주기 싫어서라기보다는 그동안 쌓인 경험에서 오는 귀납적인 체험의 반응이다. 깜빡이를 켜고 신호를 보내서 들여보내주면 느릿느릿 가지 않는다. 아니면 갑자기 멈추어 서거나 말도 안 되는 지점에서 깜빡이 없이 우회전을 하는 경우를 하도 많이 봐서 그렇다. 그리고 앞차와 그 앞차와의 간격이 너무 넓으면 꼭 얌체처럼 끼어드는 차가 있기 때문에 내 앞차가 차 두 대는 너끈히 들어갈 만한 간격을 두고 다음 신호를 기다리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이런 경우는 보통 '빵!'하고 경적을 가볍게 눌러준다. "가라고요!"라고 들리지도 않을 말을 나 혼자 중얼거린다. (아, 쓰고 보니 보인다. 혹시 나를 끼워주기 싫었던 그 수많은 차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했나 보다. 전 달라요....다르다고요.....들어와서 느리게 가거나 하지 않는다고요....진짜예요. - 진짜다.)


차선을 잘 바꿔서 언덕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되어 기쁜 맘으로 좌회전 신호를 기다린다. 내 앞에는 오토바이 한 대가 서 있었고 그 앞에 차가 두 대 있었는데 한 대가 유턴을 해서 빠져나가는 바람에 내가 싫어하는 그 간격이 생겼다. 음.... 10초 정도 기다리면서 갈등한다. 누를까 말까. 빵 할까 말까. 왜 저 오토바이는 움직이지 않는 것일까. 분명 배달 오토바이겠지. 물끄러미 바라보니 핸드폰을 열심히 들여다본다. 지도를 확인하는 것인지 다음 갈 장소를 확인하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열중해 있다. 그냥 기다리기로 한다. 차가 두 대 쯤 내 앞에 더 끼어든다고 해서 뭐 큰일이 나겠는가 말이다. (물론 가끔은 그 두 대 때문에 신호를 놓치고 5분을 더 기다려야 하는 경우가 당연하게도 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아이와 함께 저녁을 먹었고 느긋하게 집에 돌아가는 길이고 집에 가서 저녁을 차리지 않아도 된다. 


그렇게 또다시 기다리기로 결심한 순간 왼쪽에서 다른 오토바이 한 대가 부우우웅 소리를 내며 나와 앞의 오토바이를 추월해서 선다. 그제사 빈 공간을 알아차린 오토바이 기사님은 앞으로 이동했고 나는 빵 하고 경적을 울리지 않고도 앞으로 갈 수 있었다. 그리고 또 스스로 기특해한다. 나 좀 괜찮은 것 같다. 스스로 뿌듯해하면서 집에 들어와 큰 아이들을 만났다. 그리고 두 딸아이를 차례차례 울렸다. 


"엄마 오늘 너무 T잖아!!!!"라는 이야기를 다섯 번은 들었다면 두 아이가 눈물을 흘린 이유가 조금은 설득이 될까.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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