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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24. 2024

영어로 말은 못 해도 편지는 쓸 수 있다

이렇게 영어를 말로 먼저 익힌 것 같지만 역시 나도 한국인인지라 문자로 익혔다. 내가 영어를 정말 못한다는 사실을 느낀 계기가 있다. 중학교 2학년 때 일이다. 갑자기 외국인 가족을 만나게 된 것이다. 그냥 만난 것도 아니고 3개월가량을 직접 만나서 놀고 대화를 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영어를 정말 못하던 중학교 2학년 시절, 교회에 갑자기 외국인 가족이 왔다! 한국에 교환교수로 오신 분이 가족을 데리고 한국으로 이사를 왔고 한국에서 계속 살고 싶다면서 아이들을 아예 한국 교회에 다니게 하면 좋겠다고 해서 우리 교회로 온 것이다. 그런데 아이들은 한국어를 정말 인사말 정도밖에 못했다. 그 가족의 첫째는 나와 한 살 차이 나는 여자 아이였다. 또래 친구가 많지 않았기에 서로 소개를 받았다. 낯선 환경에 왔을 그 아이에게 잘해 주고 싶었고 친구가 되어주고 싶었지만 문제는 언어였다. 나 역시 영어를 정말 인사말 정도밖에 못하는 수준이었다. 동갑내기 내 친구는 만나서 "Nice to meet you."라고 멋들어지게 인사라도 건네는데 나는 그 말도 제대로 못 하고 "Hello."에서 끝나고 말았다.


둘이 같이 있으면 서로 말을 못 알아들으니 굉장히 어색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사소통을 하려고 무지하게 애를 썼지만 서로 답답하게 있다가 끝날뿐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영어로 할 수 없으니 그녀는 알아듣지 못했고 그 아이가 하는 말을 나 역시 알아듣지 못했다. 지금처럼 번역기라도 있으면 어찌어찌할 텐데 이제 막 영어를 배운 지 1년이 좀 넘은 나는 아는 말이 정말로 없었다. 


그러다가 역시 한국에서 살기가 무리라고 판단이 된 그 가족은 아버지만 직장에 남고 다시 미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다. 서로 말은 잘 안 통했지만 서너 달 사이에 아이들 모임을 통해서 그래도 친해지고 있었는데 아쉽고 서운했다. 나는 고향으로 돌아가는 에린에게 잘 가라는 편지를 열심히 썼다. 물론 사전의 도움을 받아서 말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서 내게 편지를 보내왔다.


말은 제대로 통하지 않았으나 글은 통했다. 우리가 제대로 친해진 것은 에린이 미국으로 돌아간 다음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서로 편지를 열심히 주고받았다. 파파고가 어디 있나, 그 시절에. 전자 영어 사전도 귀하던 그때에 나는 영한사전과 한영사전을 곁에 두고 두 권을 열심히 뒤적여 가면서 열심히 편지를 썼다. 편지를 한 통 쓰고 나면 몇 시간이 지나서 진이 빠졌지만 그렇게 에린과 나는 국제우편으로 편지와 선물을 주고받으면서 몇 년간 우정을 쌓아갔다. 문법도 스펠링도 제대로 아닌 편지에 미안하다고 쓰면 착한 성품의 에린은 오히려 나를 대단하다고 격려해 주었다. 자신은 외국어를 잘 알지 못하는데, 이렇게 다른 나라의 말을 적극적으로 배워서 점점 발전하는 내가 굉장하다는 것이다. 그 격려와 응원과 그녀가 들려주는 색다른 이야기들에 빠져서 나는 정말 열심히 편지를 읽고 썼다.


에린 덕택에 favorite이라는 단어를 알게 되었고 다양한 편지 인사말도 배웠다. 비슷한 시기에 우리는 결혼을 해서 비슷한 나이의 딸을 낳았다. 우리는 이제는 편지 대신 페이스북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에린 덕분에 나는 영작문이 그렇게 두렵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 참 고마운 일이다. 오류가 정말 많았을 텐데 읽고 도와준 에린에게 지금도 고마운 마음이다.




에린에게서 편지가 오면 아빠는 궁금해했다. 그러면 나는 또 열심히 편지를 읽고 번역을 나름으로 해서 내용을 전달했다. 아빠 역시 영어를 잘하지 못하셨는데 이렇게 소리 내어 읽고 번역하는 딸이 놀랍기도 하고 기특하기도 하셨나 보다. 어쩌면 바로바로 해석을 하는 습관은 아빠에게 편지를 읽어드리고 한국말로 바꾸는 데에서 시작이 되었나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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