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2학년 중후반에서야 본격적으로 시작된 나의 영어 공부는 나의 무지에 대한 각성과 위기감이 큰 몫을 했다. 공부를 해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내 상태에 대한 깨달음. 그리고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과 나에게 맞는 방법을 이리저리 시도해 본 것이 유효했다. 그리고 그에 맞춰서 적절하게 다양한 인풋이 있었던 것이다. 스스로 찾아본 것도 있고 마침 기회가 주어졌을 때 놓치지 않았던 것도 있다. 만약 관심이 없거나 위기감을 느끼지 못했다면 영어를 배울 기회, chance가 주어졌을 때 그냥 흘러 보냈을 것이다.
기회를 뜻하는 단어는 chance와 opportunity가 있다. chance는 운, luck이 따르는 것으로서 실패와 성공의 확률이 반반인 약간은 도박이 될 수는 있는 것을 의미한다. opportunity는 하고 싶었던 일을 할 수 있는 긍정적인 기회이고. 그렇다면 원하는 결과를 성취했으니 opportunity를 사용하는 것이 맞을 수도 있는데 나는 chance라는 단어를 선택해서 표현했다. 이것은 나도 몰랐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모두 선택하는 문법을 중심으로 영어를 익히고 단어장을 보면서 외우는 당시만 해도 정석적인 방법을 버리고 듣기와 말하기에 중심을 두면서 문장 단위로 암기하면서 전체적인 구조를 잡아가는 것은 사실 모험에 가까웠다.
쉬운 문장으로 기초를 다지고, 정확한 발음으로 소리에 대한 인식을 깨우치고, 외국인 친구와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간단한 읽기와 쓰기를 실제적인 목적으로 실천하면서 쉬운 독해를 시작했다. 친구와 보라매 공원에 있는 어학실에 가서 영어 자료들을 빌려다가 헤드셋을 끼고 한 시간씩 들으면서 공부를 같이 하기도 했다. 학원을 다니지 않고 과외를 받을 수도 없는 형편이었기에 혼자서 이리저리 방법을 찾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었다.
영어는 도구 교과이지만 한국에서는 목적 교과로 사용된다. 영어라는 도구를 사용해서 의사소통이라는 목적을 성취하는 것이 영어를 배움으로써 달성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영어를 공부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되기 때문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분명 처음에는 목적이 될 수밖에 없다. 어느 정도 지식이 쌓여야 이를 도구로 사용할 수 있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냥 공부라는 단순한 목적이 아니라 의사소통을 해야 한다는 상황이 목적으로 놓이게 된다면 도구로서의 영어 교과의 특징이 살아나면서 더 유의미한 배움을 가져올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외국인 친구와 소통할 수 없었던 부분에서의 1차적인 충격과 그 후에 주어진 펜팔의 상황은 분명 내게 도움이 되었다.
다만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쉬웠던 것은 외국어로 된 원서를 많이 읽지 못했던 것이다. 수준에 맞는 좋은 동화책들이나 쉬운 챕터북들이 곁에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두고두고 남는다. 그래서 이 아쉬움과 필요에 대한 갈망이 남아 있다가, 어른이 되어서 영어원서 읽기를 하고 함께 읽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게 된 것이라고 여겨진다.
어느 사이 나는 고등학교 2학년 학생이 되어 있었다. 에린 이후로 외국인을 만나서 영어로 소통할 일은 딱히 없었다. 그러다 우연한 기회에 재미교포 청년을 만나게 되었다. 어린 시절 미국으로 입양되어 간 D는 자신을 낳아준 한국인 부모를 찾고 싶었다. 그래서 한국을 방문했고 소개로 우리 교회에 잠깐 출석하게 되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나는 내가 영어로 의사소통이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어린 시절 에린과 말로 대화가 힘들었던 기억이 너무나 생생하게 남아 있어서 여전히 말보다는 글이 편했던 것이다.
그런데 우연히 인사를 하고 함께 식사를 하게 되면서 대화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가 하는 말은 귀에 쏙쏙 들어왔고 대답도 할 수 있었다! 3년 만의 일이었다. 그 후로 자주는 아니지만 어쩌다 한 번씩 우연히 마주치게 된 외국인들과 간단한 대화가 가능하면서 나는 어느 사이 간단한 통역의 역할을 하고 있었다. 물론 능숙한 것도 아니고 한계도 많았지만 말이 통한다는 기쁨은 나를 좀 더 적극적으로 영어의 세계로 끌어들였다. 그리고 조금 더 자신감이 붙었다.
때마침 영어연설대회가 있다는 안내를 신문에서 보고 정성을 다해서 원고를 써서 제출했다. 그리고 1차 원고 심사에서 바로 탈락했다. 원고를 봐주셨던 2학년 때 담임 선생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사실 난 네가 떨어질 줄 알고 있었어. 이 대회에 원고를 내는 아이들은 다 전문가의 도움을 받거나 영어권 국가에서 오래 살다 온 아이들이 많고 보통은 혼자서 하지 않거든. 그럼에도 아무 말도 하지 않은 것은 도전하고 스스로 하려는 네 모습이 기특했기 때문이야. 수고했어, 여울아."
학교에서는 영어동아리에 가입하기도 했다. '오선지*'라는 별명을 가진 영어 선생님은 엄청 깐깐하신 나이 드신 남자선생님이셨는데, 원서를 통한 영어 읽기에 접근하시고 싶어 하셨다. 그때 처음으로 앨빈 토플러를 알게 되었고 그의 Future Shock이라는 원서를 알게 되어서 조금 읽었다. 교과서와 문제집 밖에 모르던 내게 원서를 통한 영어 공부도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순간이었다. 또 다른 영어 선생님 한 분은 아주 쉽게 나온 영어 미니북을 언제든지 빌려주겠다고 아이들에게 말씀하셔서 그 책들을 조금 빌려 읽어보긴 했다. 오만과 편견 같은 유명한 책들을 얇은 미니북으로 편집한 것이었는데 너무 축약을 많이 해서 딱히 재미는 없었다. 그래서 오히려 제대로 된 영어 원서에 대한 갈망이 더해졌다.
담임 선생님은 영어 문제집이 필요한 친구들은 다 풀어오기만 하면 새로 주시겠다고 했다. 그 말씀에도 정말로 선생님께 찾아가서 문제집을 요청한 아이들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아니 나를 제외하고는 거의 없었다. 받아간 아이들 중 끝까지 풀어간 아이들도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알고 있다. 나는 선생님을 찾아갔고, 수준에 맞는 문제집을 받았고, 선생님과 날짜를 정해서 그 기한에 맞게 풀어갔고, 점검을 받았다. 그러면 선생님은 그다음 단계의 문제집을 주셨다. 그렇게 일 년 동안 선생님과 함께 몇 번의 문제집을 풀고 점검을 받았으니 하나하나 친절하게 붙들어주는 과외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정도의 멘토링을 받은 셈이다. 어쩌면 문제집 자체보다 선생님의 격려를 받는 그 시간이 더 좋아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나는 내가 활용할 수 있는 기회는 정말 최대한 활용했다. 국어와 영어, 수학은 주지과목이기 때문에 학교마다 선생님들도 다른 과목보다 많이 계신다. 각 선생님들마다 주력하시는 부분이 다 다른데, 나는 각 선생님들로부터 주력하시는 부분을 다 받아낸 셈이다. 문제집을 풀면서 독해의 기술을, 원서를 만나고 읽어보는 초벌 기회를, 다양한 장르의 영어 원서와 격언을 외우는 시간을 가지면서 시선을 넓혀갈 수 있었다.
그러는 사이 제일 난감했던 영어는 어느 순간 제일 좋아하는 과목이 되어 있었다. 몰랐던 것들을 하나하나 알아가고 그렇게 새로운 세상으로 들어가는 즐거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자판기에 흔하게 쓰여 있는 coffee & tea라는 단순한 문구조차 눈에 들어오면서 '아, 커피와 차라는 뜻이었구나'하고 알게 되었던 그 작은 기쁨. 세상에 쓰여 있는 모르는 말들이 내게로 인식이 되어서 들어오는 것이었다. 시야가 밝아지면서 답답했던 부분이 해소되는 그 기쁨이 점점 확장되었기에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영어를 어느 정도로 좋아했는가 하면 수능모의고사를 볼 때 영어를 본다는 마음으로 그 기나긴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제일 좋아하는 영어 과목이 제일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으니 (그때는 제2외국어 시험을 따로 보지 않았다.) 하나하나 미션 클리어 하는 기분으로 기대감으로 견딘 것이다. 그러니까 영어 시험은 내게 일종 보상이었다. 힘든 일과를 끝낸 후 받는 꿀 같은 선물이었다. 하나하나 풀 수 있는 퍼즐을 맞춰가는 기분으로 즐겁고 설레는 마음으로 대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소 공부 스케줄을 잡을 때도 제일 마지막에 넣어두었다. 제일 힘들고 어렵고 싫은 수학을 먼저 하고, 중간에 국어, 사회, 과학을 적당히 넣은 후 마지막에 상쾌한 기분으로 영어 공부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영어 공부를 하는 시간을 즐기는 고등학교 시절을 보냈다. 이렇게 재미있었으니 당연히 대학교 시절도 그러리라 생각했고 서울교대 입학 후에는 고민 끝에 영어교육학과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때부터 몇 년 간 영어정체기를 만난다.
*아이들이 제대로 과제를 안 해 올 때 회초리로 착착착착착 다섯 번 종아리를 때려서 다섯 개의 줄, 그러니까 오선지를 남긴다는 뜻이다. 그건 선생님이 말씀해 주신 내용이고 다만 실제로 다섯 대를 맞은 아이들은 본 적이 없다. 이에 관한 일화로 선생님은 그전까지는 체벌을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어느 날 생각을 바꾸는 일이 일어났다고. 한 여학생이 "선생님, 복수할 거예요."라고 말을 했다던가. 그래봤자지, 하고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다고 한다. 그리고 졸업식 날 아이들이 다 떠난 후 선생님은 발견했다. 선생님 차 뒤편에 날카로운 못으로 긁은 듯한 선이 다섯 개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 여학생은 그러니까 종아리에 다섯 개의 줄을 남긴 선생님에 대한 복수로 선생님 차에 다섯 개의 줄을 마찬가지로 남기고 학교를 떠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