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이 되었다. 하지만 생각했던 것과 대학교 공부는 너무 달랐다. 우선 재미가 없었다. 교대 공부가 이렇게 재미없을 줄은 몰랐다. 물론 그중에서 가뭄의 단비처럼 재미있는 과목이 몇 개 있기는 했다. 연극의 이해나 수학의 역사 같은 과목은 의외로 재미있었다. 몇 안 되는 교양 과목들은 대부분 너무 좋았다. 하지만 정말로 필요한 전공과목들은 어찌나 공부하기 싫던지 정말 그 3년의 기간을 억지로 학교에 다닌 것 같다.
적성에 안 맞으니 큰일이다 싶었던 교대 생활에 대한 고민은 의외로 쉽게 풀렸다. 2학년이 되어 교생 실습을 나갔는데 아이들이 너무 예쁜 것이다. 재미없는 교대 공부도 이 아이들을 만나기 위한 과정이라고 생각이 되자 어찌어찌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견디는 것이지 즐겁지는 않았다.
심지어 영어도 재미가 없었다. 그러니 어찌 영어를 공부해야 좋을지 몰랐다. 남들이 다 공부한다는 공인영어시험도 교대생에게는 딱히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토익이나 토플도 할 필요가 없었다. 심지어 교대에는 교환학생제도도 없었다. 있긴 했는데 일본으로 한 명 보내는 것이고 일본어 능력을 필요로 했지 영어 능력이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수능영어라는 목표를 향해서 달려왔는데 막상 그 목표가 사라져 버리니 무엇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방향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원서 수업도 몇 강의가 있었지만 역시 지루했다. 특히 컴퓨터 공학을 원서로 보는 수업이 있었다. 컴과 교수님은 말씀하셨다. "영어도 잡고 컴퓨터도 잡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둘 다 놓쳐 버리는 학생이 사실 대다수이긴 합니다." 그리고 나는 후자에 속했다.
그렇게 3년 가까운 시간을 보냈다. 방향성을 잃어버리고 어찌해야 할지도 몰랐다. 학점은 점점 떨어졌다. 3학년 1학기까지는 어떻게든 장학금을 받았는데 3학년 2학기에는 장학금은커녕 평균 학점이 3점이 못 되었다. 2.98이었을 것이다. 그제사 내 한심한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동시에 그 해 말 절절했던 첫사랑과도 헤어졌다. 임용고시도 봐야 했다.
그러니 나는 점점 영어에 대한 감을 잃어갔다. 감을 잃어가면서 공부도 하지 않았으니 영어 실력 역시 점점 퇴보된 것은 당연하다. 내 영어 절정기는 수능시험을 보던 고3, 11월이었다고 여겨졌다. 점점 영어에 대한 자신감도 상실하고 있을 때 계기가 찾아왔다. 하나는 영미문학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교대부초에서의 교생실습이었다.
서울교대 부속초등학교의 실습은 악명이 높다. 일정도 그렇거니와 학생들에게 요구하는 수준도 매우 높아서 밤늦게까지 집에 가지 못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았다. 졸업 때까지 부초실습을 잘 피해 간 사람은 운이 좋다는 말도 있었다. 3학년 2학기 겨울에, 나는 부초에 실습을 나가게 되었다. 잔뜩 긴장해서 앉아 있는데 우리 반에서 전체대표수업을 한다고 하신다. 나는 아니겠거니 하고 있는데 곧이어서 교생대표로 선정된 사람은 나라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러니까 내가 다른 곳도 아닌, 부초에서 전체대표로 공개수업을 하게 되었다는 청천벽력이 난데없이 떨어진 것이다. 네? 학년 대표도 아니고 교생 전체 대표요? 이 말인즉슨, 교장 교감 선생님은 물론이고 지도교수님까지 오셔서 참관하시는 수업인 것이다. 잘하면 매우 영예로울 수도 있겠지만 망하면 정말로 창피도 그런 창피가 없는 그런 무게가 높은 수업이었다.
어쨌거나 해야 하니 몇 번의 실습은 하는데 지도 선생님의 표정은 점점 어두워져 갔다. 이 수업은 나를 지도해 주시는 실습 담당 선생님의 명예도 함께 걸려 있는 수업이다. 이 수업을 위해서 아예 대본을 썼다. 영어로 대본을 써서 정말로 달달달 다 외웠다. 영어 수업의 매끄러운 진행은 수업 지도 과정에 대한 철저한 준비와 숙지가 물론 주된 것이지만 그와 함께 자유자재로 수업 영어를 구사할 수 있어야 한다. 입학 후 영어를 안 한 것은 아니지만 탱자탱자 놀다시피 했으니 틀을 다잡는 데는 물론 노력이 필요했다.
드디어 수업 공개날. 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서 공개수업을 했고 수업은 정말 성공적으로 끝났다. 마지막 마무리 인사말을 하는 순간 박수는 쏟아졌고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마친 나는 그만 교탁 뒤에 주저 앉아 흐느껴 울었다. 다잡았던 긴장이 풀리면서 눈물이 자꾸 나왔던 것이다. 그 수업을 그처럼 치열하게 준비하면서 정말로 많이 배웠다. 동시에 의도치 않은 상황이 주어졌어도 하면 할 수 있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다. 그렇게 3학년의 마지막을 마치고 4학년이 되었다.
4학년이 되면서 처음으로 영미문학개론을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세상이 또 한 번 바뀌었다. 세상에. 이렇게 재미있는 과목이 있었다니. 그러니까 그동안 나는 내가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한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영미문학을 공부하는 시간은 미치도록 행복했다. 영미문학 개론이면 원래 다른 학교에서는 영문학과 학생들이 1학년 때 듣는 과목인데 교대에서는 이 과목을 졸업반에 넣어놓은 것이다. 동시에 4학년에 개설된 다른 인문교양과목들 역시 몹시 재미있었다.
그렇게 인문학과 영미문학의 즐거움을 맛보고 나자 갑자기 내 진로에 대한 고민이 생겼다. 이대로 바로 직업을 갖고 싶지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좀 더 파 보고 싶었다. 나는 인문교양을 공부하고 싶었는데 바로 현실적인 도구교과들을 공부했으니 순서가 바뀌었던 것이다. 어찌 되었거나 공부가 다시 재미있어졌으니 태도도 달라졌다. 지각을 일삼던 수업에 단 한 번도 지각 없이 늘 미리 가서 준비를 했고 열심히 한 만큼 성적도 당연히 올랐다. 4학년은 성적을 잘 주는 학년이라고 하지만 장학금을 받는 비율은 정해져 있다. 그러니 4학년이라는 특혜와 상관없이 열심히 해야 잘 받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다시 4점대로 돌아갔고 교대 마지막 학기를 장학금을 받으며 다닐 수 있었다.
마지막 한 학기를 앞두고 나는 고민에 빠졌다. 이대로 다시 알게 된 영문학의 즐거움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다시 수능을 봐서 영문학과에 진학할 것인가, 편입을 할 것인가 아니면 그대로 임용고사를 보고 교사가 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