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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30. 2024

대학 졸업 이후 영어 탐색의 기간

격렬한 고민과 상담 끝에 나는 교사의 길을 선택했다. 그리고 대학교 졸업 무렵, 임용고사도 다 보았고 합격도 했으니 친구랑 둘이서 영어 학원이나 가 보자고 했다. 그렇게 강남의 한 영어학원에서 샤론 강 선생님을 만났다. 대학생이 되어서 영어 학원을 안 다녀 본 것은 아니었다. 어찌할 줄을 몰라서 외국인과 하는 영어 회화반을 다녀 보기도 하고 토익 수업도 한 번 들어 보고 그리고 다른 영화영어 반도 들어보았는데 딱히 이거다 싶은 수업은 없었다. 수업 하나가 좋긴 했으나 그 선생님은 다시 미국으로 가시면서 수업이 끝나 버렸다. 


아쉬운 마음에 방송대 영문학과에 들어가기는 했으나 테이프로 듣고 하는 일방적인 강의는 정말 별로였다. 그러니까 나는 상호 소통하는 공부로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냥 단순히 책을 보고 테이프로 녹음된 단조로운 강의를 듣는 것이 아니라. What a picky learner I was! 나는 정말 까다로운 학습자였던 셈이다. 


그리고 정말 우연하게 샤론 강 선생님의 영어수업을 듣게 되었고 그 후로 그 수업은 2년 넘게 개근으로 이어지게 된다. 영어를 배우는 즐거움을 다시 한번 느꼈다. 선생님은 몇 번씩 복습수강도 가능하도록 열어주셨는데 두 번을 들어도 새롭고 재미있었다. 선생님을 늦게 알게 된 것이 그렇게 억울할 수가 없었다. 교대는 강남역 바로 옆인데 교대를 다니는 그 기간 내내 샤론 샘의 수업을 들었다면 얼마나 좋았을지 생각만 해도 아쉬웠다. (알고 보니 졸업반 때 강남으로 오신 거라고....그 때는 몰랐으니까 아무튼 억울했다.) 수업은 두 부분으로 나누어졌다. 1부는 선생님이 선별한 뉴스를 들으며 시사 상식과 함께 표현을 익히는 시간이었고 2부는 시트콤 프렌즈 한 편 전체와 영화 한 편 하이라이트를 골라서 보면서 역시 표현을 배웠다. 지문의 빈칸을 놓고 수없이 반복해서 들으면서 조금씩 듣기 감각을 키워갔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살아 있는 생생한 표현들을 익혀나갔다. 


동시에 선생님의 발음 코칭도 이어졌다. 발음은 어느 정도 자신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나만의 체계를 구축했던 것인지 선생님에게 통과하는 비율은 반반 정도였다. 수강생들은 앞에서부터 한 명씩 다 돌아가면서 정확한 발음으로 그 단어를 말해야 통과할 수 있을 정도로 선생님은 열정적으로 수업에 임했다. 처음에는 20명도 안 들어가는 작은 강의실에서의 수업이 나중에는 100명도 넘게 들어가는 학원에서 제일 큰 대형강의실로 옮겨질 정도였으니 샤론 샘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그렇게 샤론 샘의 수업을 듣다가 대학원에 진학하면서 수업을 이상 듣게 것은 지금도 두고두고 아쉬운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샤론 샘과의 인연은 20년 후에 다시 이어진다.)


교사 경력 2년 차에 나는 한국교원대학교 교육대학원 초등영어교육학과에 지원했고 합격했다. 그전에 서울교대 대학원 시험을 봤는데 대차게 떨어졌다. 어찌해야 할까 고민하는데 과 선배가 교원대 교수진도 좋고 넓게 배울 수 있으니 추천한다고 귀띔해 주었다. 동생을 데려다주던 청주에 내가 시험을 보고 수업을 들으러 가게 될 줄은 몰랐으니 사람 일은 정말 알 수 없는 부분이다. 


방학 때 하루에 여덟 시간씩 꽉 채워서 듣는 대학원 강의는 의외로 굉장히 재미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역시 영문학 수업이었다. 영미 단편 소설, 문학 수업을 매 학기 빠짐없이 들었을 정도로 즐거운 시간이었다. 교수님이 이제는 그만 와도 된다고 할 정도로 문학 관련 수업은 모두 찾아들었다. 그러다 필수 학점이 모자라서 졸업을 못할 뻔 한 위기도 있긴 했지만 어찌어찌 잘 채워서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영문학 수업 외의 다른 영어교육 관련 수업들도 모두 재미있었다. 이런 매력을 왜 학부시절에는 못 느꼈던 것일까. 박사 과정을 밟고 싶었다. 교수님은 아직 젊은데 벌써 오지 말라고, 몇 년 더 경력을 쌓고 오라고 하셨다. 


논문을 완성하고 한참 '삘'이 올라 있던 나는 이리저리 다른 길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숙명여대의 테솔 수업도 듣다가 한 학기만 듣고는 말았다. 이미 공교육 교사인 내가 굳이 테솔을 들을 필요는 없겠다는 판단에서였다. 그렇다면 외국으로 석사유학은 어떨까. 국비로 가야 부모님 허락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높고 좁은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다. 가고 싶은 곳은 예전에 발음 선생님이 가신 하와이 대학교 응용언어학과. 


이리저리 알아보고 준비하면서 6개월간 합숙으로 진행되는 영어교사심화연수과정에 선발이 되었다. 한 번 떨어지고 난 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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