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여울 Apr 13. 2023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데...

그냥 예쁜 아이에게 떡을 더 주고 싶은 이 마음..

우리 반에는 안쓰러운 아이가 있다. 조금만 자세히 써도 개인정보라서 암튼 계속 마음이 쓰이는 아이이고 정말로 아이의 마음을 잘 보듬어 주려고 노력했다. 발표를 시켜도 다른 아이들 두 번 할 때 이 아이는 한 번을 더 시켜주고, 한 번 더 웃어주려고 노력하고, 더 따뜻하게 좋은 말로 도닥이고 있었다.


문제는 계속되는 학부모님의 연락이었다. 얼마나 힘든 상황에 있는지, 선생님은 왜 다른 쪽을 더 잘 이해하고 받아주는 것 같은지, 아이가 불안한 마음이라서 엄마도 같이 힘들다는 것. 모두 다 이해했다. 당사자인 엄마의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내가 가히 짐작이라도 할 수 있을까 싶지만 만약 내 딸이라면 내 아들이라면 하고 생각하면 나도 마음이 녹아내리고 무너지는 그 심정이 조금이라도 짐작이 되어 정말 최선을 다 했다.


그럼에도 충분치 않았던 것일까. 이제는 다른 문제로 연락이 왔는데 그 부분도 이해를 했다. 아이들 간에 의사소통이 잘 되지 않아서 그럴 수 있겠지. 책임감이 강한 아이니까 그럴 수 있겠지. 나는 잘 풀었다고 생각했는데 아이는 계속 억울하고 서러운 마음이 들었나 보다. 교장실에서 연락이 왔다.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학부모님이 연락을 했는지 경위를 알고 싶으시다고.


감사하게도 우리 교장 교감선생님들은 모두 인격자시라서 차근차근 상황 파악이 우선이시고 그에 대해서 나를 비난하거나 나무라거나 하는 그런 말은 전혀 하지 않으셨다. 이미 일련의 사건에 대해서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저 담임이 너무나 힘들겠다고 위로의 말씀을 해 주셨다. (스승의 날에 카드를 써야겠다.)


다시 교실로 올라와 학부모님과 통화를 하고 다른 회의에 들어갔다가 또다시 연락을 받고... 이런 과정이 날마다 되풀이되니까 솔직히 나도 좀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스쿨앱의 메신저를 확인하기도 무섭다. 내 말 한마디 한 마디가 혹시라도 그분들께 또 오해를 사거나 상처가 될까 봐 짧은 대답을 하는데도 보통 이상의 힘과 에너지가 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내일은 또 무슨 연락이 올까 벌써 걱정하는 마음 염려하는 마음이고 신경이 곤두서서 잠도 잘 못 잔다.


예전에 이런 일들이 일어나면 병가를 쓰시는 선생님들이 가끔 계셨는데, 정말 너무나 이해가 되더라. 학년 초의 초긴장 상태에서 우리 집 아이들은 거의 방치 상태로 있는데 이 일에 나의 온 신경과 마음이 다 쏠려 있으니 잠깐이라도 도망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오늘 하마터면 대답에 "저도 사실 너무 힘들어서 병가를 쓰고 싶은 마음까지 들었습니다."라고 쓸 뻔하다가 꾹 참았다.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일으킬 이유가 전혀 없다.


이 아이의 작년 담임 선생님 말씀이... 아이는 너무 예쁜데 그 부모님의 그림자가 아이 뒤에 있어서 가끔씩 힘들었다고. 그러니까 나만 겪었던 일은 아닌 것인데, 학년 초에 일이 터지면서 조금 더 빨리, 크게 왔던 것이다. 아... 나 이 글 공개로 올려도 괜찮을 것인가. (뭐 구독자수도 많지 않고 노출도 안 되니 괜찮겠지....?) 부모의 개입이 필요한 부분도 있고 전달해야 하는 상황도 꼭 필요하지만 잦은 연락은 좀 버겁다. 그렇지만 그 역시 사실이겠지. 아이가 너무 힘들어하고 그것을 지켜보는 부모님의 마음도 역시 같이 힘들면 어쩔 수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 예쁜 아이를 지켜주고 싶고 더 깊은 관계를 맺고 싶은 내 마음이 끝까지 가면 좋겠다. 이런 이유는 내가 아무리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부모의 개입 혹은 간섭이 있을 때는 그 관계가 결국은 계속되지 못한다는 것을 겪었기 때문이다. 정말로 친한 동생이 있었는데, 문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면 이 동생은 부모님께 말을 하고 그 부모님은 우리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서 내가 혼나는 구조였다. 아니.... 수학여행 때 반팅을 했고 그래서 어떤 남자아이랑 계속 짝꿍이 되어서 그 애가 나에게 음료수를 사 줬다. 이런 이야기였는데. '왜 순수한 우리 딸에게 그런 이야기를 하느냐...'...... 그래서 정말 나도 말 조심하고 그 동생도 나를 참 좋아하니까 어지간한 사실은 말을 안 했는데 정말 사소한 일도 그 동생의 부모님에게는 거슬림이 된다는 사실을 깨닫고 나중에는 연락을 하지 않게 되었다. 나는 정말로 슬펐다. 우리는 서로 너무 잘 통하고 즐거운데, 왜 나에게 직접 이야기하는 것도 아닌 우리 부모님에게 이야기를 해서 아빠는 나에게 경위를 묻고 나는 설명하고 납득시키고 이런 과정이 수없이 반복이 되어야 한단 말인가. 그 동생은 정말 똑똑하고 경쾌한 아이였는데 마땅한 친구가 없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아이를 지키려는 부모님의 적극적인 노력이 오히려 다 가지를 쳐서 친한 친구들 조차 다 잘라낸 형국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지금도 그 친구와 연락을 하고 싶지만 그 부모님이 두렵다. 아직도 우리 부모님과 같은 교회에 계시기 때문에 내가 말하는 사소한 작은 일도 문제라는 것을 최근에 또 겪고 나니 이젠 정말 노노다. 그 친구도 이유는 대강 알고 있다. 내가 자기가 싫어서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아. 소제목은...

우리 반에 말수도 적고 성실한 친구가 한 명 있는데 정말 열심히 한다. 열과 성을 다해서 그림을 그리고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보여서 이 아이는 매번 나에게서 수채화 용지를 받아간다. 다른 아이들에게 "너도 줄까?" 물어보면 바로 "아니요." 하는데, 이 아이는 너무나 기쁘게 받아가서 집에서 열심히 복습을 하고 그려보고 있다고. 수채화 용지 300g짜리가 좀 비싸다 한들 무슨 상관이람. 제자가 열심히 하겠다는데 안 퍼줄 선생님이 있겠는가. 똑같이 떡을 줘도 예뻐서 주는 떡과 어떻게든 회복시키려 주는 떡은 좀 다르다는 것을 새삼 생각해 본다. 후자의 떡이 더 의미가 깊을 것이라 여겨지는데 더 큰 다짐과 용기가 필요한 것도 사실이다. 으쌰.

매거진의 이전글 그 자리에 서 봐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