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년에서 도서 담당 업무를 맡고 있다. 학년마다 기본적으로 해야 하는 업무들이 있다. 인사관련도 있고 평가도 있고 준비물 구입 등등 업무들이 최소한 열 가지는 된다. 물론 그 이상이지만 크게 나누면 그렇다. 다행스럽게도 우리 학년은 딱 10개반이 있어서 업무를 모두 하나씩 나누어 가졌다. 그 말은 학급의 수가 적으면 한 선생님마다 서너 개 이상의 업무를 맡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아무튼, 책을 좋아하는 나는 도서 담당이 되어서 행복하게 생각한다. 책 관련 행사를 계획하고 실행에 옮기고 도서 구입을 담당한다. 도서 구입이라니 얼마나 두근두근 거리는 작업일까! 싶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물론 신나는 마음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학교에서의 도서 구입은 좀 다르다. 내가 사고 싶은 책을 온라인 서점 장바구니에 담아서 그냥 뚝딱하고 사면 되는 시스템이 아닌 것이다.
일단 학교에 재고가 어느 정도 있는지 파악해야 한다. 학교에 없는 책으로 구입할 것, 있더라도 수량이 매우 적은데 아이들에게 인기가 폭발적으로 많거나 낡아서 너덜너덜해진 경우라면 새로 구입을 해야 한다. 그리고 장서 비율도 따져야 한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은 문학이다 물론. 그러니 상대적으로 취약한 비문학 장르를 늘 조금 더 구입할 것을 회의에서 요구받는데, 아이들 용 책으로는 비문학 분야의 책이 생각보다 많지는 않다. 아니, 많기는 많지만 손길이 선듯 갈 만큼 매력적인 제목이나 판본의 책이 드물다. 인물이나 과학 쪽은 그래도 인기가 있지만 사회 경제 같은 분야쪽은 찾기가 참 어렵다. 갑자기 찾으려면 어려우니 평소에 오가다가 눈에 들어오는 책들은 장바구니에 미리 담아두었다가 이때 활용하고 있지만 여전히 턱 없이 부족하다.
추천 목록도 받아보고 온라인에서 내용이나 그림, 어휘 수준도 확인하고 리뷰도 확인한 다음 이제는 엑셀 시트에 입력을 한다. 책 제목과 저자, 출판사는 물론이거니와 할인 전 가격과 출판사와 출판연도와 수량까지 입력해야 된다. 가능하면 5년 이내의 신간으로 구입할 것을 권유하고 있지만 간혹 그 이전 책들이 들어가기도 한다. 이렇게 한참을 하고 나서 얼마나 샀나 보니 겨우 20여 권이다. 올해는 예산이 좀 줄었는지 60만원 정도 밖에 살 수가 없다. 그래서 더 사고 싶은 책들을 팍팍 살 수 없어서 조심조심 담는 중이다. 교사용 도서도 구입할 수 있는데 세상에. 16만원 가량 구입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번에 원서를 두 권 정도 보고 싶어서 담았닥 그냥 조용히 삭제했다. 두 권을 합친 가격이 6만원이나 되었으니, 나 빼고 아무도 안 볼 것 같은 원서를 굳이 학교 도서관에 비치할 필요는 없다.
일은 겹치려면 겹쳐서 온다. 오늘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만 앉아 있었다. 중입배정 원서를 하나하나 작성하고 도서 목록을 완성하니 퇴근 시간은 이미 넘겼다. 머리가 너무 아프지만 오늘이 마감이다. 아차차. 작가와의 만남 관련 내용을 아직 전달 안 했다. 이번 주 목요일 우리 학교에는 엄청 핫한 몬스터 차일드의 작가 이재문 선생님이 오신다. 패들렛을 미리 만들어서 알려주었더니 아이들이 정성스럽게 질문과 소감을 남겼다. 처음에는 나도 설레었으나 업무에 치이다 보이 설렘 따위.....일단 지금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도 나의 업무는 일단 여기서 마무리된다. 정말 안쓰러운 분은...바로 사서 선생님이다. 수 백 권의 책들이 오면 일일이 스티커를 붙이며 등재 작업을 하고 자리를 만들어 주는 일은...정말 노동이다. 여리여리한 사서 선생님이 그 많은 책들을 정리하시는 풍경은 정말 감사와 송구함이 공존한다고 해야 할까. 그러고 보니 나도 우리집 책장을 한 번 정리하기는 해야 한다. 사서 선생님의 목장갑이 내게도 있다. 모르면 그러려니 했겠지만 책은 무거울 뿐 아니라 은근히 먼지도 많다. 집에 있는 열 몇 개의 책장도 버거운데 저 넓은 도서관을 관리하시는 사서 선생님께는 매일매일 존경의 마음이 들 수 밖에 없다. 이 자리를 빌려서 정말 수고하시는 모든 사서 선생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매년 수고에 정말 감사드립니다. 내년도 잘 부탁드려요! (연체된 책은 빨리 반납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