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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06. 2024

왜 쟤는 6학년 때 저러냐고요

조금 늦게 성장하는 아이가 있다. 옛 제자의 동생이기도 한 그 아이는 담임으로 만나기 전에도 그냥 종종 눈에 띄었다. 누나 선생님이라고 반가워하는 그 미소가 유독 더 진해서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아이는 학년초부터 다른 아이들과 트러블이 많았다. 전에도 썼지만 정작 별 마크를 달고 온 아이는 지금까지 조용한데 비해 단연코 화두의 중심인 적이 꽤 많았다고 할까. 학습부진이 그냥 단순 학습부진이 아닌 것 같다는 의심에 위클래스 선생님과 상담을 하고 결국 아이는 전문 치료를 받기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다.


여러 사정을 듣고 나서 조금 더 마음을 쓰고 있었는데 유독 한 친구와 자주 부딪쳤다. 우리반에서 운동을 제일 잘하고 유머감각이 넘치는 친구였다. 왜 그럴까 계속 지켜 보았다. 내가 볼 때 아이는 그 친구와 가까워지고 싶었다. 그리고 또 한 번 겨루어 보고도 싶었다. 초등학교에서는 남자아이들 중 운동 잘 하는 아이가 제일 영향력이 있다. 물론 조용히 자리를 지키면서 영향력을 발휘하는 경우도 종종 있지만 드러나는 것은 그러하다. 그러니 남자아이들의 탑인 것 같은 저 아이와 친해지고도 싶고 한 번 이겨보고도 싶은 것이다. 그러나 신체 능력상으로도 유머로 휘어잡는 면에서도 그건 어렵다. 그러니 아이는 종종 그 친구의 행동을 따라하곤 했다. 그러다 괜히 비웃어 보이기도 했다. 나는 아직 대인관계에 서투른 아이의 그런 모습에서 중학년인 우리 막둥이의 모습을 보았다. 뭔가 어울리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약을 올리고 따라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어린 저학년 아이들의 모습을.


그렇게 오늘은 좀 크게 부딪쳤다. 그 친구는 속상해 했다. 

"저는 1학년 때 사건이 있고 나서 바꾸었거든요. 그 때 좀 깨달은 바가 있어서요. 그런데 쟤는 왜 6학년인데 왜 저렇게 하는 걸까요?"

도닥도닥 차근차근 이야기를 담아갔다. 아이는 이렇게 늦게 성장하려고 할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하기 어려워했지만 또 사람마다 성장하는 과정이 다르다는 것을 이해는 해 주었다. 고마웠다. 부딪힐 일이 있을 때는 일단은 거리를 두자고 정중하게 말해 주기로 했다. 


그렇다. 어떤 아이들은 어릴 때 빠르게 사회 관계를 알고 그렇게 친구들과의 관계를 확립해 나가기도 하지만 어떤 아이들은 한참 뒤에야 알게 되기도 한다. 모두가 어린 저학년 때는 그래서 담임 교사가 바쁘다. 쉬는 시간에 이르려고 줄 서 있는 아이들을 중재하다 보면 수업 시작 시간을 넘기는 것은 일도 아니다. 그렇게 어려서 빨리 알게 되면 참 좋겠지만 본인의 고유한 개성을 그대로 잘 간직하고 있다가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어서야 뭔가를 감지하고 그제서야 시도하는 아이들도 적지않게 있다. 비단 초등학교 고학년 뿐이겠는가.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어른이 된 뒤에야 시야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겠지. 그래서 중학생이 되어서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졸업한 제자들의 이야기를 건너건너 듣곤 한다. 


"그건 쟤 사정이잖아요." 

"그렇지. 그래도 올해 학년 초랑 비교해 보면 훨씬 달라진 모습이 보이지 않아?"

눈알을 굴리며 잠시 생각하던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다.

"주성이도 노력하고 있는 거야. 그러니까 먼저 경험한 사람들이 기다려 주면 더 좋지 않을까? 너는 이미 잘하는 것도 많고 친구도 많으니까 여기에 조금 넓은 포용력만 있으면 더 멋질 것 같은데?"


그리고 나서 우리는 또 관련 없는 다른 이야기도 많이 나누었다. 그토록 열심히 하던 축구를 갑자기 그만 둔 사정이나 알콩달콩 잘 사귀는 것 같던 여친이랑 갑자기 헤어진 이야기 등등등...그리고는 시크하게 가 버렸다. 이 대화를 끝내기까지 어찌나 정신이 없던지....왜 금요일인데 아이들은 집에 안 가고 교실에서 남아 있으며 까르르 웃고 피아노 치고 열심히 토론을 하는지 둘이서 조용히 대화를 나누기 정말 쉽지 않았다. 어쨌거나 했고! 남은 2학기 동안 서로서로 더 성장하길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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