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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울 Sep 04. 2024

지랄 총량의 법칙

와아.... 평소에 초성으로라도 안 쓰는 단어를 대뜸 제목에 탁 하고 쓰고 나니 심히 고민이 된다. 이거 나중에 삭제해야 하는 것 아닐까? 아니면 수정이라도????


가끔 생각한다. 이 초등학교 아이들의 에너지를 감당하기가 버거울 때가 있다고. 문제는 내년은 심히 더 걱정이 된다는 것이다. 나는 6학년이 좋다. 과목도 재미있고 아이들과의 티키타카도 좋고 남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대로 순수한 면면이 귀엽고 여자 아이들은 여자 아이들대로 그 소녀소녀한 성장과정이 사랑스럽다. 그리고 보통 6학년이 되면 지난 5년간 학교 생활을 해 오면서 많이 깎여서 오니까 그것대로 괜찮다. 물론 아닐 때도 있다. 재작년 6학년 같은 경우는 전교에 소문난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좋은 의미로. 그래서 6학년을 희망하는 선생님들의 경쟁률은 정말 치열했고 보통 마지막 해를 남겨두신 선생님들이 점수를 쌓아 올려서 쟁취했다고 한다.


그러나 그 해 나는 쉽지 않았다. 영어 교과 전담교사로 6학년은 4개 반, 5학년은 3개 반을 들어갔는데 정말로 쉽지 않았다. 한 반은 절대 발표를 안 하고 내게 집중을 안 하던 반. 그 산만함이 견디기 어려웠다. 그러다 문득 담임 선생님과 함께 하는 수업 시간을 지나가면서 보게 되었는데 배신감이 철철철. 그 산만하고 집중 안 하는 아이들이 담임 선생님 수업 때는 엄청난 천사들이 되어서 착실하게 수업을 듣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다음 반은 어찌나 에너지가 넘쳐나는지. 그런데 수업에 집중하는 에너지가 아니라 본인들만 즐거워 낄낄 웃는 그런 반이었다. 여기는 여기대로 또 수업이 힘들었다. 그리고 다른 한 반은 자꾸 떠들어서 그것대로 힘들고, 마지막 한 반만 정말 최고로 집중력도 좋고 수업도 열심히 하는 그런 반이었다. 


분명히 착하고 예쁜 아이들이라고 소문이 자자했는데 6학년이 되어서 이렇게 변한 것은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드디어 사춘기에 접어 들어서 그동안 말을 잘 들었던 순종의 기운이 사라지고 분출이 되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다른 아이들과 새로운 반이 되면서 예상치 못했던 시너지가 발생하는 바람에 그럴 수도 있다.


지금 현재 5학년 아이들이 악명이 자자했다. 아무도 5학년을 희망한 선생님이 없을 정도로 다른 학교에서 전근오신 선생님들조차 5학년을 쓰지 않을 정도로 유명한 학년이었다. 학년초부터 진행되던 학폭만 몇 건인지 모른다. 거기에 6학년 특유의 힘듦이 더해질 내년에 과연 6학년을 희망하실 분들이 계실지 의문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희망한다. 제발. 내년에는 다른 모습이 되어서 나타나기를. 


이전에 2학년과 3학년을 한 적이 있었다. 번갈아 가면서 한 해씩 힘들었는데 2학년 첫 해는 정말로 날짜를 지워가면서 그 학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그렇게 디데이를 세어 본 것은 두 번째였는데, 우리 반에서 사방으로 갈라놓은 아이들은 그다음 해 여지없이 담임 선생님들의 상담 요청이 쇄도했다. 그 아이들의 명성은 4학년까지 2년을 이어갔다. 


교실에서 교탁을 발로 차면서 뗑깡을 부리던 아이, 친구 물건을 창 밖으로 던져 놓고는 나 몰라라 하던 아이, 교묘하게 친구를 괴롭해 놓고는 모르는 척하는 아이, 툭하면 교실 밖으로 나가 다른 층에 있는 엄마에게 달려가는 아이 (교사 자녀였음), 문을 쾅쾅 닫으면서 온갖 화를 분출하는데 학부모는 찾아와 나에게 아이를 너그럽게 감싸서 이해해 달라고... 우리 아이는 집에서도 욕설을 들은 적이 없는데 어디서 욕을 배워서 할까요? 가정보다는 선생님의 지도가 절실하다고 말하던 그 아이, 그 해는 정말 총체적 난국이었다. 


그런데. 5학년이 되면서 서서히 잦아들더니 6학년이 되자 아주 모범생으로 변했다는 소식이 조금 들려왔다. 물론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2학년 때 그 난리를 피웠던 아이들의 이름은 예전만큼 자주 들려오지 않았다. 심지어 나를 너무 괴롭혔던 한 아이는 완전 모범생으로 변해서 그 아이의 담임이 된 다른 선생님은 그 아이 칭찬을 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반대로 천상 모범생이라던 어떤 아이들은 갑자기 돌변하여 요주의 인물로 변신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 반의 VIP 마크를 달고 온 그 아이도 그랬다고 한다. 아무도 그러리라 주의조차 하지 않았는데 갑자기 친구를 괴롭히고 폭력을 휘둘러 정말 큰 사고가 날 뻔했다고. 


그래서 가끔 생각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는 대체로 한 번은 ㅈㄹ를 떨어야 하는 일정한 양이 있는데 그 시기가 언제냐 하는 것이라고. 저학년 때 했으면 해 볼만큼 해 보면서 겪을 만큼 겪어 보니 이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것을 알아서 고학년 때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고 안 해 본 아이들은 그동안 참고 참던 것이 어떤 사소한 것을 계기로 빵 하고 터지는 바람에 그 힘든 시기를 보내는 것이라고. 그래서 또 은근 슬쩍 희망을 가져보는 것이다. 저 악명 높은 5학년 아이들이 내년에 6학년이 될 때는 가지고 있는 ㅈㄹ의 양을 다 소진해서 천사는 아니더라도 덜 악명이 높게 될 지도 모른다고.


그래서 가끔 졸업한 제자들이 찾아와 울고 가거나 사과의 편지를 보내는 경우가 있다. 돌아보니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고 정말 죄송하다는 것이다. 그래. 그렇게라도 해서 마음에 맺힌 것을 풀고 이제는 그렇게 안 하면 되었다. 그렇게 생각하자 갑자기 두려워진다. 나는 지금까지 그렇게 심각한 ㅈㄹ를 떨어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 혹시 나이가 더 들어서하게 되면 어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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