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중학교 1학년 우리 둘째의 생일이다. 지난겨울 아이들이 하도 닌텐도를 사달라고 해서 크리스마스 선물과 생일선물을 합쳐야 가능하다고 했다. 미안하지만 몇 십만 원짜리 고가의 선물을 착착 사줄 수 있는 형편이 정말로 되지 않았다. 두 배로 뛴 이율 앞에서, 그리고 동결되다 못해 마이너스가 되어 버린 비정규직 신랑의 수입 앞에서 나는 정말로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올해 아이들의 생일 선물은 없다. 어쨌거나 아이들도 그래서 바라진 않고 있지만 그래도 그냥 넘어갈 수 없는 것이 엄마 마음.
아마도 다른 아이들 같으면 이렇게까지 요구하지 않았을 것인데 우리 둘째는 어려서부터 자기 것은 정말 야무지게 잘 챙겼다. 큰 딸아이는 자라하고 챙겨놓고 나오면 10분 남짓 조금 울다가 잠들었는데 둘째는 2시간을 악을 쓰며 울었다. 2시간을 울리다니 정말 나쁜 엄마 아닌가 싶으시겠지만 나는 정말 이 아이를 한시도 내려놓을 수 없었다. 내 품에서 떨어지는 순간 정말 엄청나게 우는 이 아이를 안고 종일 집안 일과 큰 아이를 돌보면서 번역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하다 하다 지쳐서 내려놓았는데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아서 결국 문을 열고 들여다보니 벽을 부여잡고 울고 있었다. 10개월 정도? 그래.... 네가 이겼다....ㅠㅠㅠㅠ
아빠에게는 아예 가지도 않고 그나마 외할머니가 와서 업고 밖으로 나가면 울음을 조금 그치는 정도로 까탈스럽고 고집 센 둘째가 중학생이 되었다. 여전히 한 고집하고 못되게 굴지만 확실히 야무지기도 하고 또 쌀쌀맞은 것 같아도 어설픈 막둥이를 확실하게 챙겨주기도 하는 알 수 없는 작은 누나가 둘째 딸이다. 이 아이의 생일 요구 조건은 엄마와의 데이트였다. 요새 나와 딸아이들이 빠진 요거트가 있는데 바로 그릭데이 제품들이다. 꾸덕하고 부드러운 것이 어찌나 입에서 살살 녹는지 이젠 다른 그릭 요거트들은 못 먹겠는데 그릭데이는 또 고가다. 홈플에서 2+1으로 나와서 한 번 사 먹다가 그만 헤어 나올 수 없게 되었는데 이제 이벤트도 하지 않고 정가는 정말 비싼데 그릭데이 지점으로 직접 가면 마트보다 2000원가량 싸게 살 수 있다. 그리고 다양한 토핑을 즐겨서 먹을 수도 있고.
둘째는 바로 나에게 그릭데이 지점에 함께 가서 맛있는 그릭요거트를 먹을 것을 요구했다. 그쯤이야... 싶었지만 셋째가 아파서 사흘 내내 좀 정신이 없었던 차라 교회에서 일찍 와서 쓰러져 있었다. 당당하게 나를 깨우면서 일어나라고 일어나라고.... 그렇지.... 네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지.....
비몽사몽 겨우 눈을 뜨고 챙겨 입고 아이랑 버스를 타고 서울대입구로 향했다. 가는 길에 들으니까 아빠에게 생일 기념으로 용돈도 받았다고 했다. 올리브영과 아트박스가 우리를 유혹했지만 잘 넘겼다. 하지만 다음 순서인 옥외 옷 매장에서는 결국 반팔 티를 두 벌 샀다. 그냥 저렴이 가성비 생일 선물이라고 하자. 어제 못 찾았다고 투덜거리던 그릭데이 매장에서 다양한 토핑을 올려주고 나도 하나 같이 먹었다. 나는 오늘의 저녁은 이것으로 끝이다. 이제 케이크를 사러 가야 한다. 선물이 없다고 케이크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서울대입구 유명 빵집 아띠로 가서 난생처음 케이크를 사고 통밀빵을 집었다. 둘째는 마카롱 쿠키를 참 좋아하는데 지금 단 거 금지 기간이라 안 됨. 에그타르트를 가리키는데 역시 안 됨. 마지막으로 소금빵은 됨. 내일 아침에 먹으라고 했다. 다시 길을 건너서 버스를 타고 둘이 집으로 왔다. 할머니에게서 원하는 책도 받았으니 결국 공식적인 생일 선물만 없었지 받을 것은 다 받은 셈이긴 하다.
그리고 물질만이 아닌 시간을 요구한 것도 야무지다. 결국 너와 나 사이 오래오래 남을 것은 이런 소소한 추억일테니.
둘째는 우리 집 아이들 네 명 중에서 나랑 가장 웃음이 통하는 아이다. "엄마 그거 구려요."라고 아주 대놓고 말하는 특이한 성격의 소유자이기도 하지만 그냥 눈이 마주쳐도 "이히히"하고 웃게 되는 친구 같은 딸이랄까.
지난번에도 둘이서 나갔을 때 빵집 아주머니가 나에게 "날씬하신데요?"라고 하셨다. 나오는 길... 둘째가 나에게 하는 말. "그 아줌마는 엄마의 뱃살을 못 봐서 그래요." "야!" "뭐 그렇다고요." 그러더니 슬쩍 붙인다. "뭐 날씬하게 보였을 수도 있죠."
"나도 저 언니처럼 저런 치마 입어보면 어울릴 것 같아?" "아니요." "왜???" "저 언니는 어울리지만 엄마한테는 안 어울린다고요." "아니 그러니까 왜?" "왜긴 왜예요. 딱 봐도 아니구먼."
이래서 딸은 평생 친구라고 하는가 보다 생각이 드는 건 다 둘째 덕이다. "엄마 미워!" 하다가도 "엄마가 제일 좋아! 엄마만 좋아! 안아줘요!" 이러는 이 아이가 내 딸이어서 참 좋다. 둘째 낳고 있었던 친정에서 봄기운을 만끽했던 것도 기억난다. 황사도 미세먼지도 꽃가루도 날리는 봄이지만 그래도 좋은 봄날이다. 생일축하해 다인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