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독임이 필요한 당신

개여울` song by 아이유

by 오정연

1922년에 발표된 김소월의 시 `개여울`. 시인은 이별의 슬픔 그리고 재회에 대한 희미한 기대를 `개여울`이라는 장소를 매개로 절절히 표현해 냈다. 개여울은 순우리말로 개울가, 여울목을 말한다. 여울목은 조용히 흐르는 물이, 폭이 좁아지거나 얕아져서 턱이 생겨 물결이 거칠어지는 곳이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주저앉아서

파릇한 풀포기가 돋아 나오고 잔물이 봄바람에 헤적일 때에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시던 그런 약속이 있었겠지요

날마다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하염없이 무엇을 생각합니다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https://www.youtube.com/watch?v=kj71jzO5U8k&list=RDkj71jzO5U8k&start_radio=1


기자이자 시인 이상국님은 시에 나온 `떠난 이에 대해 담은 마음`을 `원망으로 바꾸지 않고 고독 속에서 스스로 따뜻해지는 반듯한 사랑을 소월은 저 평이한 호흡의 시에서 살그머니 건져 올렸다` (출처 : 아시아경제 | https://www.asiae.co.kr/article/2013041211232137490 )라고 평했다.


소월의 또 다른 시 `엄마야 누나야 `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부분 알 수 있는 구전 동요로, 시인의 대표 시로, 동시대롤 함께 했다. 〈진달래꽃〉, 〈산유화〉, 〈금잔디〉, 〈초혼〉, 〈왕십리〉, 〈못 잊어〉 등 우리 역사와 민족의 한과 정서를 대변하는 서정적 시를 써온 김소월. 그의 시는 음률이 부드러워 유달리 노래로도 잘 불려지는 것 같다. 시를 소리 내어 읊다 보면 울컥한 파도 같다가도 잔물결처럼 평상심을 향해가는 아름다움이, 마치 `이 시인은 수도자 같구나` 하는 인상을 받는다.


소월의 시 `개여울`에서 `가도 아주 가지는 않노라 심은`이라는 대목을 읊조리며 `희망고문`이라는 단어를 떠올린다. 상대방에게 좋은 사람이고 싶고 그 순간은 상대방을 배려하였노라 착각하지만 실은 책임감 없는 회피형 거절인 거다. 개여울처럼 폭이 좁아져 안 갈 것처럼 더디 흘러도 결국엔 속절없이 가버린 물결처럼 `간다`가 핵심인 것이니까.


떠나간 자와 남은 자에 대해 생각해 본다. 특히 `개여울` 가사처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일어난 이별에 대해서. 그리고 생활 속에서 간헐적으로 건네야만 했던 거절에 대해서도.

`헤어질 결심`이라는 박찬욱 감독의 영화제목처럼, 인연이 아니라는 마음을 먹었다면 `미련의 꼬리`까지 책임지고 거둬가는 것이 남겨진 사람에 대한 예의일 것이다.

만약 내게 버거운 부탁이라면, 부드럽고 단호한 거절이 요청한 사람에게는 다른 방법을 찾을 시간 절약의 의미에서 배려인 것이다.


내가 좋아하고 사랑했던 이가 이미 마음이 떠나가고 있음을 알아챘거나, 만남이 더 이상의 의미 없음을 정확하게 말하지 않은 채로 시간만 질질 끄고 있는 상황이라면, 아직도 채우고 싶은 마음이 있는 이가 용기를 내어 봐도 좋겠다. 이러할 때는 질문을 통해 상대방의 의향을 확실하게 확인받는 과정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내 마음이 더 이상 아프거나 반복해서 다치는 상황으로부터 나를 지켜내야 한다.


어렵지만 조심스럽게 부탁했던 무언가를 상대방이 확실하게 수락한 것도 거절도 아닌 상태로 애매하게 시간만 흐르고 있다면, 이 또한 그 사람의 선택과 결정을 확인받고 빨리 다른 대안을 모색하는 것이 서로의 관계를 어긋나지 않게 도울 것이다.


굳이 `잊지 말라는 부탁인지요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개여울 노래 속 이 가사는 확실히 말하지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로 떠난 이에 대해, 그리고 자신의 남은 감정을, 개여울 물을 통해 걸러내며 다독인다. 상대가 에둘러 말한 본 뜻을 알아차리며 자조하듯 자신을 위로한다. 이상국님의 평처럼 `스스로 따뜻해지는 반듯한 사랑`을 아는 이인 것이다.


나는 시 `개여울` 이 `성숙한 사람의 이별에 대한 애도의 시`라서도 좋지만 1972년도에 발매된 정미조의 옛 노래를 음악가이자 프로듀서인 `정재일`님이 편곡하고 가수 `아이유`가 부른 영상으로 만나는 것을 더 애정한다.

긴 단발에 버건디 원피스를 입은 아이유가 반듯하게 손을 모으고 두 눈 마저 꼭 감고 첫 소절을 불렀던 `jtbc 음악예능 `너의 노래는-2019 개여울 편`. 영혼을 실은 듯한 정재일의 압도적인 피아노 힘과 아이유의 여리지만 단단한 울림 있는 목소리가 균형을 이뤄 경이로운 소름을 돋게 한다.

정제되고 절제된 그러나 다독이는 힘이 있는 위로가, 따스하고 서정적인 사랑이 전해지는 소월의 시가 좀 더 피부 가까이 다가오는 경험이었다고 할까.


졸업과 입학이 있는 계절이 오면, 그리고 퇴사와 취업의 관문에서, 그리고 새 학년이 바뀔 때, 소월의 시처럼 누군가와 작별의 시간을 경험할 때, 특히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있는 이들에게 시인 김소월의 시는 찬찬히 스며들며 다독이는 언어로 우리에게 위로를 전해줄 것이다.


우리에게도 `개여울` 같은 장소나 대상이 간간히 필요하다. 격려가 필요할 때, 결단을 내어야 할 때, 잔잔한 위로가 간절할 때 말이다. 그러한 당신에게도 `개여울` 같은 곳이나 잘 들어주는 대상이 되어주는 누군가가 한 명쯤은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스스로도 충분히 다독일 수 있는 당신이 되어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사진출처: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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