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막길 song by 정인
https://www.youtube.com/watch?v=-iCOl3JvaDw
목소리가 지문인 가수들이 있다. 가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특별한 음색을 가진 이 가수를 노래를 들으면 `아 그녀구나` 바로 알아차릴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인 가수 `정인`. 그녀의 노래 중에 내게는 단연코 `오르막길`이 넘버원이다. 유튜브로 `오르막길`을 검색하면 이 노래를 작사, 작곡한 윤종신, 그리고 김필, 하림, 성시경 등 호소력 짙은 이들의 커버곡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마음을 진동시켜 버린 커버 곡의 주인공은 가수가 아닌 무명배우 이서환의 2022년 `뜨거운 싱어즈` 예능 무대였다.
배우 이서환을 말하기 전에 JTBC `뜨거운 싱어즈`의 소갯말을 먼저 만나보자.
`열정 만렙 시니어들이 뜨거운 가슴으로 노래하는 합창단 도전기.
경력 도합 500년, 나이 도합 990살 배우들의 합창 Sing트콤!`
`뜨거운 싱어즈`는 2022년 3월 14일부터 5월 30일까지 JTBC에서 방송된 예능 프로그램이었다. 존경스러운 배우 김영옥, 나문희 님을 필두로 중년의 배우들이 함께 호흡하여 화음을 쌓아가고 잔잔한 연대감을 보여준 아주 근사한 프로그램이었다. 필자는 합창단의 자기소개 무대에서 배우 이서환을 처음 보았다. 이전에도 단역으로 본 기억이 어렴풋하게 있었으나 크게 존재감이 없었던 터였다. 자신을 소개한 직후 가사와 함께 이서환 배우의 담담하고 진솔한 목소리가 겹쳐 나오는 장면은 뭔지 알 것만 같은 울컥함을 전해 주기에 충분했다. 노래 중간에 나문희 배우님의 격려 박수 또한 따스해 보였고, 그 무대를 지켜본 김문정, 최정훈 공동 음악연출가들은 눈시울은 조금씩 붉어져 있었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 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완만했던 우리가 지나온 길엔
달콤한 사랑의 향기
이제 끈적이는 땀
거칠게 내쉬는 숨이
우리 유일한 대화일지 몰라
한걸음 이제 한 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 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 줘
그러면 견디겠어 - `정인`의 `오르막길` 가사 일부`
https://www.youtube.com/watch?v=-iCOl3JvaDw
음악신학대에 입학해 CCM 가수가 되기를 소망했던 이서환 배우는 원하던 대로의 꿈이 풀리지 않았고, 방황기 끝에 대학로에서 자신의 제2막을 그려보려 했었다 한다. 하지만 참가한 오디션에 번번이 탈락되었고 자신의 실력을 오래 재정비하고 난 후 32살에서야 노트르담의 꼽추 공개 오디션에 합격하게 된다. 그제야 무대 맛을 느꼈고, 하고 싶은 것을 찾은 마음이었다니 오랜 시행착오와 방황에도 배우의 꿈을 향해 굳건히 견디고 묵묵히 계단을 밝아 올라가는 그의 여정이 한 편의 드라마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는 뮤지컬과 영화, 드라마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장르에 출연하고 있으며, 2024년 개봉한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주인공 `성기훈`의 친구 박정배 역으로 호평을 받으며 이제는 세계적으로 인지도가 올라간 배우가 되었다.
`시대예고` 등 여러 책을 쓴 작가이자 빅데이터 전문가인 송길영 님의 어느 강의에서 `한국 사회는 정답사회`라 말했던 대목이 생각났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좋은 대학에 가고, 대학을 졸업하면 괜찮은 직장에 취직하고, 어느 정도 직장에 익숙해졌을 무렵 결혼할 시기에 맞춰 짝을 찾고, 그리고 몇 년 사이에 자녀를 두는 것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기준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정답사회`의 기준으로 보면 배우 이서환의 20대는 정말 암울했을 시기였을 것이다. 원하던 대학에 갔으나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상황이 풀리지 않아 쓰디쓴 좌절을 경험했을 터이고, 방황 끝에 새로운 꿈을 찾았으나 그마저도 가시밭 길 이었을 것이다. 풀리지 않는 자신의 인생길, 가파른 그 길 위에서 헤아릴 수 없는 고통스러운 감정들이 오고 갔을 것이다.
`이제부터 웃음기 사라질 거야 가파른 이 길을 좀 봐. 그래 오르기 전에 미소를 기억해 두자 오랫동안 못 볼지 몰라` 그래서인지 `오르막길` 첫 소절을 부르던 이서환 배우의 모습이 그렇게 비장해 보일 수가 없었다. 자신의 20, 30대가 고스란히 녹아있는 노래이기에 보는 사람에게도 그 사연이, 그가 느꼈던 감정들이, 깊숙이 와닿았으리라.
상담 현장에서 만난 다양한 세대의 분들의 사연을 듣다 보면 짧은 삶 속에서 성공만을 채워 넣고 살아오다 20대 초입의 새로운 도전 속에서 첫 좌절에 불안과 혼란을 경험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고, 반면 태어나면서부터 겪지 말았어야 할 갖은 풍파를 겪다 보니 이미 `패배자`의 마음으로 사는 이들도 있었다. 자신의 진로조차 흐릿해 무얼 할지 모르는 암담함을 호소하는 이들도 있고, 간절한 꿈은 있으나 재능이 부족하다는 현실 자각으로 괴로워하거나, 경제적인 어려움으로 한걸음 한걸음의 과정이 고통스러운 경우도 있었다. 우리의 지문과 생김새가 다르듯 그들의 고통과 힘듦 또한 같지 않았다.
하지만 인생의 오르막길에서 자신이 갈 방향을 간절히 정하고 싶어 했고, 괴롭고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하루에도 여러 번 차올라도 그럼에도 묵묵히 한 걸음 나아가고 버티는 힘을 찾아가는 분들 이였다. 그 사실을 자신만 몰랐거나 인정해 주지 않아서 혼란스럽고 공허해졌던 모습이었다.
`한걸음 이제 한 걸음일 뿐
아득한 저 끝은 보지 마
평온했던 길처럼 계속 나를 바라봐 줘
그러면 견디겠어`
`오르막 길`의 저 가삿말처럼 아득하고 근사한 그렇지만 멀기만 한 목표만을 보고 가면 쉽게 사기가 꺾기 거나 현재의 내가 초라해 보일 것이다. 미소와 웃음이 있었던 긍정적 경험을 기억해 내어 보고, 태어날 때 갖고 있었던 밝고 무궁무진했던 원래의 내 모습을 마음 안에서 재생해 보자.
`계속 나를 믿어주고 바라봐 주는 내 안의 목소리`를 지켜낸다면, 그러면 아주 기나긴 오르막길의 여정에서 힘이 되고, 견딤의 마중물이 될 것이다.
버티고 만들어간 인생의 지문들이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워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