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

연재소설

by 미아






7장. 변화






서울의 밤은 조용했지만, 미아의 마음은 요동치고 있었다.

태오와 함께하는 시간은 늘 행복했다. 그와 있으면 편안했고, 따뜻했다. 그가 들려주는 진중한 말들, 함께 나눈 소소한 일상, 어두운 길을 걸을 때도 자연스럽게 내밀어 주던 그의 커다란 손… 모든 것이 좋았다. 하지만, 그 온기가 점점 부담으로 다가왔다.

그는 그녀를 너무 많이 도왔다.

아버지의 사업이 흔들릴 때, 미아가 알기도 전에 태오는 발을 벗고 나섰다. 어려운 계약을 성사시키고, 투자 문제를 해결하고, 사업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왔다. 미아의 동생이 유학을 준비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은근히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길을 찾아주었고, 학교 측에 직접 연락까지 했다.

처음엔 너무 고맙고 감사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미아는 점점 더 태오에게 빚을 지는 기분이 들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도움받는 게 당연한 걸까? 이건… 내가 원했던 관계가 아니야.’

마음속에서 불안이 점점 커졌다. 그와 함께하는 게 행복한 동시에, 너무 무거웠다.

그리고 오늘, 그녀는 결정을 내렸다.


늦은 밤, 한강이 보이는 카페. 창가 자리에서 미아와 태오는 마주 앉아 있었다. 가로등 불빛이 창에 반사되어 은은한 빛을 만들고 있었다.

태오는 여느 때처럼 따뜻한 눈빛으로 미아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미아의 표정은 어두웠다. 테이블 아래서 두 손깍지를 꼈다가 풀고,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떼었다.

태오가 먼저 말을 걸었다.
"무슨 일 있어요? 요즘 많이 생각이 많아 보여요."

미아는 한참을 망설였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차가운 손가락을 테이블 위에서 살짝 움직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 그만 만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그 순간, 공기가 얼어붙었다.

태오는 미동도 없이 미아를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의 말을 이해할 수 없다는 듯이 한참을 머뭇거리다 겨우 입을 열었다.

"… 갑자기 무슨 말이에요?"

그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고, 감정을 억누르려는 듯했다.

미아는 목이 메었지만, 힘을 내서 말을 이었다.
"너무… 너무 많은 걸 받아서, 너무 많은 도움을 받아서… 부담스러워요."

태오의 얼굴이 굳어졌다.

"부담스럽다고요?"

"네. 태오 씨는 나 모르게 아버지 사업을 도와줬어요. 동생 유학도 도와줬고요. 다 나 때문이잖아요. 그런데 난… 아무것도 해줄 수가 없어요. 그냥 계속 빚을 지는 기분이 들어요."

"미아." 태오는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난 그걸 빚이라고 생각한 적 없어요."

"하지만 나는 그렇게 느껴요." 미아는 눈을 질끈 감았다가 다시 떴다.
"우리가 사랑해서 만나고 있지만, 어느새 난 태오 씨에게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어요. 그래서 그게 너무 힘들어요."

"의지하면 안 돼요?"

"의지하고 싶지 않아요. 난 내 힘으로, 내 방식으로 살아가고 싶어요."

태오는 조용히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아의 속마음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녀가 이렇게까지 힘들어했다는 걸 눈치채지 못했다.

"미아. 난 당신을 위해서라면 뭐든 하고 싶어요. 당신이 말하지 않아도, 그냥 모든 걸 다 도와주고 싶어요.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그렇게 하는 건 당연한 거잖아요."

"하지만 난… 부담스러워요."

그녀의 한 마디가 칼날처럼 태오의 심장에 박혔다.

태오는 숨을 깊이 들이쉬었다. 지금 그녀가 밀어내려고 한다는 걸 알지만, 그럴수록 더 붙잡고 싶었다.

"그럼 내가 가만히 있어야 했나요? 당신이 힘들어하는 걸 알면서도 모른 척해야 했어요?"

"그게 아니라…"

"미아. 사랑하는 사람이 힘들어하면, 난 그냥 지켜보고 있을 수 없어요. 난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니까… 우리가 맞지 않는 거겠죠."

그 말이 나오자, 태오는 처음으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흔들리는 눈빛, 미세하게 떨리는 입술이 미아의 동공에 선명히 찍혔다.

"정말 그 이유예요?"

미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속마음은 전혀 달랐다.

‘아니야. 태오를 정말 사랑해. 사랑하지만, 그래서 더 헤어지고 싶어.’

태오는 그녀가 지금이라도 잡아주길 바라는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미아는 그 시선을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피할 수 없었다.

"태오 씨, 난…"

미아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난 우리가 이렇게 계속 가면, 언젠가 더 큰 상처를 주고받을 것 같아요. 그러기 전에… 여기서 멈춰야 해요."

태오는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힘겹게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어떻게 하면 돼요? 미아가 편해질 수 있도록, 내가 뭘 하면 돼요?"

미아는 눈을 감았다.

"이제 그만… 나를 놓아주세요."

그 말이 나오자, 태오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긴 침묵이 흘렀다.

테이블 위에 놓인 와인 잔 속에 희미하게 비친 서로의 모습이 얼음처럼 얼어붙었다.

태오는 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그녀를 붙잡고, 더 이야기하고, 오해를 풀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을 보자 알 수 있었다.

이건, 그녀가 정말 원하고 있는 거라는 걸.

"알겠어요."

그는 힘겹게 말했다.

"하지만… 내가 당신을 놓았다고 해서, 마음마저 놓은 건 아니에요."

미아는 입술을 깨물었다. 울컥하는 감정을 꾹 참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고마웠어요, 태오 씨."

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돌아섰다.

태오는 그녀를 바라보았다.

멀어지는 실루엣. 한 번이라도 더 불러 세우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사랑하지만 떠나야 하는 사람. 사랑하지만 붙잡을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첫 번째 이별이 찾아왔다.


태오의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그 안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있었다. 포기할 수 없다는 의지와, 미아를 붙잡고 싶지만 더 이상 강요할 수 없는 절제된 애틋함. 그는 평생 원하는 것은 손에 넣는 삶을 살아왔다. 하지만 미아만큼은, 억지로 가질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걸 알았다.

그녀를 향한 감정은 단순한 호기심이나 도전이 아니었다. 그녀를 알게 될수록, 그녀가 자신과 너무 다름에도 불구하고—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더욱 강렬하게 끌렸다. 미아는 그가 모르는 세상을 보여주었고, 그가 살아온 방식과 다른 가능성을 제시해 주었다. 그리고 그는 그 세상을 더 알고 싶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 문을 닫아버렸다.


그러나 태오는 그렇게 쉽게 물러설 사람이 아니었다. 삶에서 중요한 것들이 단번에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치 있는 것이라면 더욱 공을 들여야 한다는 것도 알았다. 그는 한 번 마음먹은 것은 끝까지 밀고 나가는 성격이었다. 미아가 지금은 거리를 두려 해도, 그것이 영원한 끝이라고는 믿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을 필요로 하는 순간이 언젠가는 올 거라고, 그는 확신하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녀가 원하는 대로 보내줄 수밖에 없었다.


그는 마지막으로 미아를 바라보았다. 흔들리는 가로등 불빛 아래를 걷는 그녀의 뒷모습에는 복잡한 감정이 서려 있었다. 그런 미아를 한참을 바라보다 그도 조용히 돌아섰다. 하지만 걸음을 옮기면서도,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하나의 생각만 반복되고 있었다.

'이게 끝이 아닐 거야.'

그는 아주 느리고 천천히 걸었다. 미아 또한 그가 멀어지는 뒷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결정이 옳았는지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물었다.


호주머니에 손을 찔러 넣고 힘없이 걷는,

태오의 머릿속에서 왠지 모르게 오래전 노래가사가 미친 듯이 반복적으로 맴돌았다.


"내 곁에만 머물러요..

떠나면... 안 돼요..

그리움 두고 머나먼 길...

그대 무지개를 찾아올 순 없어요..

노을 진 창가에 앉아

멀리 떠가는 구름을 보며..

찾고 싶은 옛 생각들 하늘에 그려요

불어오는 차가운 바람 속에

그대 외로워 울지만

나 항상 그대 곁에 머물겠어요

떠나지 않아요..."



쓸쓸했다. 그렇게 쓸쓸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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