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영화 <리브 더 월드 비하인드 Leave the World Behind (2023)>는 호화로운 빌라를 빌려서 휴가를 떠난 가족이 갑작스러운 재난과 마주하며 겪는 이야기를 그린다.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사이버 테러를 소재로 하여 인물들의 갈등과 공포라는 감정을 미스터리하게 담아낸 심리 스릴러 영화다. 루만 알람(Rumaan Alam)의 동명 소설 『세상을 뒤로하고』를 바탕으로 샘 에스마일(Sam Esmail) 감독이 연출과 각본을 맡았고, 줄리아 로버츠, 마허셜라 알리, 에단 호크, 마이할라 헤럴드, 파라 매켄지, 찰리 에반스, 케빈 베이컨이 출연한다.
어느 날, 아만다(줄리아 로버츠)는 비수기를 이용해 비교적 저렴하지만, 호화로운 주택을 빌려 브루클린을 떠나 미국 동부 포인트 컴포트 해변으로 가족과 함께 휴가를 떠난다. 한적한 해변 풍경과 쓰레기가 널브러진 모래사장은 대조를 이룬다. 가족은 해변에서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던 중 거대한 유조선이 해변 백사장으로 돌진하는 이상한 경험을 한다.
빌라로 돌아온 아만다는 집 마당에서 사슴을 보는데 좋은 징조로 여긴다. 하지만, 그날 밤 알 수 없는 이유로 집안의 기기가 고장 나고, 전화도 먹통이 된다. 한밤중에 원래 이 빌라의 집주인이라고 주장하는 흑인 남자 G.H. 스콧(마허셜라 알리)과 그의 딸이 갑자기 찾아온다. 이들은 음악 행사에 가는 도중 사이버 공격으로 시내 곳곳이 정전되어 하룻밤만 자기 집에 머물다 가겠다고 하며 G.H. 스콧은 렌트비 반을 돌려줄 테니 아래층에서 재워달라고 한다. 아만다는 건방진 태도로 행동하는 루스(마이할라 헤럴드)가 불쾌하고 신원을 알 수 없는 낯선 이들과 함께 지내는 것이 몹시 불안했지만, 어쩔 수 없이 함께 지내기로 한다.
그런데, 자꾸 이상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한다. 집 앞에는 사슴 떼가 출몰하고, 모든 인터넷이 끊기고 집안의 와이파이는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 내비게이션의 GPS도 전화도 다 먹통이 된다. 그러더니 사이버 공격으로 정전과 함께 모든 전자 기기가 고장 나면서 국가 비상사태가 선포된다. 주변은 점점 아수라장으로 변해 간다. 비행기가 떨어지고 자율주행차들은 제멋대로 고속도로를 달려가 사고를 낸 후 길을 완전히 막아버린다. 아만다 가족은 빌라를 떠나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 시도했으나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다. 미디어와 영어를 가르치는 교수 클레이(에단 호크)는 인터넷이 없으면 길도 못 찾고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이다. 주변을 살펴보려 내비게이션이 작동되지 않는 차를 몰고 나간 클레이는 고립된 도로에서 우왕좌왕하다가 더 혼란스러워져 이내 포기하고 맥이 빠져 돌아온다. 동물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불규칙적으로 들리는 굉음으로 모두 극한의 고통에 시달린다. 심지어 방사능 소음 때문에 아치(찰리 에반스)는 멀쩡했던 이빨이 다 빠져 버린다.
G.H. 스콧은 미래산업 분석가인데, 우여곡절 끝에 이웃으로부터 아치의 약을 구해 돌아가는 길에 클레이에게 국가 붕괴 3단계에 관해 설명한다. 1단계는 모든 방송 통신을 해킹으로 끊고 타깃 국가를 고립시키는 것이고, 2단계는 국가의 모든 시스템을 제거하는 것이고, 3단계는 자연발생적으로 군사 쿠데타를 유도하는 것이다. 누군가 국가를 통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을 때가 더 문제이기 때문에 동시다발적으로 대혼란을 야기해 내란이 일어나면 결국 국가가 붕괴된다는 이론이다. 국가 시스템이 붕괴하고 모든 것이 무너지는 재난 상황에서 위기에 처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무기력한 패닉 상태에 빠질 뿐이다. G.H. 스콧은 결국 "살아남더라도 결코 예전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로즈(파라 매켄지)는 아만다 엄마에게 '웨스트 윙' 드라마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구원받고 싶을 때 신을 기다리기만 하면 안 된다고 말하며, 그녀는 '이제 기다리는 것을 그만할 거라고 한다. 그래서인지 로즈는 혼자서 지하 방공호를 발견하고 그녀가 그렇게 원하던 드라마 <프렌즈> 시리즈의 마지막 회를 시청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재난으로 고립된 상황에서 로즈가 선택한 가장 최선의 방법이 <프렌즈>를 보는 것인데, 이 장면이 말하고 싶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아마도 희망을 잃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은 복잡한 현실을 잠시라도 잊을 수 있는 가장 안락한 것을 찾게 되는 심리가 아닌가 싶다. 로즈처럼,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프렌즈> 같은 드라마를 보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이전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간 느낌을 맛보는 것이다. 자신이 처한 암울한 현실이 아닌 잠시나마 평안하고 조화로운 세상을 꿈꾸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선택지였을 수도 있겠다 생각하니 왠지 처절하다.
G.H. 스콧의 이웃 대니(케빈 베이컨)는 이 모든 것은 한국이 저지른 테러라고 말한다. 어쩌면 중국일 수도 있겠다고 한다. 하지만, 그것도 추측일 뿐이고, 명확한 것은 아니다. 전 세계에 각기 다른 언어로 뿌려진 유인물은 그 실체를 파악하는데 더 혼란만을 가중시킨다. 영화에서는 미국이라는 국가가 붕괴될 정도의 엄청난 재난이 발생하였으나 혼돈과 혼란을 일으키는 실체를 뚜렷하게 밝히진 않는다. 그런 점에서, 사이버테러가 일어나 재난과 고립된 상황 속에서 정체불명의 실체와 마주하며 심리적인 불안과 그로 인한 공포를 미스터리하게 다룬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특징이다. 사람들은 실체를 모르는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며, 그것으로 인한 공포는 실로 상상 초월이다. 왜냐하면 결과를 예측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두렵고 불안할 수밖에 없다.
이 영화는 개인적인 취향에 따라서 호불호가 갈릴 수 있다. 재난을 시각적인 이미지로 보여주는 부분은 극히 일부이고 대부분 인물의 대화를 통해서 재난의 정도를 어림잡을 수 있게 한다. 이들이 나누는 대화를 듣고 관객의 상상력이 합쳐져야 비로소 영화가 완성되는 것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실체가 없지만, 그 실체를 더듬어 상상하면서 각자의 방향으로 이해하는 만큼 그 재난과 공포가 와닿는다. 만약 사이버 테러가 발생한다면, 영화 속 인물들이 느끼는 심리적 불안과 혼돈의 상황은 현실에서도 그대로 재현될 것이 분명하다. 클레이처럼 대부분의 일상을 디지털 기기에 의존해서 살아왔던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을 테고, 당장 패닉에 빠질 테니, 어쩌면 이러한 모습은 그 어떤 재난보다도 위험한 상황으로 몰고 갈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는 의미심장한 영화다.
현관문을 사이에 두고 어둠과 희미한 어둠 사이에 대치하듯 서 있는 이들이 마주한 미래는 한눈에 봐도 그리 희망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G. H. Scott : There is no going back to normal.
G.H. 스콧 : 평소처럼 되돌아갈 순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