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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아 Feb 22. 2024

모래계단

시 창작




모래계단



이른 저녁

우시장 뒷골목 선술집에

홀로 앉아

피비린내를 안주삼아

서늘한 소주를 연거푸 들이켠다


뜨거운 사막에 어둠이 내려앉으면

살에는 추위를 잊기 위해 들이붓던 보드카 향기

허름한 그는 어느새 고향 마을 강둑에 앉아

숨죽여 흐느끼며 배웅하고 돌아서던

보고픈 그녀를 떠올린다


강물처럼 흐르는 오월의 구름 아래

딸기밭 댄스파티에서 흘러나오는 트위스트

파란 미니스커트 여인의 흐트러진 머리칼

수줍은 입맞춤

그대로 아름다운 청춘


라스베가스를 떠나며 주인공처럼

어릿어릿한 사랑을 두고 길을 나선다

검은 비닐 봉다리에 담긴 참이슬 세 병을 품고

초라한 여인숙 쪽방 한 켠에 휘청한 몸을 뉜다


소복이 쌓인 새하얀 눈밭을 지나

첫사랑 그녀는

샤넬 핸드백을 오른손으로 빙빙빙 힘차게 돌리며

남산 계단을 총총히 뛰어오른다


뜨거운 눈물이

사무친 그리움을 녹이고

서늘한 소주를 데운다


파르르 떨리는 전등 불빛

미소 짓는 청춘

그녀는 모래계단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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