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르샬 헤다얏(Mursal Hedayat)이 언니, 어머니와 함께 전쟁 통인 아프가니스탄을 떠나 런던으로 향한 건 1994년, 그녀가 고작 세 살 때였다. 그녀의 어머니 파투니(Patuni)는 원래 10여 년의 경력을 지닌 촉망받는 엔지니어였다. 불행히도, 살고자 넘어온 영국 땅에서 그녀의 꿈은 죽었다. 난민 신분의 그녀에게 주어진 일은 청소부, 직물 공장 직원, 빵집 아르바이트와 같은 육체노동이 전부였기 때문. 생계를 위해 지금껏 쌓아온 공부를 뒤로 한 채 빗자루를 든 어머니 모습을 보며 무르샬은 결심했다. 유능한 난민의 재능이 썩지 않고 빛나도록 돕겠다고.
그렇게 '채터박스(Chatterbox)'가 시작됐다. 채터박스는 난민의 다개국어 사용 능력을 기회 삼아 그들을 언어 선생님(튜터)으로 육성해 학생(튜티)과 연결시켜주는 난민을 위한, 난민에 의한 사회적기업이다. 재작년 8월에 설립되어 현재는 300명이 넘는 튜터가 시리아어, 스와힐리어, 스페인어, 한국어, 중국어 등 11개의 언어 교육을 담당한다.
두드러지는 장점은 무엇보다 일자리와 경력 제공이다. 실례로, 서비스 출시 직후 진행한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튜터 인원의 3분의 1이 튜터링 경험을 계기로 그만두었던 공부를 재개하게 되었으며, 그중 세 명은 대학에서 교직을 제안받기도 했다. 이는 난민에게 새로운 삶을 시작하기 위한 꿈과 희망을 선물한다는 점에서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나아가 영국의 외국어 구사자 부족 문제 해결에도 기여한다. 자국민의 61%가 외국어를 구사하지 못하여 매년 480억 파운즈(한화 약 70조 원)에 달하는 국가 경제 손실액이 발생하는 영국 현실을 고려할 때 채터박스 서비스는 윈윈(Win-WIn) 전략임이 분명하다.
튜티의 반응 또한 뜨겁다. 다음은 한 언론사의 튜티 인터뷰를 일부 발췌한 내용이다. "스와힐리어의 사투리를 쓰는 튜터와 회화 연습을 했어요. 대학의 형식적 틀에서 벗어나 현지인과 자유롭게 대화할 수 있어 좋아요." (Ahmed Dica와 Rebecca Stacy, SOAS 아프리카학과 학부생) 언어 능력의 향상을 넘어 난민에 대한 이해가 확장되는 모습도 보였다. “튜터와 이야기 나누며 그의 본국이 처한 상황이 더욱 와닿아서 마음이 아파요.” (Jacob Marchewicz, SOAS 중국어, 한국어학과 학부생)
튜터링비는 난민의 수익과 기업의 지속을 위해 쓰인다. 특히 매출의 절반을 난민 고용 장려 활동에 재투자한다. 이를테면 종사자들의 학비 일부 혹은 전부를 지원하는데 채터박스는 이를 비용이 아닌 투자의 일환으로 본다. 직원 훈련과 개발, 기업 가치 홍보,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을 모두 실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발전된 기술로 온라인 예약이나 화상 수업 등을 운영하여 전 세계적으로 수혜 범위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 한다.
무르샬은 난민이 우리의 도움을 갈구하는 현실로 인해 그들도 도울 수 있는 존재란 사실이 잊혀지고, 이것이 난민의 능력 저평가로 이어진다고 설명한다. 즉, 그들이 도움을 주는 입장에 서면 그들의 능력이 진정으로 빛을 발할 수 있으리란 거다. 이러한 생각의 뒤틀림으로 탄생한 채터박스 덕에 튜터들은 현지에서 일하며 낯설고 새로운 타지 생활에 적응한다. 나아가 개인의 역량과 목표를 존중해주는 일터에서 자신감과 자존감을 키운다.
난민의 실질적 자립과 성장이 가능한 사회 구축을 위해 앞장서는 채터박스. 이들이 추구하는 같이의 가치를 본받아 난민을 마냥 도와줘야 하는 대상자가 아닌 함께 갈 동역자로 보는 시선이 필요한 때이다. 난민을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동행함이 당연시되는 미래를 기대해본다.
위 글은 과거 에디터 활동 당시 작성한 글을 옮겨놓은 것으로 내용이 현재 상황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