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따뜻했던 4월의 어느 날, 장애인의 달을 맞아 서울숲 인근의 '아름다운사람들 복지회'를 찾았다. 청각 및 지체장애인과 함께 디자인, 인쇄, 출판 일을 하는 이들은 장애인이 '디자인 장인'을 꿈꿀 수 있는 회사가 되는 것이 목표다. 요즈음 봄 날씨만큼이나 따뜻한 소망을 가진 아름다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꿈 이야기를 만나보자.
Q. '아름다운사람들 복지회'를 소개해주세요.
'아름다운사람들 복지회'는 장애인과 함께 하는 디자인, 인쇄, 출판 회사이자 청각장애인들이 디자인 장인으로 성장하기를 바라는 사회적 기업입니다. 2013년에 시작해 2014년 11월, 정식으로 고용노동부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어요. 현재는 책자, 브로슈어, 리플렛, 포스터, 전단지, 명함뿐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맞게 스마트 콘텐츠까지 생산품을 확장 중이랍니다.
Q. 처음 이 사업을 시작하신 계기는 무엇인가요?
서른두 살의 다소 늦은 나이, 고시에 실패하고 영어를 배우러 무작정 필리핀에 갔어요. 그때 우연히 바기오 지역의 한 길가에서 한국 수녀님을 만났죠. 그 인연으로 필리핀 수녀원에 6개월 동안 머물 수 있었어요. 어렵게 어렵게 말을 배워 한·중·일을 오가며 여러 사업을 시도했는데, 결국 정착한 것이 관공서 인쇄 사업이었어요. 4~5년간 외주를 통해 디자인, 제작 등을 하다 보니 나만의 디자인 회사를 차려보면 어떨까 하는 욕심이 생겨났죠.
그러던 중 필리핀에서 도움을 받았던 수녀님이 근무하시던 ‘충주성심농아재활원’에 갔다가 청각장애인의 어려운 취업 현실을 알게 됐어요. 장애인을 위한 건강한 직장이 많이 생겨났으면 좋겠다는 수녀님의 간절한 바람이 제 마음을 움직였는지, 문득 디자인 회사 설립의 꿈이 다시금 떠오르더라고요. 청각장애가 있더라도 디자인이라는 시각적 능력을 개발한다면 지금보다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렇게 시작한 것이 ‘아름다운사람들 복지회’입니다.
Q. ‘아름다운사람들 복지회’의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은 어떤가요?
저희 고객의 대부분이 공공기관 고객인데요. 대체로 저희 제품에 대해 ‘만족스럽다’, ‘신뢰할만하다’ 등의 긍정적 피드백을 주세요. 실제로 디자인 능력을 평가하는 인쇄업체경쟁에서 입찰 된 전적도 많이 있죠. 이외에도 주문고객을 위한 ‘전자책 도서관 서비스(Ebook Library of Korea)’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에 고객들의 평가가 좋은 것 같아요. 그래도 저희는 안주하지 않고 계속해서 차별성을 키우려고 해요. 최근에는 IT 동향에 맞게 ‘스마트 브로셔’ 개발 및 배포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답니다.
Q. ‘아름다운사람들 복지회’만의 디자인 교육과정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립니다.
피카소(Pablo Ruiz Picasso)가 한 말 중에 “좋은 화가는 베끼고 위대한 화가는 훔친다(Good artists copy; great artists steal)”라는 말이 있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이 문장이 우리 회사에 딱 들어맞는다고 봐요. 장애인 디자이너 양성을 위해 저희는 총 세 단계의 절차를 거치는데요. 첫째, 좋은 디자인을 선정해 무조건 베껴봅니다. 흉내 내길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완성까지 걸리는 시간이 확연히 줄어 있어요. 이렇게 끊임없이 연습하여 기술적인 부분을 익혀요. 그다음은 훔치는 거죠. 여기서 훔친다는 건 결국 무언가를 보고 거기에 내 생각, 느낌을 반영하는 일을 의미해요. 즉 원작에 디자이너의 영감을 발휘하여 응용하게끔 하는 거예요. 약 1~2년 정도의 시간에 걸쳐 이 두 단계를 충분히 밟고 나면, 세 번째 단계인 실무에 뛰어들 준비가 되었다고 봅니다.
Q. 장애인 디자이너 양성에 있어 대표님의 교육관이 궁금합니다.
저는 직원분들에게 회사가 아니라 자신을 위해 배우라고 항상 얘기해요. 인간은 자신에게 초점을 맞출 때 더욱 최선을 다하거든요. 그래서 자발성을 강조하면서 배운 내용을 본인 의지로 여러 방면에서 활용하도록 돕는 거예요.
실제로 저희 직원들과 계약 시에도 3개월간의 수습 기간 후 실력이 향상된 만큼 급여 조정이 가능하다는 조건을 내걸었었죠. 이러한 제도 덕분인지 모두가 정말 눈에 띄게 성장했어요. 직원분들이 이처럼 능력을 갖춰 자신만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한다면, 훗날 이직할 일이 생기더라도 자신의 가치를 증명할 수 있으리라 믿어요.
보통은 장애인 고용 및 교육이 곧 비용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는 인재를 양성한다는 점에서 비용이 아닌 ‘투자’라고 봐요. 같은 맥락에서 장애인이 일하기 좋은 근무환경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2014년도에는 한국장애인고용공단의 ‘올해의 편안한 일터’ 우수 사업장으로 선정되기도 했답니다.
몸이 불편하기 때문에 느릴 수는 있죠. 그렇다 해도 기회를 주고 조금만 기다리다 보면 실무에서 요구되는 성과 수준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봅니다.
Q. 직원분들의 동기부여는 어떻게 하고 계신가요? 혹시 업무 외에도 자기계발을 위한 지원이 이뤄지고 있나요?
저희 전체 직원의 70%가 장애인이고, 장애인 직원의 80%가 청각장애인, 나머지 20%가 타 지체 장애를 가지고 계신 분들이에요. 디자인, 한글 편집, 디지털 인쇄기 조작, 인쇄물 제작 등의 업무를 맡는 것이 보통이죠. 그중에는 작업 수행에 무리가 될 만큼 치명적인 시각장애가 있는 직원도 있어요. 그분 같은 경우 세세한 디자인을 하긴 어렵지만, 감각이 워낙 뛰어나서 훗날 디자인 관리자로 성장시키고픈 마음이 있었죠. 그래서 전체를 볼 수 있는 시각을 기를 수 있게 함께 전시회를 다니면서 괜찮은 디자인 샘플을 수집하는 연습을 했어요. 이런 노력의 결과로 현재는 디자인 방향을 총괄하는 디렉터 역할을 수행하고 있답니다.
이렇게 저희는 업무 외에 업무와 시너지를 일으킬 만한 경험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끊임없이 고민해요. 저는 누구나 특수한 능력을 하나씩은 갖고 있다고 믿거든요. 그래서 직무 조정을 해서라도 각자만의 가능성을 극대화하려 노력하는 거예요. 어쩌면 개개인의 고유한 능력을 찾아, 그것을 도구 삼아 성장하도록 돕는 것이 우리 회사의 중요한 미션 중 하나라 볼 수도 있겠네요.
Q. 직원들과 함께 일하며 가장 기억에 남았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나요?
저희 직원 중 한 분이 ‘충주성심농아재활원’에서 디자인 교육을 지원했던 일이 기억에 남아요. 처음에는 직업 재활교육을 위한 컴퓨터 기증에서 시작했는데, 충주에서 출퇴근하던 해당 재활원 출신 직원분을 통해 그곳의 장애인분들을 대상으로 실무 교육을 진행할 수 있었죠. 근데 그게 발판이 되어 실제 교육생 중 한 분이 일산의 장애인 직업훈련원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 디자인 분야에 입사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아름다운사람들 복지회’와의 인연으로 다른 누군가가 꿈을 키워 더 넓은 세상에 나가게 됐다는 사실이 굉장히 영광스럽더라고요. 교육이 지속된 건 3년 남짓이지만, 앞으로 인근 지역에 지사를 두게 된다면 재개하고 싶은 마음이 있네요.
Q. 대표님께서 SK행복나눔재단과 SK사회적기업가센터가 지원하는 KAIST 사회적기업가 MBA 과정을 이수하셨다고 들었어요. 배운 점을 사업에 어떻게 적용하고 계신지 알고 싶어요.
KAIST 사회적기업가 MBA 과정은 이 회사의 의미, 앞으로의 발전 방향, 지향성 등을 고민하게 해주었어요. 기업인으로서 알아야 할 경영학적 지식을 많이 얻었고, 또 아직 배울 게 많이 남았다는 것을 깨닫는 계기가 되었죠. 돌아보니, 제 무지(無知)의 끝을 보고(웃음) 가능성을 짐작해보는 시간이었던 것도 같네요.
저희 졸업 간담회 때 최태원 SK 회장님께서 하신 말씀이 참 인상 깊었어요. “사회적 기업이라는 이름에서 ‘사회적’이라는 말이 필요 없는 시대가 오는 것이 목표다.” 모든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당연시하고 추구한다면 기업과 사회적 기업이 굳이 구별될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신 거죠. 저는 그 말에 굉장히 깊이 공감해요. 앞으로 세상은 정말 그렇게 바뀌어 갈 거예요. 반드시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믿고요.
Q. ‘아름다운사람들 복지회’의 앞으로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아까도 살짝 언급했지만, 우선 전국 지사를 세우고 싶어요. 지방에서는 장애인을 위한 일자리 찾기가 더욱 어려워요. 그럼에도 장애 때문에 그 지역을 쉽게 떠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죠. 지사를 설립한다면 회사의 경제적 이익뿐 아니라 더 많은 장애인에게 기회를 줄 수 있지 않을까요?
나아가, 언젠가는 교육을 더욱 체계적으로 진행할 수 있도록 장애인 디자인 전문 교육기관도 설립하고 싶어요. KAIST MBA 입학 면접 때 한 교수님께서 여쭤보셨거든요. 돈 벌어서 뭐할 거냐고. 그때 답했던 게 장애인을 포함한 취약계층을 위한 디자인 대학을 설립하고 싶다는 거였어요.
저는 디자인적 마인드를 가지면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달라진다고 믿어요. 그래서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어릴 적부터 디자인을 통해 전문성을 기를 기회를 주고 싶어요. 꼭 디자인 전공이 아닐지라도 훗날 좀 더 나은 영역으로 진출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디자인과 같은 부가적 능력이 있으면 아무래도 차별성과 인정을 얻기가 더 쉽잖아요. 어떻게 보면 본인의 인생에서 경제적, 계층적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많은 무기를 갖도록 돕는 거죠.
Q. 사회혁신을 꿈꾸는 20대 청년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나요?
남이 가지 않는 길을 가세요. 많은 사람이 걷는 그 길 위에서 아이디어를 얻되, 자신만의 느낌을 새롭게 담아서 행동해보세요.
그리고 꿈을 꾸세요. 이십 대의 저는 그때 그 길만이 정답이라 세뇌하면서 전진했거든요. 그저 내달리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전혀 낯선 길에 떨어져 있더라고요. 후회 없도록 본인이 정말 좋아하는 거, 소명이란 걸 찾아서 꼭 한 번 도전해보세요.
저도 비록 시작은 좀 늦어졌다지만(웃음), 지금처럼 남이 가지 않는 길 계속 두드리며 하고 싶은 거 하면서 살려고요.
신창식 대표는 ‘아름다운사람들 복지회’가 장애인을 위한 일이 아닌 장애인과 함께 하는 일을 하고 있음을 강조했다. 그리고 앞으로 그려낼 꿈도 그들과 함께할 수 있음에 가슴이 벅차오른다고 덧붙였다. 이들은 착한 기업이 되겠다는 초심을 잃지 않은 지금의 자리에 감사하며 계속해서 소외된 이웃과 동행해 나갈 예정이라 한다. 더불어 사는 세상 속에서 ‘같이의 가치’를 고민하고 몸소 실천하는 ‘아름다운사람들 복지회’. 이들과 같은 상생을 위한 크고 작은 움직임이 결국 아름다운 세상을 일궈내는 것이 아닐까. 더 많은 사람이, 기업이 이러한 가치를 같이할 수 있는 날을 기대해본다.
위 글은 과거 에디터 활동 당시 작성한 글을 옮겨놓은 것으로 내용이 현재 상황과 다를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