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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텔 Jan 18. 2021

'존버'가 꼭 답은 아니니까

때론 내려놓는 데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텍사스에 사는 내 친동생과도 같은 사촌 동생과 종종 통화를 한다. 밀린 근황도 업데이트하고, 당시 크고 작은 고민이나 예전 추억들을 나눈다.

때론 스크린에 얼굴을 마주하고, 때론 목소리만을 가지고 교감한다. 이러나저러나 내게 자주 있지는 않아도 참으로 소중한 시간이다.




하루는 그녀가 통화 중에 말을 꺼내더라. "Unni, I don't wanna succeed until 30. My plan is to fail as much as I can." 서른 살까지는 성공하지 않겠다고. 자기 계획은 최대한 많이 실패하는 거라고.

서른 살 이전에 성공하기가 어디 쉽냐마는, 성공하지 않으리라 단언하기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다.


한때 외부 압박이 더해져 의사의 길을 걸으며 전공을 다섯 번 바꿀 만큼 방황도 했던 그녀는, 그 경험을 딛고 몹시 단단해진 듯했다.

예전엔 꿈도 꾸지 못한, 그럼에도 남몰래 간절히 꿈꿔온 디자이너가 되리라 결심한 이래로 나조차 보기 드물었던 함박웃음을 짓는다. 디자인 공부에 매진하며 세상 어느 디자인보다 보기 좋은 그 웃음이 날이 갈수록 짙게 번진다.




그녀가 전공을 바꾸길 거듭할 때 그 결정은 쉬웠을까. 온갖 반대를 무릅쓰고 본인이 원하는 길을 걷기로 했을 때 마음가짐은 가벼웠을까. 아니. 활짝 핀 지금 얼굴이 무색하게, 차라리 죽고 싶은 기분이었다고 그녀는 회상했다.

그런데도 그녀가 관두기로 한 건 '만약 의사가 된다면 행복할까'라는 질문마저 답이 '아니'었기 때문에.


내가 한 살 언니지만 배울 것도 참 많은 이 동생은 이날의 대화로 내게 또 다른 배움을 주었다.

멈출 용기, 내려놓을 용기가 견디는 것 못지않게 멋지고 강하다는, 어쩌면 더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여지껏 견디는 사람이 이기는 줄로 알았다. 견뎌내어 마침내 바라보던 걸 손에 거머쥐는 자만이 곧 승자라고 믿었다. 나뿐이 아닐 거라 확신한다. 옛말로는 '고진감래', 요즘 말론 '존버'라고 하던가. 이름만 다를 뿐 어쩌면 우리는 예나 지금이나 그게 멋지고, 강하다고 여겨온 거다.




내가 걷는 이 길 위에서 견딜지, 관둘지는 결국 본인의 선택이지만, 어느 것이든 용기가 따르는 결정임은 변하지 않는다.

고로, 혹 관두기로 할지라도 그 이후에 찾아오는 새로운 기회를 잊지 말아야 한다. 실패가 아닌 그저 또 다른 길을 택하는 것임을, 그 길이 지름길이든 우회로이든 저마다 얻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겠다.


결국 여태 고수해 온 '견디다'란 말 뒤에 숨은 목적어를 아는지가 관건이다.

나는 무엇을 위해 현재를 견디는지, 어떤 내일을 그리며 오늘을 사는지, 내가 바라보는 곳이 정말 내가 바라는 것인지를 묻고 답해보는 거다.




목적이 명확할수록 용기 내는 데도 망설임이 없는 법이다. 내 동생이 보여줘서 안다.

그녀가 목적을 찾은 데에 박수 쳐주고 싶고, 끝내 용기를 낸 데에 안아주고 싶다. 한껏 성장한 모습에, 나도 덩달아 그녀의 앞으로를 그리며 가슴이 뛴다.


잘은 모르지만 한 가지 분명해진 깨달음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하면 그것이 견디는 길이든 관두는 길이든 좀 험할지라도 감히 걸어볼 만하다는 거,

피, 땀, 눈물의 여정이라도 의미 있는 걸음들 속에 내가 더 행복할 수 있겠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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