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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Mar 09. 2024

나는 언니의 결혼식에 갈 수 없었다.

언니의 결혼식

- 나는 왜 언니의 결혼식에 갈 수 없는 걸까?

컴컴한 이른 새벽, 방 한쪽에서 소곤거리는 말소리가 났다. 잠결에 자세히 들어보니 전날에 시골에서 올라오신 외삼촌과 엄마의 대화였다. “누나 그래도 막내 데리고 가야지. 내가 안고 갈게” 외삼촌이 말했다. 그러자 엄마는 “얘가 무슨 말을 하는 거야. 딸만 줄줄이 일곱을 낳은 것도 창피한데 병신 자식까지 낳았다고 떠벌리라는 거야? 그리고 사돈댁에도 말 안 했어. 집안에 장애인이 있다고 하면 우습게 보고 결혼 반대할까 봐” 외삼촌은 더는 말씀이 없었다. 엄마의 말에 수긍한 모양이었다. 순간 내 마음에서 뜨거운 무언가가 떨어져 나가는 느낌이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엄마와 외삼촌이 말하는 건 아마도 큰언니의 결혼식일 테지.’ 큰언니 결혼식에 나는 가지 못 한단다. ‘왜 갈 수가 없는 거지? 나도 이 집 가족인데 왜 가면 안 되는 거지?’ 나는 갖가지 생각의 구름을 하나둘씩 띄워 보았다. 그러나 아무리 대화 내용을 곱씹어 보아도 9살인 내가 이해할 수는 없었다.


나는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려 올렸다. 그리고 엄마와 외삼촌 대화가 멈추길 바랐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날이 밝아오자 방에서 함께 자고 있던 큰언니가 일어났다. 부스럭부스럭거리며 결혼식에 갈 준비를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 자는 척했다. 엄마와 외삼촌의 대화를 들은 후로 마음에 깨진 유리가 박힌 것처럼 따끔따끔거렸다. 어느새 큰언니가 외출 준비를 마친 모양이다. 언닌 방 밖으로 나가던 중에 갑자기 발길을 돌렸다. 내 옆으로 왔다. 언니가 손가방에서 뭘 꺼내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내 손에 뭔가 쥐여주며 “잘 놀고 있어. 언니 다녀올게.” 언닌 속삭이듯 말하고 나가버렸다. 언니가 나가고 나서 손을 펴보았다. 5천 원짜리 지폐였다. 돈이 구겨지도록 있는 힘을 다해 꽉 쥐었다. '이 돈으로 뭘 하라는 거지. 어차피 나는 혼자 나갈 수도 없는데…. 누가 돈 달랬나.' 가슴속에서 분노가 끊어 오르는 것을 느꼈다.


큰 언니가 나간 뒤 얼마 후에 온 가족이 분주하게 외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여섯째 언닌 엄마가 사준 원피스를 입고 긴 머리를 늘어뜨리며 넷째 언니한테 고대기를 달라고 했다. 나는 내복차림이었다. 엄마는 진달래꽃처럼 화사한 한복을 차려입고 화장에 열중하셨다. 그렇게 가족 모두가 온갖 멋을 내고 바닷물이 빠져나가듯 한꺼번에 모두 집을 빠져나갔다. 나는 엄마의 동네 친구 아줌마한테 맡겨놓은 체 말이다. 엄마는 “엄마가 올 때 맛있는 거 많이 싸 올게. 아줌마 말씀 잘 듣고 있어.” 말만 남기고 가버렸다. 


엄마 친구분을 피해서 집안 곳곳을 기어 다녔다. 가슴이 쿵쿵 뛰어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마음 같아선 이 집에서 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계만만 10개가 넘는 이 집에서 혼자 나갈 수가 없었다. 그저 집 안에서만 맴돌 뿐이었다. 그렇게 집 안을 기어 다니가 안방으로 들어갔다. 엄마가 쓰는 좌식 화장대 앞에 앉았다. 그리고 거울에 내 얼굴을 비춰보았다. 눈물이 뚝 떨어졌다. 한 방울씩 떨어지던 눈물이 감당하지 못할 정도로 쏟아지기 시작하였다. 아무리 멈춰 보려고 애써도 쏟아지는 눈물은 멈춰지지 않았다. 텅 빈 집에 혼자 갇혀 버린 이 상황이 가혹하게 서러웠다. 이 세상 어디에도 나는 속해 있지 않을 듯했다. 나는 가족에게서 도려내진 기분이었다. 나라는 존재가 이 집에서 지워져 가는 것 같았다. 겨울날 창문에 입김을 불어 잠시 뿌연 존재를 드러낸 뒤 사라지듯 나도 그렇게 사라질 것만 같았다. 


- 가족만의 문제가 아니다

나는 특수학교에 다니기 전까지만 해도 내가 장애인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언니들에 비해서 몸이 약해서 약을 달고 사는 아픈 아이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티브이에 장애인이 나오면 얼른 채널을 돌리거나 꺼버렸다. 티브이 화면 속에 나와 같은 몸짓을 하는 이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불편했다. 아마도 내가 저들과 똑같은 범주에 속한다는 사실이 인정하기 싫었던 것 같다. 그저 난 손과 다리가 말을 듣지 않을 뿐, 언니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언니들이 욕망하는 모든 것을 똑같이 욕망했다. 언니들이 친구들과 노는 것을 좋아한다면 나도 친구들과 노는 게 좋았고, 언니들이 예쁜 옷과 구두를 갖고 싶다고 말한다면 나도 갖고 싶어 했다. 왜냐하면, 나는 언니들과 똑같으니까. 그런 큰언니 결혼식에 갈 수 없다니 아직 어리기만 했던 그 당시의 나는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그 후로도 나는 여섯 명의 언니 결혼식 모두 갈 수 없었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나는 언니들과 다르고 그 다름은 가족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할 조건이었다. 그 분리 조건을 가족이 만든 게 아님을 사회 활동하며 알게 되었다. 비장애 중심의 사회에서 그렇게 해도 암암리 주입된 우리 모두의 인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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