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째 퇴사 후, 무너짐과 버팀의 기록

슬기로운 직장생활3_ 나의 이직의 역사

by 해린


두 번째 퇴사 이후, 내 삶은 곤두박질치는 줄만 알았다. 동료들에게 깊은 상처를 입고 아무런 준비 없이 회사를 나온 나는 몇 달 동안 방 안에만 갇혀 살았다. 햇빛조차 보기 싫었고, 세상과 단절된 채 ‘이대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휩싸였다. 무엇을 다시 시작할 엄두도 나지 않았다. 고민조차 사치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시간만 흘려보냈다.

하지만 지금 돌아보면 그 시간은 완전히 헛된 것이 아니었다. 영화와 책이 내 곁을 지켰고, 그 속에서 전해지는 메시지들이 서서히 마음을 움직였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고 자책했지만, 사실 그 시간은 지친 나를 스스로 돌보는 치유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했다. 혼자 살아가야 하는 나는 생활비가 바닥을 드러내며 더 이상 버틸 수 없었다. 결국 재취업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이번에는 전 직장과는 어떤 연고도 없는 새로운 분야에서 다시 시작하고 싶었다. 장애와 관련 없는 디자인 기업에도 이력서를 냈고, 아예 분야를 바꿔 문화예술 기관에도 지원했다. 수십 군데에 이력서를 넣었다.

결과는 참담했다. 연락조차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가끔 도착하는 답장은 “미안하다”는 정중한 거절뿐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뼈아픈 깨달음을 얻었다. 겉으로는 늘 “자존감이 낮다”고 말하면서도 속으로는 “나는 잘 해낼 수 있다”는 근거 없는 확신, 즉 오만함에 사로잡혀 있었다는 사실이다. 연이은 무응답은 마치 “넌 그저 그런 중증장애인일 뿐이야”라는 문신을 온몸에 새기는 것 같았다.


실업 상태가 길어지자 엄마의 잔소리는 점점 심해졌다. 혼자 자립해 살며 직장까지 다니던 내가 백수가 되자, 남의 시선을 의식하는 엄마는 견디지 못했다. 급기야 전 직장 상사에게 용서를 빌고 다시 돌아가라는 말까지 하셨다. 그 순간, 나를 억누르던 무게가 한꺼번에 터지며 끔찍한 선택을 할 뻔했다.

사실 첫 직장 사람들은 내 퇴사 소식을 듣고 줄곧 “돌아오라”고 했다. 상황상 그곳으로 돌아가는 것이 최선일 수도 있었다. 하지만 알 수 없는 오기가 발목을 잡았다. ‘결국 나를 받아주는 곳은 여기뿐’이라는 패배감 속으로 들어가는 것 같아 차마 돌아갈 수 없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것은 단순한 자존심이었다. 내게 손을 내밀어 준 사람들에게마저 상처를 주는 고집이었음을 인정한다.

그렇게 무작정 버티던 어느 날, 지인을 통해 신생 장애인 단체를 소개받았다. 국가 보조금을 받지 않아 일이 많지 않을 거라는 말이 덧붙었다. 하지만 직함은 ‘사무국장’이었다. 실무를 전면적으로 맡아본 적 없는 내가 사무국장이라니. 친구들도 만류했지만, 당장 관리비 낼 돈조차 없는 나는 결국 그 제안을 붙잡았다.


새로운 직장에는 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내가 원하던 조건이었다. 나는 스스로를 시험해 보고 싶었다. “과연 나는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내 실력은 어디까지일까?”

처음 몇 달은 인터넷과 지인들의 도움을 받으며 무작정 배우고 익혔다. 부족한 실무 능력을 들키지 않으려 밤낮으로 애썼다. 그러던 중 대표가 임신 소식을 전했다. 축하 인사보다 먼저 떠오른 건 원망이었다. 이제 막 적응하기 시작했는데 단체 운영을 나 혼자 책임져야 한다니. 그 순간 깨달았다. 내게 주어진 복은 결국 ‘일복’뿐이라는 사실을.

이후 나는 프로젝트 사업을 맡아 어떻게든 해냈다. 모르는 건 인터넷을 뒤지고, 몰라도 아는 척하면서 버텼다. 그렇게 첫 해를 보냈다. 그런데 새해 벽두, 단체의 존폐가 달린 공모사업을 혼자 준비해야 했다. 인건비가 걸린 중대한 사업계획서였다. 악몽에 시달릴 만큼 중압감이 컸지만, 포기할 수는 없었다. 결국 한 달 동안 공부하며 완성했다.

하지만 경쟁률이 높다는 소식에 낙담했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었다. 두 번째 공모사업도 준비해 제출했다. 그리고 기적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두 건 모두 선정된 것이다. 그날 하루는 뛸 듯이 기뻤지만, 곧 직감했다. “이 많은 일을 결국 내가 다 떠안게 되겠구나.”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두 개의 굵직한 사업은 전부 내 어깨 위에 올려졌다. 일 년 내내 숨 가쁘게 움직이며 중증장애인이 아닌 비장애인처럼 버텨야 했다. 보고서, 교육, 행사, 예산까지. 단체는 살아남았지만, 나는 지쳐갔다.

높은 급여에도 만족은 없었다. 단체의 색깔은 나와 맞지 않았고, 무엇보다 같은 고민을 나눌 동료가 없었다. 퇴사를 결심하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이번에는 무작정 뛰쳐나오기보다 차근차근 준비했다. 동시에 SNS에 내 일상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편견을 깨고 싶었다. “나도 일을 잘할 수 있다.” 이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때로는 관종 같아 보일지라도, 그 기록들이 결국 새로운 이직 제안으로 이어졌다. 그 순간 깨달았다. 나의 일과 기록, 그리고 버티며 쌓아온 시간들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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