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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린 May 12. 2024

이웃 주민으로 살아가기 위한 나만의 방식

나는 전동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이곳저곳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한다. 어릴 적에는 계단만 있는 단독 주택에 살아서 밖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철창 없는 감옥에 사는 것처럼 지냈다. 가끔 언니들이 기분이 좋거나 뭔가 특별한 날에만 선심 쓰듯 업고 나가서  콧바람 쐬어 주고 오는 게 나의 외출 전부였다. 태어날 때부터 가족과 서울 한 동네에서 계속 살아왔고 이사 경험이 별로 없었다. 그래서 처음 독립을 하던 날에 긴장감이 상당했던 것이 기억에 남는다.

독립하고 낯선 동네에 아는 사람도 없이 정착하기가 쉽지 않았다. 직장에서 가까운 곳으로 이사를 온 것이지만, 동료들은 저마다 다른 동네에서 살아서 이 낯선 환경에 적응할 몫은 오르지 나 자신뿐이었다.

더구나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중증장애인이 사회에 나오는 것도 흔하지 않은 일인 데다가 동

네에서 나와 같은 장애인을 만날 일은 거의 없었기에 혼자 음식점에 가서 밥을 먹어도, 마트에 가서 물건을 살 때도, 출, 퇴근길에 마주치는 사람들에게서도 불편한 시선과 반응을 느끼며 이방인 같은 느낌 또한 받아야 했다. 이사하고 얼마 안 돼서 계단과 턱이 없는 음식점에 들어가려고 했는데 가게 주인이 장애인이 있으면 다른

손님이 싫어할 것이라며 문 앞에서 문전박대당한 적도 있었다.

사회 경험이 없었던 시절에 나는 한 번도 비장애인 가족과 내가 다르다는 생각을 가져 본 적이 없었다. 가족들이 부당한 대우를 할 때도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갔다. 언니들이 가끔 친구를 집에 초대할 때면 밖에 나오질 말라고 방 문을 잠겄는데 그땐 그것이 내가 장애인이라서 남들 보기 부끄러워 그렇게 숨겼어야 했는지 몰랐다. 단지 나는 몸이 좀 아파서 못 걷는 뿐이고,  휠체어라는 도구를 사용할 뿐이라고 여겼었다. 

그런데 독립 이후에 이 낯선 동네에서 철저하게 혼자되어 보고, 사회에 나가면 나갈수록 나는 외계인처럼  다른 존재로 쳐다보는 시선을 느껴야 했다. 그리고 스스로 질문했다.  ‘내가 그렇게 특이하게 생겼냐?’ ‘내가 뭘 잘 못 했냐?’ 등 자책하는 시간을 걸쳤다.

하지만 이젠 그 시선을 내 몸을 통과해 밖으로 배출하는 힘이 어느 틈인가 생겼다. 사회는 그 이전보다 조금은 달라졌지만, 어느 공간에서 누구에게 그런 불편한 시선을 받을지 모른다는 것은 여전하다. 그래도 어쨌든 나를 배척하고 환영하지 않은 이 사회 안에서 살아남아야 했다. 나는 결심했었다. 우선 나부터 달라지고 변화되기로 마음먹었다. 이 동네에서 장애인 이웃이 불편하거나 대하기 힘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로 했다. 먼저 우리 집에서 가까운 음식점을 정해 놓고 단골손님이 되어서 직원 분과 간단한 인사도 나누며 나란 존재가 특별하거나 낯설지 않음을 인식시켰다. 처음에는 언어장애를 가진 나의 말을 무시하는 태도를 보였다. 자주 가서 음식을 시키고 말을 주고받으니까 차즘 나의 말에 귀 기울이는 모습으로 변하였다. 요즘에는 내가 식당에 들어서면 알아서 의자를 빼 주시고 안부를 묻기도 한다. 진정으로 나를 손님으로 혹은 이웃으로 받아들여진 것만 같아서 신기했다.

지금은 이 동네에서 사는 게 나는 참 편하다. 혼자 마트에 가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하라는 직원 분도 있다. 독립하고 나서 엄청 낯선 동네였고 날 이방인처럼 대했던 동네였는데 이제는 떠날 수 없는 나만의 고향이 되어 버렸다. 어떤 가게 주인은 내가 가게 문 앞에 턱이 있어서 불편하다고 말하니까 경사로까지 설치해 주었다. 최근 들어 사람들은 세상이 각박해졌다고 말한다. 그런데 한 사람이라도 마음이 열고 편견 없이 누군가

를 대하고 다가선다면 세상이 그렇게 삭막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어차피 세상을 만들고 이루어가는 것은 사람이기에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에 따라 얼마든지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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