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전 상수와 합정 사이에 있는 동네로 이사를 했다. 주소로는 당인동이라 불리는. 짐을 다 옮기고 나서도 한참을 주변 둘러 볼 짬 없이 분주했다. 어느 날, 겨우 숨 돌리고 산책을 하던 중 키다리 굴뚝을 발견했다. 수증기가 환상적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어, 저게 뭐지???' 아주 아주 뒤늦게 이사온 동네의 상징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당인리 발전소>라고 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화력발전소...그러고보니 학창시절 시험 답안으로 외웠던 기억이 있다. 그 당시에는 당인리라는 지역이 먼 지방 어디쯤 있으려니 생각했다. 그런데, 서울이라니...그것도 한강을 끼고 도심의 하이라이트를 차지하고 있다니...반갑기도 하고 몰라준 것이 미안하기도 했다.
당인리 발전소 키다리 굴뚝
"사라져 갈 아스라한 기억들"
그때부터 당인리 발전소의 굴뚝은 등대보다 더 등대를 닮은 모습으로 동네주민의 마음 한 구석을 다부지게 차지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실은 앞으로 발전소 역할을 하던 굴뚝 대신 지하로 매설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지금 한창, 공사중이다. 어떻게 변할지 조마조마하다. 그대신 지역주민을 위한 문화공간이 새롭게 지어지고 있긴 하지만 안타까움은 여전하다. 사라져 갈 아스라한 기억들을 차마 놓고 싶지 않지만, 고집부릴 일은 아닐테니까,,, 받아 들이려고 노력중이다.
공사중인 당인리
"등대보다 더 등대같은 불빛"
당인리 발전소를 지키는 등대 보다 더 등대같은 키다리 굴뚝이 아주 사라져 버리기 전에, 자주 자주 보러 가야겠다. 한강과 어울어지는 그 모습을 잊지 말고 가슴에 담아 두어야 겠다. 어떤 모습으로 변신하더라도 반드시 기억해 줄께. 낯선 동네로 이사온 그날부터 기꺼이 벗이 되어 주던, 속 깊은 친구. 등대의 불빛처럼 거친 방향을 비추어 주던 넉넉함. 봄이면 벚꽃이 가장 먼저 화사한 맵시를 드러낼 수 있도록 조명이 되어주던 다정한 사랑, 잊지 않을께.
한강과 어울어지는 모습
"서울의 핏줄인 한강, 그리고 생생한 활력을 공급하는 당인리 발전소"
서울의 핏줄이 한강이라면, 그 한강 곁에 우뚝 선 당인리 발전소는 도심을 움직이게 하는 생생한 활력의 공급원이다. 푸른 정맥의 한강이 강인한 물줄기로 굽이 굽이 흘러 가면서 대한민국의 부흥을 일으킨 일등공신이라면, 붉은 동맥의 당인리 발전소는 뜨거운 에너지를 재량껏 뽐낸 열정이다. 그러기에 한강과 당인리 발전소는 천상의 궁합이다. 그들의 합동작전이 일으킨 수많은 기적들이 신비롭기만 하다. 조만간 사라져 갈 당인리의 상징, 아니 새롭게 태어날 당인리의 미래가 우뚝 선 등대로 환한 빛을 발하게 될것을 예언하듯이. 그래서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등대만이 등대가 아니다] 시리즈의 주인공으로 당인리 키높이 굴뚝을 발탁하면서 진심으로 굿럭을 기원하는 바이다. 마이 디어 프렌즈...당인리 불빛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