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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독서 : 니체읽기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5

by 에스더esther

"종교적 생활"

'종교에서의 진리'라는 글에서 니체는 계몽주의 시대를 종교적 의의가 공정한 취급을 받지 못한 시대라고 논한다. 계몽주의 시대를 넘어선 계몽의 반동속에서도 역시 마찬가지로 공정성을 넘어 섰다고도 말하고 있다.


"인간은 종교를 사랑으로, 열애로 취급하고, 종교에

대해서 한결 깊은, 그 뿐만 아니라 훨씬 깊은 세계 이해를 승인해 주었다. 그런 이해로부터 교의라는

의상을 벗겨 내면 그때, 학문은 비신비적인 형식 으로 '진리'를 소유할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p.92중에서)


역시, 종교를 논하는 것은 어렵다. 니체에게 있어

모든 종교는 불안과 욕구로부터 탄생하여 이성의

미로를 지나 현존 속에 남몰래 존재한 것일 뿐이다.

사실 종교와 참된 학문 사이에는 친족 관계도,
친구 관계도, 또한 적대 관계조차도 성립되지 않는다. 그것은 다른 별에 살고 있다. 종교적인
혜성의 꼬리를 자신의 최종적 전망을 넘어서
암흑 속에다 빛을 보내 주고, 모든 철학은 학문
으로 설명되는 모든 것, 그 자체를 의심스러운
존재로 만들어 버린다. 생각건데 이러한 것은
아무리 학문의 탈을 쓰고 있어도 종교인 것 이다. (p. 93중에서)

사실, 니체가 그리스도교에 대한 언급을 할 때는 크리스찬인 나로서는 받아 들이기에 큰 어려움이

있기도 하다. 그저 철학적 관점에서 바라볼 뿐이다.


니체가 '신은 죽었다'라고 한 말은 너무나 유명해서 그 말이 가지고 있는 자세한 해석이 묻히기도 한다.

수많은 비유와 은유로 글을 쓴 니체이기 때문이다.


<즐거운 학문>에서 처음 언급했던 '신은 죽었다'의

표현은 신에 대한 절대적인 가치의 상실을 의미한

것이다. 허무주의의 도래를 가져온 말이기도 하다.


신의 죽음과 그에따른 상실감은 《즐거운 학문》에 최초로 기술된다.

"신은 어디에 있지?" 그는 부르짖었다. 나 너희에게 말하고 싶다!우리가 신을 죽여버렸다, - 너희와 내가! 우리 모두는 신을 죽인 자들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이러한 일을 해내었단 말인가?


어떻게 우리가 바닷물을 다 마셔버릴 수 있었단 말인가? 누가 우리에게 지평선 전체를 닦아버릴

수 있는 스펀지를 주었단 말인가?지구가 해의

궤도 에서 풀려났을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지구는 어디로 움직이고 있나?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나? 모든 항성으로부터 멀어져

가고 있나? 우리는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후진하고 있나? 측면으로 가고 있나? 직진하고 있나? 아니면 모든 방향으로 가고 있는 건가?


아직도 위쪽이 있고 아래쪽이 있나? 우리는 끝없는 허공을 방황하는건가? 허공의 흐름을 느끼지는 못하면서? 더 추워지는 거 아닐까? 계속해서 저녁만 반복되는거 아닌가?


신은 죽었다. 신은 죽어있다!

그리고 우리가 그를 죽여버렸다!


어떻게 우리는 스스로를 위로할 것인가?

살인자 중의 살인자인 우리는.


— 즐거운 학문 (출처:위키백과)


그러나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끝맺음을 한 것은 아니다. 그의 철학중에서 가장 빛나는 대목인

'디오니소스적 긍정의 철학'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자신을 가장 주체적으로 놓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런 사람 만이 '디오니소스적 긍정 철학'을 실천할 수 있다.


니체의 말년에 이르기까지 탐구를 지속해 나간 이 철학적 관점은 '위버멘쉬', 즉 초인의 개념을 탄생 시켰다. 허무주의를 극복하는 존재의 탄생이다.


설날 전야의 밤이 깊어가니, 사색도 함께 깊어진다. 니체는 참 어렵다. 잠시 책을 덮고, 긍정을 꿈 꾸던

'위버멘쉬'로서의 니체를 순수하게 상상해 보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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