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는 사모님과 달리 선생님은 자기네 부부에게는 앞으로도 아이가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그 이유를
묻는 화자에게 그저 '천벌이니까'하고 대답한다.
나중에서야 화자의 궁금증은 풀린다. 선생이 직접
그의 비극적인 사랑 이야기를 들려준 것이다. 말로
한 고백이 아니라 '유서'로 쓴 고백이었다.
"이 편지가 자네에게 도착할 즈음에는 나는 이미
이 세상에는 없는 걸세. 죽어 있겠지,,," (p.180)
아버지의 병환으로 대학졸업 후, 시골에 가 있던
화자에게 도착한 선생님의 편지였다. 아니 그건
편지라기 보다는 유서에 가까운 것이었다. 급히 선생님이 있는 도쿄행 기차에 몸을 싣고, 나머지
편지에 쓰인 글을 읽는다.
편지는, 아니 유서에는 선생님 일생의 거의 전부가 담겨 있었다. 그 중에서도 친구 K와 하숙집 딸과 그의 사이에서 일어났던 사연은 그만 아는 비극이
었다. 친구의 죽음으로 끝나버린 비극이었기에 더 슬픈 이야기. 평생, 친구의 무덤을 찾아야 했던,,,
,,,K는 작은 칼로 경동맥을 끊어 자살했던 것이네. 그 밖에 다른 상처는 전혀 없었지. ,,,사모님과 나는 가능한 한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K의 방을 정리했네. 그의 몸에서 흘러 나온 피는 다행히도 대부분 이불에 흡수 되어 바닥은 그다지 더럽혀지지 않았기에 쉽게 치울 수 있었네,,,난 네가 살아있는 한, 매달 K의 묘 앞에 무릎 꿇고 늘 같은 마음으로 참회하고 싶었네,,,(p.335~337중에서)
그와 K는 하숙집 딸을 사이에 두고 묘한 삼각 관계를 이루고 있었다. 그리나, 정작 K는 그런
사실을 모른 채 그에게 자신의 사랑을 세심히
고백하였고, 나중에서야 그의 본심을 알게 된
사연이었다. 결국, 하숙집 딸에게 그가 청혼한 사실을 알게 된 K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고,
그 이유를 어디에도 적지 않았다. 심지어 그를
자신을 도와준 고마운 친구라고 적은 유서만
남겼다. 그는 사랑을 얻었고, 친구를 잃었다.
여기까지가, 간략하게 적어 본 선생님의 유서다.
무사히 하숙집 딸과 결혼도 하고, 그 후부터 그저
죽었다는 심정으로 살기로 결심했다는 선생님.
"내가 이렇게 결심한 다음부터 오늘날까지 몇 년의
세월이 흘렀네. 그 동안에도 나와 아내는 늘 사이
좋게 지내왔지. 결코 부부사이가 불행하지 않았네. 맞아, 행복했어. 그러나 내가 품고 있는 한 가지,
내게 있어 거스를 수 없었던 한 가지가 내 아내에
게는 늘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처럼 보였을거네.
그 점을 생각하면 나는 아내에게 미안한 마음을
금할 수 없네."(p.349중에서)
죽었다고 생각하면서 살자고 결심한 선생님의
마음은 때때로 외부자극으로 흔들렸고, 그럴때
마다 온 마음을 다해 살아온 그였지만, 결국에는
친구 K처럼 생을 마감하기로 결심하고야 만다.
세상을 떠나기로 마음 먹은지 열흘이 넘어서야
그는 죽음으로 다가갔다. 그 열흘은 지금 화자가
읽고 있는 유서를 쓰는데 바친 시간이었다. 절대
밝힐 수 없었던 긴 사연을 화자에게만 남기고,
죽음 이후에도 이 사연을 꼭 꼭 숨기고, 화자의 가슴 속에만 남겨달라는 부탁을 한 채로,,,
그는 아내를 너무도 사랑했기에, 끝까지 마음 속
비밀을 가슴에 묻고 가기로 한 것이다.
"나는 아내에게 내가 밝히지 않았던 것을 끝까지
알리고 싶지 않단 말일세. 아내가 내 과거에 대해
갖는 기억을 가능한 한 순백으로 간직하도록 하는
것이 내 유일한 희망이니 내가 죽은 후에라도 처가
살아 있는 한 내가 밝힌 모든 것을 자네 가슴 속에
묻어두기 바라네."(p.355마지막 문장 중에서)
문예출판사(오유리 옮김)
혹자는, 이 작품을 화자와 선생님과 K까지 묶인 동성애적 '퀴어소설'이라고도 하지만 그게 무슨 상관이랴. 내게는 그저, 순수하기만한 사랑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