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힐링독서:아이러니스트final

유영만

by 에스더esther

'미셸 푸코'부터 '브뤼노 라투르'까지

'미셸 푸코', 그를 처음 만나던 때가 생각난다.

'성의 역사'라는 책의 제목만으로도 경외심을

느꼈던 이십대였다. 앞 부분만을 수도 없이 반복

하던 푸코의 책이 아직도 책 꽂이에서 나를 바라

보는 중이다. 언젠가는 반드시 '독파' 하리라는

결심을 여전히 버리지 않고 있으니 다행이랄까.


푸코의 철학은 1기<광기의 역사>와 2기<감시와

처벌>의 사유를 거쳐 3기 <성의 역사>에 도착함

으로써 '자기배려를 다루는 주체의 해석학'으로

까지 독창적인 흐름을 이어 간다. 유영만 교수가

말하는 푸코의 '자기배려'라는 개념은 다음의

세 가지 관점으로 나뉜다.

첫째, 자기 자신과 타인 그리고 세계에 대한
태도입니다. 지식권력에 예속되어 감옥에
갇혔던 주체가 자기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을 중심으로 타인과 세계를 바라
보는 관점의 전환을 의미합니다.

둘째, 시선을 외부로부터 내부로 이동시켜
자기 자신에게 돌리기입니다. 밖으로만
향했던 시선을 안으로 돌려서 진정 내가
누구인지, 한 번도 되어본 적이 없는 내가
누구인지를 탐험하는 과정입니다.

셋째, 항시 자신에게 가하는 다수의 행위,
자신을 변형하고 정화하며 변모시키는 행위
입니다. 정체된 상태에서 권력으로 구분되는
가운데 오염된 자기 자신을 새롭게 탄생시키 기 위해서는 우선 본래의 모습으로 정화하고
변형시키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p.248~249중에서)

역시 푸코의 '자기배려'를 부드럽게 설명한다.

유영만 교수의 해석대로 보면, 자기배려는 곧

나 자신에게 저항하는 것이다. 본래의 자기를

정화한 후에 변형시키는 것이 핵심이라는 것.

이 책의 제목이 '아이러니스트'다. 이 말의 주인공

'리처드 로티'라는 철학자에 대하여 살펴볼 시간.

그가 개념화한 또 다른 단어가 '마지막 어휘'이고,

이는 '죽음과도 맞바꿀 수 있는 신념어를 의미한

. '죽는 순간까지도 붙들고 있는 말'이 라고도 바꾸어 표현할 수 있다. 리처드 로티가 말하는

'아이러니스트의 삶'은 바로 이 '마지막 어휘'를

가지고 자기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


"마지막 어휘는 가장 나다운 색깔을 담고 있는

내 삶의 등대이자 나침반과 같은 역할을 합니다.

길을 잃었을 때, 어디로 가야 할지 방향을 알려

주고 왜 그 곳으로 가야 하는지를 고심하게 만들

어주는 행동규범이자 가치판단의 기준입니다."

(p.279중에서)


등대와 같은 역할을 하는 '마지막 어휘'가 유영만

교수에게는 '도전' 이라고 한다. 미지의 세계로

향하는 호기심의 발로이자 능력을 확장하고 심화

시키는 근간이라고도 설명하고 있다.

도전은 왼쪽 심장과 오른쪽 머리가 시키는
일입니다. "창작이라는 것은 본래 왼쪽에서
뛰는 심장이 시켜서 하는 일(신형철, 느낌의
공동체)이라는 것입니다. ,,,

느낌이 왔을 때, 이것이 머리로 올라가서
계산이 시작되기 전에 행동하지 않으면
이 머리는 이제 안 해도 되는 열 가지의
이유를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한계는 한 게 없는 사람의 핑계입니다.
도전해 보지 않고 어떻게 한계를 알 수
있다는 말일까요?(p.280~281중에서)

훅, 치고 들어오는 유영만 교수의 촌철살인같은

선문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심하게 끄덕인다.

도전이라는 화두를 '마지막 어휘'로 삼은 그의

지혜가 반짝 반짝 빛나며 가슴에 박힌다.

이제 만나보게 될 철학자인 자크 데리다의 세계도

만만치 않다. 그가 만든 개념인 '디페랑스'는 단어

디프런스의 'e'를 'a'로 바꾼 새로운 말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디프런스의 차이와 달리 디페랑스를

'차연'이라고 풀이한다는 것이다.

데리다의 <글쓰기와 차이>에 따르면 '차연'도
흔적이라는 개념이 낳은 또 다른 산물입니다.
'차연'은 공간적 차이와 시간적 연기(延期)를
합쳐 만든 새로운 신조어입니다. 차이를 여기서 결정하지 말고 공간적 다름과 시간적 지연을 통해 새롭게 생각해 보자는 의미입니다. (p.310중에서)

시간적 연기는 곧, 시간적 지연을 말한다. 시간을

끈다는 것이다. 언어의 진행과정을 확정시키지 않고 지켜 본다는 의미도 포함하는 듯 싶다. 이를

통해 유영만 교수는 '호모 디페랑스'를 새롭게

접목 시킨다. '사이 전문가', 즉 이질적 전문성의

사이를 융합시키는 창조적 전문가를 말한다.


"어떤 텍스트이든 저자가 쓰는게 아니라

독자가 쓰는 것이다" (p.330중에서)


데리다가 말한 '디페랑스'로서의 텍스트론을 강조 하는 이유는 바로, 유영만 교수의 숱한 저작들 또한 독자와 함께 계속 재탄생하고 있음을 알려주려는

배려가 아닐까 싶다.

이번에 만나볼 철학자는 '조지 레이코프', 귓전에

익숙한 이름은 아니다. <몸의 철학>과 <삶으로서의

은유>라는 저서를 통해 신체성을 탐구한 철학자다.


레이코프의 말에 따르면, "세상을 지배하는 사람이 되려면 논리적으로 설명하지 말고 체험적 은유를

토대로 사람을 설득하라"고 주장한다. 상대방의

마음을 훔치는 설득의 비결을 레이코프를 통해

알아 보려는 유영만 교수 또한 은유의 천재다.


은유는 이전과 다르게 사고하는 지평을 열어
주며, 언어를 다르게 사용하는 방식을 알려준다.
은유를 바꾸면 사고를 넘어 행위도 바꾼다.
(p.335중에서)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은 논리적으로 설명해서 머리를 공략하는 사람이 아니라, 감성적으로 설득해서 심장을 공격하는 은유의 대가들이라는 유영만 교수의 결론이 도출되는 순간이다.


드디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철학자가 등장

한다. '브뤼노 라투르',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을

펼친 그는 <판도라의 희망>을 저술하였다. 그의

철학적 관심과 주장은 '사람만이 행위자가 아니라

사람 아닌 비인간 모두가 다 행위자'라는 것이다.


행위자 네트워크 이론(ANT:Actor Network

Theory)이란, 우리가 세상을 이해하기 위해

서는 인간은 물론 '인간 아닌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인간이 갖고 있는 행위적 영향력만이 지구상의 다른 존재나 생명체를

지배할 수 있다는 인간중심적 발상 자체가

오만의 극치라는 말이다. 가히 혁명적이다.


이렇게 해서 유영만 교수와 함께 위대한 열 두명의 철학자를 만나 보았다. 뿌듯함이 온 몸과 마음을

관통한다. 이제 곧 각별한 '아이러니스트'로서의

유영만 교수를 만나러 양평의 '꽃, 책으로 피다'로

간다. 《살롱 드 카페》의 첫 강연장에서 맞닥뜨릴

그의 모습이 사뭇, 궁금하기만 하다. 렛츠 고!!!

Fine♡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