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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지음

by 에스더esther

죽음 혹은 삶에 대한 질문

2021년의 마지막 날이다. 올 한해가 빼꼭하게

채워졌다가 기운다. 기울고는 그대로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날들에게 빈 그릇을 내어준다.


지금 읽는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마무리

할 시간이다. 한참동안 곁에 두고 음미하던 삶,

그리고 죽음에 관한 울림이었다.


이어령 교수는 암에 걸려 투병중이다. 이 책의

저자 김지수 작가와 매주 화요일 만나 '삶 속의

죽음' 혹은 '죽음 곁의 삶'에 대한 지혜를 나눈

것도 시한부 삶의 전력질주였다.


그와 대화를 나눌 때면 그의 시한부 삶이
입술 끝에 매달려 전력질주하는 것 같았다.
그의 이야기가 소크라테스와 필록테테스와
니체와 보들레르, 장자와 양자 컴퓨터를 넘
나들며 커브를 돌 때마다, 그 엄청난 속력에
지성과 영성이 부딪혀 스파크를 일으켰다.
우수수 떨어지는 부스러기만 수습해도 남은
인생이 허기지지 않을 것 같았다. (p.6중에서)

이어령 교수는 매주 화요일이면 깨끗하게 다려진

터틀렉 스웨터를 입고 목에 '확대경'을 걸치고서

작가를 맞이했다. '만날 때마다 소멸을 향해 가는

자가 아니라 탄생을 향해 가는 자' 답다고 했다.

궁극적으로 이 책은 죽음 혹은 삶에 대해 묻는
이 애잔한 질문의 아름다운 답이다. 더불어
고백건데 내가 인터뷰어로서 꿀 수 있었던
가장 달콤한 꿈이었다. 2021년 10월 김지수.

PS)선생님은 은유가 가득한 이 유언이 당신이
죽은 후에 전달되길 바랐지만, 이 귀한 지혜를
하루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 자물쇠를 푼다.
(감사하게도 그가 맹렬하게 죽음을 말할수록
죽음이 그를 비껴간다고 나는 느꼈다.)

(p.9중에서)

문득 이순신 장군이 했던 말이 떠 오르는 순간이다.


'필사즉생 필생즉사(必死則生이요 必生則死 :

반드시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

라고 외쳤던 명량해전에서의 이순신 장군처럼 죽음을 두렵게 여기지 않으니 살게 되는 것이다.


이어령 교수의 라스트 인터뷰에서 우리 몸에 있는 '배꼽'의 신비를 가르쳐 주는 장면이 나온다.


배꼽을 만져보게. 몸의 중심에 있어. 그런데
비어있는 중심이거든. 배꼽은 내가 타인의
몸과 연결되어 있었다는 유일한 증거물이지.
지금은 막혀 있지만 과거엔 뚫려 있었지 않나.
타인의 몸과 내가 하나였다는 것, 이 거대한
우주에서 같은 튜브를 타고 있었다는 것.
배꼽은 그 진실의 흔적이라네.(p.39)

갑자기 나도 이어령 교수가 말한 진실의 흔적을

느끼고 싶어 배꼽을 슬쩍 건드려 본다. 뚫려있던

흔적은 있으나, 지금은 막혀 있다. 아니, 어쩌면

막혀 있는 듯 느껴 지지만 뚫려있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과와의 소통이다. 엄마라는 존재를

알기도 전에 나를 살리던 가장 중요한 소통.


이어령 교수는 암 선고를 받은 후의 심경을 담담

하게 들려준다.


"의사에게 암 선고를 받은 후 나는 입으로 되뇌어

보았네. cancer...cancer. 캔서는 라틴 말로

'게 crab'이란 뜻이야. 상상해보게. 이 놈이 갯벌 구멍 속에 있다가 갑작스레 나와 집게발로 옆으로 간다네. 그리고 싹 숨어. 나는 묻지. '너 cancer야'

(p.57~58)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은유다. 도망가는

'게 crab'에게 '암 cancer '을 비유하는 것은.

이어령 교수의 암은 복막에서 시작되어 맹장과

대장으로 계속 전이가 되었고, 간으로까지 갔다.

그 때, 거기서 cancer와 더 이상 싸우지 않기로

결심한 이어령 교수는 그저 죽음을 받아 들이기

시작했다.

"병원에 들락날락 하는 시간에 글 한자라도 더
쓰고 죽자. 그것이 평생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고 외쳐왔던 내 삶의 최후진술 아니
겠는가. 종교인들이 죽음 앞에서 의연하듯
말일세" (p.60)

책의 중간을 읽다가 나는 그만 가슴이 먹먹해져

왔다. 작고 아름다운 것을 노래한 이어령의 시,


"발톱 깍다가

눈물 한 방울

너 거기 있었구나,

멍든 새끼 발가락

.......,

내 작은 잔디밭

날아 온 참새 한 마리

눈물 한 방울"

(p.65~66)


이어령 교수는 체중계를 보고도 눈물이 난다고 했다. 매일 가벼워지는 게 걱정이 된다고도 했다.


마지막 수업을 올 해 안으로 끝내고자 했던 나의

계획은 이 대목에서 잠시 미루어 진다. 작은 존재 하나로도 눈물이 나고야 마는 이어령 교수의 책을 내년에도 이어서 보자고, 마음이 그렇게 하자고, 어깨를 툭, 툭 쳤다. 이어령 교수가 토닥여주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괜찮아, 다 잘될거야"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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