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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더esther Apr 22. 2023

게으른 애도의 시간

생명力_3_<고모들의 大반란>

"무에 그리 좋아서 글케  웃고 있는겨???"

엄마의 하늘나라 꽃 구경 배웅길에 고모들이 대거

출정하셨다. 아빠가 맏이시니까 모두 손 아래 되는 고모들이다. 꽃 같은 엄마의 영정사진을 보고 자꾸

국화 가져다 놓으신다.  잠시라도 조문이 없으면

세 분의 고모들이 교대로 엄마 사진을 보며 말한다.


"에구, 언니... 도대체 뭐가 좋아서 그리도 밝게

웃고 있는겨? 나한테도 얘기 좀 해줘... 빨리..."


큰 고모의 장면이다. 마치, 연극의 주연배우처럼

처연하게 엄마의 영정사진과 대화를 하신다.



"언니!!!왜 이렇게 혼자 웃고 있는거야? 나도 좀

같이 웃자!!!고생만 했는데 거긴 그리도 좋아?"


국화 꽃 한 송이도 모자라서 이번에는 향불까지

피우는 둘째 고모다. 따지듯이 엄마의 영정사진

앞에서 시누 노릇을 한다. 그런데 밉지가 않다.



"언니,,,언니,,,사랑하는 언니야...참 예쁘게도

웃고 있네.  무에 그리 웃을 일이 생긴거냐구..."


우리 친가 집안 오남매의 완전 막내인 셋째 고모다.

마치 혈육으로 맺어진 자매처럼 엄마를 부르고 또

부른다. 어디 시누와 올캐의 캐미커플상을 준다면

당당히 수상하고도 남을만한 다정함이다.

아빠는 장례식장을 지킬 기력이 없으시다. 그대신

작은 아빠께서 형님의 몫을 빈틈없이 감당하신다.

한시도 빈소를 비우지 않고, 세심하게 배려하는 중이다. 역시, 엄마의 영정사진 앞에서는 시동생

이라기보다는 그냥 남동생이다. 자꾸 사진을 본다.


고모들은 참 솔직하고 용감다. 꽃 같은 엄마를

진심으로 사랑했던 속마음을 가열차게 표현다.

교대로 번갈아 가며 국화 놓고, 향불을 켜는

고모들이 펼치는 짠한 고백 속에 직한 슬픔 느 결에  승화되고 만다. 마운 반전이다.


작은 아빠의 드러내지 않고 베푸는 참한 배려와

고모들의 고백 대행진에 잠시나마 모두 웃는다.

전혀 대비하지 못했던 장례로 인해 급히 마련한

엄마의 영정사진 덕분에 오히려 빈소가 빛다.


엄마의 하늘나라 꽃 구경 길은 아마도 더 웃음이

넘칠지도 모르겠다. 평생 시누들 등살과 시동생 수발에 속이  다 문드러 졌을지도 모를 심성 착한 올캐에게 바치는 고모들의 갸륵한 반란 덕분이다.


 "정감사해요...고모들, 그리고 작은 아빠..."

2023. 4.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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