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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에스더esther Apr 20. 2023

아주 천천히, 매우 느리게

생명力_2 <아빠의 애도>


다 큰 딸들이 도베르만 인형을 샀다. 아버지께

선물하겠노라고. 60년을 함께 더불어 익숙하게 티키타카하할머니를 하늘나라로 떠나 보낸  할아버지. 아무런 감정선도 드러내지 못하시는...


그 슬픔의 깊이를 도저히 가늠할 수가 없기에

도베르만 인형을 곁에 두어 할아버지를 지켜 드리게 한다고. 기특한 마음자락을 핑계 삼아

 당장, 길을 나선다.


삶의 중심축이었던 엄마의 부재가 일상의 균형을 깨뜨린다. 아무것도 하고싶지 않고, 그저 게으른 애도에만 몰입하고 싶다. 그러다가 문득,

보이는 도베르만 인형을 보 아빠를 생각한다.


평생의 반려자를 잃은 아빠는 장례식에도 거의 참석하지 못하셨다. 감정의 표현조차도 무척

버거워 보였다. 눈물도 아빠에게는 사치인 듯...


수목장을 마치고 집에 돌아와 아빠의 손을 잡고

'오래, 오래, 우리 곁에 있어 주세요'라고 청한다.

그 말에 주르륵, 굵은 눈물방울이 손등을 적신다.


아빠는 아직도 느리다. 매일 두 병씩 드시는 곡주

막걸리가 심장 속으로 스며 들어야 그나마 춰둔

감정을 우리에게 보여 주신다. '괜찮다' 라고.


어른들의 말 속에서 때로는 괜찮은게 꼭 괜찮지 않다는 속맘이 숨어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아빠는 괜찮지 않지만 괜찮으시다. 그 정도다.


도베르만 인형을 아빠 손에 들려 드리니 가벼운 미소를 지으신다. 이름을 지으시라 하니


"똥꼬!!!"


라고 단박에 말씀 하신다.천진난만한 사랑꾼인

아빠만이 부를 수 있 엄마의 별명이다...


이제 아빠는 도베르만 인형을 바라보며 혼잣말을 하실지도 모르겠다. "나는 정말, 괜찮노라고..."

아주 천천히, 매우 느린 아빠의 애도를 추앙한다.


다음 번에 뵐 때는 아빠에게 침잠한 슬픔의 깊이가 조금이나마 덜어 내어져 있기만을 간절히 바란다.

하늘나라에서 꽃 구경 하고 계실 엄마의 사랑이

느리게, 가만히 아빠의 평안 위에 닿을 것이므로.


2023. 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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