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나라의 1인실 호텔
재작년 이맘 때, 엄마가 호흡곤란으로 응급실에 실려 가셨다. 봄 꽃이 피어나던 계절이었다. 산소 포화도라는 수치가 사람이 살고 죽는 것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된 봄이었다. 엄마는 응급처치를 마친
후에 일반 병실로 옮기실 수 있었는데, 병원에서는
1인실로 옮겨야 한다고 했다.
평생을 자기 자신을 위해 돈 한 푼 쓸 줄 몰랐던 엄마는
1인실이면 호텔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셨다. 아빠한테 전화해서 오시라고 하면서 함께 호텔에 있는 걸로 생각할 수도 있겠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여기서 부터 벌어졌다. 정작 아빠는 오시지 않겠다고 선언해 버린 것이다.
60년을 엄마와 단짝으로 살아오시면서 거의 처음으로 단호한 거절을 하신 아빠였다. 그야말로 이상한 행동을
하신 것이었다. 엄마는 티를 내시지는 않았지만 실망한 표정이 역력했다. 그리고, 사흘만에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아빠는 병원에 오시지 않은 것뿐만 아니라 장례식장에도
오지 않으셨다. 평소에 두 분의 다정한 찰떡 궁합을 생각하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이상한 일이었다.
사실, 이상한 이야기는 지금부터 진짜 시작일지도 모르 겠다. 엄마가 돌아가신 후 60년의 단짝을 잃은 아빠는
홀로 잘 지내시는 듯했다. 그러나 아빠는 점점 기력을 잃어 갔다. 병명은 없었다. 다만, 삶의 의지가 천천히 빠져나가는 것뿐이었다. 무기력증. 병이 아니라, 마음의 진단이었다.
아홉 달이 지날 때쯤 아빠는 결국, 쓰러지셨다. 탈진이었다.
응급실을 거쳐, 일반 병실로 옮기셨다가 지금은 요양원에 계신 아빠는 우리 삼남매가 뵈러 갈 때마다 이상한 질문을 던지신다.
“니 엄마, 니들 집에 있냐?”
우리는 잠시 멈칫하다가, 겨우 고개를 끄덕인다.
“응, 잘 계셔....”
그 말은 진실이 아니지만, 거짓도 아니다. 엄마는 우리 마음 속에, 아빠의 기억 속에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아빠는 결코 엄마를 보낸 적이 없으셨다. 중환자실에 있던 엄마도 보지 않으셨고, 장례조차도 치르지 않으셨기 때문이다.
그 때,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아빠의 행동은 지금에 와서는 엄마의 부재를 인정하지 않을 수 있는 매우 타당한
이유가 되기에 충분하다. 때로 어떤 사랑은 이별보다 더 깊은 방식으로 계속된다. 마치 그 사람의 존재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가장 익숙한 곳으로 다시 돌아간 것처럼.
그리고 그 익숙한 곳은 언제나, 아빠의 기억 속 이상한 나라의 1인실 호텔인 것이다. 엄마와 함께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