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쓰메스세키_나는 고양이로소이다_문예출판사
역시 이름없는 고양이의 활약은 눈부시다. 간게쓰를
딸의 배필로 맞이하려는 집안에 무단 잠입하는 것은
기본이다. 한참을 그 집에 들락거리다 시들해지고 만
고양이는 주인 아저씨의 방문객들을 흥미롭게 염탐
하면서 간간이 고양이답게 매미도 잡고, 사마귀들도
잡는 호기를 부려도 본다. 소나무에도 올라가 보고,
절벽 넘기처럼 소나무 미끄럼 타기도 즐긴다.
그러다가 어느 날, 고양이는 사람이라는 동물들이
자주 드나드는 대중탕을 들여다 보게 된다. 온 몸이
근질근질, 끈적끈적 하던 차에 주인 아저씨가 가끔씩
수건과 비누를 들고 홀연히 어디론가 외출하는 것을
발견했던 것이다. 30, 40분후에는 아저씨가 화사한
안색으로 돌아오는 것을 알아채 버렸기 때문이다.
골목 왼쪽으로 들어서니 건너편에 대나무처럼
높은 굴뚝이 우뚝 서서 끝에서 엷은 연기를 뿜고
있다. 바로 대중탕이다.
나는 슬며시 뒷문으로 몰래 들어갔다.
뒷문으로 들어가는 것은 비겁하다거나
미련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정문이 아니면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반 질투심에 떠드는
푸념이다.
대중탕에는 온통 옷을 입지 않은 인간들이 넘친다.
고양이는 그들을 괴물이라고 부른다. 아무것도
걸치지 않고 원시적인 모습으로 활보하는 그들은
규율이 없는 괴물이라는 것이 고양이의 생각이다.
대중탕 안에 있는 욕조는 많은 사람들이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가득차 있다. 주인 아저씨까지.
재미난 일이 일어 나기를 오매불망 기다리던 이름
없는 고양이는 드디어 제대로 된 사건을 만난다.
바로 위장병을 치료하러 병원에 들른 아저씨가
최면요법을 받는 장면이다. 고양이는 내심 기뻐
방 구석에 앉아 최면술을 지켜본다.
아저씨는 이윽고 최면술에 걸리게 되었다.
...선생은 우선 아저씨의 눈부터 걸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묵묵히 눈을 감고 있다.
나는 아저씨가 이제 장님이 된 줄 알았다.
...최면술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
모처럼 재미난 최면술이 실패로 끝나 버렸다.
이름없는 고양이의 최면 공개 관람도 그렇게
싱겁게 끝나 버리고 아저씨와 함께 평범하게
일상이 흘러간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저씨
집으로 메이테이, 도쿠센, 간게쓰, 도후 등이
모여 맥주를 마신다. 무사태평한 사람들끼리
한 바탕 흥을 돋구다가 하나 둘, 사라진 날이다.
아저씨는 저녁밥을 먹고 서재로 들어갔다.
아줌마는 으스스한 홑옷의 옷깃을 여미고
바랜 평상복을 꿰맨다. 아이들은 배개를
나란히 하고 자고 있다. 하녀는 목욕탕에
갔다.
태연하게 보이는 사람들도 마음 속을 두드려
보면 어딘가 슬픈 소리가 난다.
...
고양이로 태어나서 사람 세상에 살기 시작한 지
벌써 2년이 넘었다.
이름없는 고양이는 나름대로의 사유로 공연히
마음이 울적해 졌다. 아저씨와 일행들이 마시던
맥주가 생각 난 이유다. 과감히 맥주를 마셨는데
왠지 혀끝이 바늘로 찔린 듯 짜릿해 졌다. 그래도
다시 맥주를 마셨다. 이윽고 맥주 한 잔을 모두 다
마셔버린 고양이는 다시 두 잔째 맥주를 해치웠다.
점차 몸이 따뜻해 지고, 눈가가 달아 오르고, 귀가
뜨겁고, 노래에 맞춰 춤 추고 싶어진 고양이다.
자꾸 졸려서 자고 있는지, 걷고 있는지 분간이
안 되는 상황이다. 눈을 뜨려고 해도 엄청나게
무거운 눈꺼풀 때문에 될 대로 되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다가 순간, 풍덩 어딘가에 빠졌다.
머리를 들고 여기가 어딘지 돌아보니, 나는
큰 항아리 안에 떨어져 있다. ...
물에서 항아리 아가리까지 20여 센티미터다.
발을 뻗어도 닿지 않는다....
나올 수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나오려고
하는 것은 무리다...저항하지 않기로 했다
고양이는 체념을 해 버렸다. 앞발도, 뒷발도,
머리도, 꼬리도 자연의 힘에 맡겨 버리고 만다.
점차 편해진다고 느끼면서 이름 없는 고양이는
물 안에 있는건지, 방 안에 있는 건지도 모른다.
어디에 어떻게 있어도 상관없다.
단지 편하다. 아니, 편함 그 자체도
느낄 수 없다. 해와 달을 떨어뜨리고
천지를 분쇄하여 불가사의한 태평
속으로 들어간다. 나는 죽는다.
죽어 태평을 얻는다.
...
모든것이 고맙고 기쁘도다.
이렇게 나쓰메 소세키를 주인 아저씨로 모시던
이름없는 고양이는 무지개 다리를 건너고 만다.
감히, 그의 명복을 빈다.
from es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