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실

한강_문학과 지성사

by 에스더esther


여덟살 아이의 시집


<한강 작가의 신작_빛과 실>


이 책은 여덟살 적 아이의 기록에서 시작된다. 작가는

이사를 위해 창고를 정리하다 낡은 구두 상자 하나를 발견했고, 그 안에는 작가의 유년 시절 일기장 여남은

권이 들어 있었다. 포개어진 일기장들 사이로 '시집'

이라는 단어가 연필로 적힌 얇은 중철 제본도 있었다.


제본된 책자의 뒤쪽 표지에는 1979라는 연도와 함께

작가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책의 내지에는 모두 여덟

편의 시들이 표지 제목과 같은 연필의 필적으로 또박

또박 적혀 있었고, 그 중에서 4월의 날짜가 적힌 시는

다음의 두 행짜리 연들로 시작되는 시였다.


사랑이란 어디 있을까?
팔딱 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

사랑이란 무엇일까?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

p.10


무려 사십여 년의 시간을 지나서 작가를 찾아 온 유년의 '시집'은 지금도 작가와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그때의

여덟살 아이가 사용한 단어 몇 개가 연결되어 표현되는

느낌이라는 것이다.


뛰는 가슴 속 내 심장.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
그걸 잇는 금(金)실-빛을 내는 실

p.11


작가는 그 후 십사 년이 흘러 처음으로 시를, 그 이듬해

단편소설을 발표하며 '쓰는 사람'이 되었다. 다시 오 년

후에는 첫 장편소설을 발표했고, 하나씩 장편소설들을

발표할 때마다 유년의 질문들을 떠 올리고, 대답 대신

소설들을 완성하고 새롭게 다시 시작하기도 한다.


작가는 첫 장편소설부터 최근의 장편소설까지 어떤

두 질문 사이의 긴장과 내적 투쟁이 글을 써나가는

동력이 되었다고 믿어 왔다.


세계는 왜 이렇게 폭력적이고 고통스러운가?
동시에 세계는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운가?


2014년 봄 [소년이 온다]를 출간하고 난 뒤에, 처음으로

작가는 '모든 질문의 가장 깊은 겹은 언제나 사랑을 향해

있었던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더 나아가

'그것(사랑)'이 삶의 가장 오래고 근원적인 배움이었던

것은 아닐까?'라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여덟 살의 유년시절, 작가는 사랑이 '심장'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장소에 위치한다고 썼다. (팔딱팔딱 뛰는 나의

가슴 속에 있지:1979년 4월의 일기). 그리고 그 사랑의

정체에 대해서도 답을 했다. (우리의 가슴과 가슴 사이를

연결해 주는 금실이지:1979년 4월의 일기)라고.


소설을 쓸 때 나는 신체를 사용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부드러움과 온기와 차가움과 통증을
느끼는, 심장이 뛰고 갈증과 허기를 느끼고 걷고
달리고 바람과 눈비를 맞고 손을 맞잡는 모든 감각의
세부들을 사용한다.

필멸하는 존재로서 따뜻한 피가 흐르는 몸을 가진
내가 느끼는 그 생생한 감각들을 전류처럼 문장들에
불어넣으려 하고, 그 전류가 읽는 사람들에게 전달
되는 것을 느낄 때면 놀라고 감동한다.

언어가 우리를 잇는 실이라는 것을, 생명의 빛과
전류가 흐르는 그 실에 나의 질문들이 접속하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는 순간에. 그 실에 연결되어
주었고, 연결되어줄 모든 분들에게 마음 깊은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p 29, 노벨 문학상 수상 강연문(2024) 中에서>


<초록 빛_리움미술관>


한강 작가의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 연설문을 읽는다.

역시나 좋다. 연휴를 보내면서 들른 리움미술관에서 만난 초록 빛 햇살처럼 다정하다. 또한 인연의 기나 긴 끈이 되어주는 실로 연결되는 느낌도 든다. '빛과 실'로 지은

책의 제목도 곱다. 한결 잘 어울리는 작가와의 만남이다.


fine.


<빛과 실_뒷 표지>


p.s 브런치의 500번째 글이다. 한강 작가의 신작으로

책의 소감을 적을 수 있어서 더 의미가 깊다. 여전히

나도 '쓰는 사람'에 속할 수 있는 것 같아서 뿌듯하다.


앞으로 채워질 501번째, 그리고 그 이후의 글들에

대하여 한없는 애정의 마음을 품어 본다.


2025. 5. 4(일)

황금연휴에,

esth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