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일상] 국립극단 <삼매경>
극장에서 극장 얘기하는 것만큼 싱거운 이야기가 있을까? 너무 뻔하잖아. 연극 보러 갔는데 연극 이야기하는 건. 재미없지.
아닌가?
고전을 비트는 "동시대성"을 추구하는 요즘 연극을 다시 비꼬는 "유니크한 연극" <삼매경>
일생을 연극에 바친 한 60대 연극배우가 있다.
그는 어머니 장례식장에서도 혀가 짧은 조문객을 만나면 그의 캐릭터를 기억해 두려 애쓴다.
어머니를 잃은 슬픔보다 지금 하고 있는 연극의 캐릭터 연구에 더 진심인 배우다.
그렇게 그는 죽는 순간까지 연극배우로 살았는데 일생 내내 그를 괴롭힌 존재가 있었으니 바로 "도념"이다.
"도념"은 그가 27세 때 했던 연극 <동승>에서 맡은 역할이다.
그는 평생을 "도념"을 제대로 연기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아쉬움? 에 사로잡혀 어린 도념의 환영에 시달린다.
마음에 안 드는 장면을 다시-다시-다시-다시 한다. 여전히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도념"은 자신의 발뒤꿈치를 문 뱀 같은 존재이다. 치명적인 나의 약점
60대가 되었지만, 오히려 그의 커리어의 시작이 된 "도념"이 자신의 가장 큰 결점이다.
그러면서 연극이란 무엇인지. 배우가 연기한다는 것은 무엇인지 환영과 기억을 넘나들며 보게 된다.
배우와 캐릭터가 일치된다는 것은 순도 100% 믿음으로 하는 일,
여기에 논리와 이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물이 새는 지하 골방의 연습실에서 연출님은 혼심의 힘을 다해 일러 주신다.
그리고 마침내 알게 된다.
자신의 발뒤꿈치를 문 뱀은 "도념"이 아니었음을.
바로 자신이었음을.
과거는 후회뿐이며 그것을 곱씹는 것은 의미 없음을
그저 앞으로 나아갈 뿐.
아름다운 미완성의 연극을 사랑하며.
극의 서사구조는 사실 유치하다고 생각했다.
극장에서 연극 얘기하는 건 너무 뻔하지 않아?
연극은 신이고 배우는 사제라고?
배우를 너무 띄어주는 거 아냐?
그러면 연출가나 극작가는? 프로듀서, 무대감독, 조명디자이너, 무대디자이너는????
아니 연극이 배우만 있으면 되는 일인 줄 아나~ 하는 아니꼬운 마음이 마구 들었다.
그런데 이건 중요치 않았다.
어떤 극은 대사의 말맛보다, 극의 서사구조의 완결성보다, 연출의 참신함보다
타이밍?! 시간이 중요한 것임을 알게 해 줬다.
실제로 배우 지춘성 님은 27세에 연극 <동승>의 "도념"역을 하셨다.
그리고 시간이 많이 흘러 2025년 <삼매경>에서 60대에 과거의 아쉬움을 갖고 괴로워하는 당사자가 무대 위에 다시 오른 것이다. 이 보다 솔직한 고백이 어딨을까?
지춘성 배우님이 안 계셨다면 이 극이 애초에 성립이 가능했을까?
지춘성 배우였기에 가능한 이 시간이 쌓였기에 가능한 연극이었다.
120분 내내 지춘성 원맨쇼라고 느껴질 만큼 대사량도 압도적으로 많으셨는데 10분 피피티 발표 대본 외우는 것도 어려운 내게 저 엄청난 대사량을 소화하시는 것만으로도 존경의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관객으로서 할 수 있는 게 이것뿐이라 죄송할 따름이었다.
관록, 연륜, 공력이 무대를 사로잡았으며
분명 데시벨은 같은데, 기운이 달라졌다.
다만, 개인적 아쉬운 점이라면 전체 극의 강약조절이 더 세밀했으면 몰입이 더 좋았을 것만 같다.
배우들의 발성이 대체로 온 힘을 다해 소리를 지르는 것이었는데, 오히려 내내 소리를 지르니 임팩트가 덜했다. 어떨 땐 작게, 고요히, 느리게 하는 말이 더 크게 들리는 법이니까.
이런 개인적인 아쉬움을 차치하고서라도 지춘성 배우님의 배우로서 쌓아온 시간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이 작품을 볼 수 있어 영광이었다. 대사 중 커튼콜 때 자신의 부족한 연기에도 찬사를 보내는 관객들의 박수에 어찌할 줄 모르겠다는 고백이 마음을 울린다.
우리가 미완성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이지 않을까.
조금은 어설프고 삐뚜르고 부족해서 사랑할 수밖에 없다.
맞지. 맞지. 그런 거지.
연극은 인생이고 인생은 연극이고
우리는 미완성이라서 이걸 사랑하지.
아름다운 미완성을 사랑한 이의 고백으로 기억해야지.
연극 <삼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