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영은의 비밀

#7 학교가기 싫은 영은이

by 에스더쌤

1985년 영은이가 국민학교 2학년이 되었을 때,

영은이가 또 학교에 가기 싫어졌다.

학교에서 매일 치르는 받아쓰기는 시시했다.

산수 시간 더하기와 빼기도 재미없었다.

영은이는 차라리 바닷가를 거닐며

갈매기가 나는 모습을 보는 것이 좋았다.

선생님은 재미없는 소리만 했다.

교장선생님 훈시는 따분했다.


같이 놀만한 친구를 찾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 번은 영은이가 퍼머머리 키다리 여자친구에게 말을 걸었다.

좀 순해 보였고 만만해 보였다.

"나랑 친구할래?"

"그래, 오늘 우리집에 가자."

그래서 영은이는 친구집에 놀러갔다.

살짝 긴장을 했지만, 먼저 다가가길 잘했구나 싶었다.


하지만, 학교에서 매일 꼼짝않고 앉아서

재미없는 수업을 하는 일과가 너무 힘들었다.


1학년 때 영은이는 학교에 가기가 싫어서

옥상에 올라가서 혼자 놀고 있었다.

커다란 항아리에 들어가서 하늘도 바라보고,

넓은 옥상 구석구석에 보이는 개미도 관찰했다.


영은이가 친구들을 보니

감기에 걸려서 안 오고,

열이 나서 안 오고 그랬다.


영은이는 학교에 가기 싫으면 안 가도 되는 줄로 알았다.

옥상에 올려둔 커다란 장독 안에 들어갔다가 나왔다가

혼자서 숨바꼭질도 아닌 것이 놀고 있었다.

그런데 볼 일이 있어 옥상에 올라온 영은이 엄마가 영은이를 발견했다.


"영은아, 니 지금 여기서 뭐 하노?"

"학교 가기 싫어서 안 갔는데, 와 그라는데."

"뭐라노? 빨리 가방 들고 가그라. "

"학교 안 가고 놀고 싶다."

"그라믄 안 된다. 빨리 가라."

엄마의 호통에 떠밀려 영은이는 다시 학교로 갔다.

다행히 늦지 않게 도착했다.


그 이후로도 영은이는 학교에 다니기가 따분하기 일쑤였다.

그래도 엄마가 학교에 빠지면 안 된다고 하시니 안 갈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추석 즈음이었다. 장학사가 국민학교에 방문한다고 했다.

2학년 7반 담임선생님은 거기에 맞춰 수업을 연극으로 꾸미게 되었다.

똘똘해 보이는 영은이는 할머니 역을 맡게 되었다.

대본이랄 것도 없이 아들과 며느리, 손자 손녀가 절을 하면

"오냐, 너희도 건강하거라."

"먼 길 오느라 애썼다."

등 즉흥적으로 뭐라 하라는데 영은이는 그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텔레비전에서 듣고 보고,

주워들은 게 있어서 열심히 임무를 수행했다.

장학사가 오는 전 주에 마지막으로 맞춰볼 때까지

담임선생님이 꼭 한복을 가져오라고 했다.


영은이는 엄마에게 한복이 필요하다고 했다.

친구들은 명절 즈음에 한복을 입고 학교에 오기도 했고,

동네 아이들도 한복을 입었다.

그런데 영은이네는 워낙 딸들이 다섯이기도 했고,

명절이라고 한복을 입거나

새로 옷을 사는 일은 거의 없었다.

영은이 엄마는 빌려주겠다고 했다.


그런데 한복을 가져가야 하는 그날까지 영은이 엄마는 한복을 못 빌렸다.

한복 없이 학교에 간 영은이는 선생님에게 한복을 못 빌렸다고 얘기했다.

그런데 대노한 선생님은 영은이를 일으켜 세우고,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한쪽 뺨을 꼬집어 잡고 뺨을 두 대 철썩철썩 때렸다.

"한복을 가져오라고 했으면 가져와야 안되나."

"......"


영은이는 얼얼한 뺨이 아픈 것보다,

당혹감과 수치심으로 마음이 아려왔다.

반 아이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처음 맞아본 영은이는

말할 수 없는 수치심으로 얼굴이 새빨개졌다.


그런데 그다음 주 한복을 빌려 장학사들 앞에서

연극을 무사히 잘 치르고 난 며칠 후,

영은이가 하교 후 운동장을 가로질러 집에 가고 있을 때였다.

같은 반 여자 아이 둘이서 수군거리는 것이다.

"쟤, 선생님한테 맞았다 아이가."

"그래, 뺨을 요래요래..."

영은이는 곧바로 대응하지도 못하고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그때 맞은 이후로 안 그래도 학교에 더 가기 싫어졌는데,

자신의 잘못도 아닌데 수군거리는 아이들로 인해 상처를 받았다.


영은이는 그 후로 오랫동안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떠올리라고 하면

2학년 때 담임이 떠올랐다.

당분간은 절대 용서할 수 없었고, 잊을 수 없었다.

몸에 새겨진 상처였다. 그리고 트라우마였다.

아직은 여렸던 영은이의 마음속에 응어리가 생겼다.

어른에 대한 불신, 동년배 친구들에 대한 배신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일까. 그렇게 밝고 명랑했던 영은이의 표정은 침통해졌고,

모든 것이 따분하고 재미없었다. 학교는 더 가기 싫은 곳이 되었다.

사실 영은이는 뺨을 맞았지만, 그 결과로 마음이 아파진 것이다.


그 응어리는 생각보다 깊고 진했다.

영은이의 영혼에 새겨진 상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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