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양보할 수 없는 도시락 반찬
영은이가 1, 2학년 때에는 도시락을 싸지 않았다.
학생 수는 많고 교실은 부족하니 국민학교는 1, 2 부로 나누어 운영했다.
한 주는 오전에 나가고,
그다음 주는 오후에 나가는 식으로.
3학년 때부터는 도시락을 싸서 다녀야 했다.
영은이 엄마는 김치를 볶거나, 계란을 부쳐서 반찬을 준비하고
멸치나 진미채볶음, 고기완자, 미역줄기, 나물 등을 반찬으로 싸주었다.
영은이가 6학년 때만 해도
영은의 큰언니가 대학교 4학년이었으니까 도시락이 줄었지만,
모두 학교를 다닐 때 영은의 엄마가 싸야 하는 도시락 수만
영은이 큰언니 2개, 둘째 언니 2개, 셋째 언니 2개,
영은 1개, 동생 1개 총 8개였다.
두 솥에 밥을 가득해도 도시락에 밥을 꾹꾹 눌러 담으면
밥이 사라졌다.
한 번은 영은이 엄마가 몸이 안 좋았다.
영은이는 엄마가 김치만 반찬으로 싸 주자,
도시락을 내놓기가 싫었다.
영은이의 짝지 친구가 물었다.
"와 그라노, 김치 싸 왔나?"
"아이다, 배 아파서 그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영은이의 뱃속은 꼬르륵꼬르륵 소리가 났다.
집에 도시락 그대로 가져오니,
영은이 엄마가 물었다.
"김치라서 안 묵었나?"
"속이 안 좋아서 안 묵었다."
영은이는 본인이 말을 안 해도 다들 알아차리는 것이 신기했다.
짝지도 엄마도 말이다.
영은이는 다짐했다.
김치만 있어도 밥은 안 굶겠다고.
김치를 내놓기가
부끄러워서 안 먹기엔 배가 너무너무 고팠다.
영은이는 김치를 싸갈지언정
도시락을 안 들고 학교에 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영은이 반 친구들 중엔 늘 컵라면을 사 먹거나, 빵을 사 먹는 아이들도 있었다.
불우한 학생들을 선별해서 주는 빵과 우유로 점심을 먹는 아이들도 있었다.
그나마 무언가를 먹는 아이들의 형편은 나았다.
애매하게 불우학생이 안된 학생 중엔 수도꼭지의 수돗물로 배를 채우기도 했다.
영은이는 맨날 먹는 밥 말고,
라면이나 맛있는 빵으로 점심을 먹는 아이들이 부럽기도 했다.
또 미용실 엄마를 둔 영진이가 매일 싸 오는 비엔나소시지와,
늘 정갈하고 아름답게 장식된 멋진 반찬을 싸 오는 미란이가 부러웠다.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하는 아이들 중엔 엄재춘이라는 덩치 큰 남학생이 있었다.
재춘이는 바닷가에서 좀 멀리 떨어진 언덕 위 판자촌에 살았다.
비가 많이 온 날은 재춘이가
학교에 안 오기도 했다.
영은이는 비가 많이 오는 것과 학교에 안 오는 것의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힘들었다.
며칠 후 친구들 몇 명과 그곳에 놀러 가기 전까지는.
폭우가 지나간 지 며칠이 지났는데도,
판자로 헐겁게 얼기설기 대충 지어놓은
움막 같은 집이 성할 리가 없었다.
몇 가지 되지 않는 가재도구는
다 젖어서 엉망이 되었고,
나무들이 여기저기 꺾여 있었다.
영은이는 가난의 실체를 보았다.
설명할 수 없는 비루함을 느꼈다.
며칠 후,
김치 싸준 것이 내심 미안했던 영은이 엄마는
돼지고기와 두부, 양파, 달걀, 양파 등을 넣어 만든 고기완자를 반찬으로 싸주었다.
반찬통을 열자마자 고기 특유의 구수한 냄새가 퍼져나갔다.
영은이가 기분 좋게 막 반찬을 먹으려는 순간,
어찌 알았는지 재춘이가 영은이 곁으로 다가왔다.
"한 입만 주면 안 되겠나?"
"안된다, 반찬 모자란다."
"진짜 쪼금만 주면 안 되나?"
"저리 가라, 자르기도 애매하다."
애처로운 눈빛을 쏘아 보내며
애절하다 못해 슬퍼 보였던 재춘이를
영은이는 기어이 보내버렸다.
덩치만 컸지, 매너가 있는
착한 재춘이는 아쉬운 표정으로 순순히 자리를 떠났다.
사실 영은이 엄마가 좀 작게 해 주면 좋았는데,
커다랗게 스테이크처럼 한 장으로 부쳐준 고기반찬을 자르기도 애매하긴 했다.
그래도 영은이는 두고두고 이 일이 마음에 남았다.
그냥 재춘이한테 나눠줄 걸 하고 말이다.
아니면 재춘이가 그냥 한 입 물고 가버리지 하고.
영은이가 생각할 때
두고두고 가장 맛있는 반찬이 바로 고기완자였다.
두부의 부드러운 식감과 고기의 고소함, 그리고 양파와 당근의 식감,
기름에 구원 고소한 풍미를 가진 고기반찬.
영은이는 고기완자를 볼 때마다 재춘이가 생각났다.
그리고 재춘이가 살던 낡은 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쓰러질듯한 집이 생각났다.
'재춘아, 미안해. 너는 고기완자가 많이 먹고 싶었지?
좀 나눠줄 걸 그랬어. 나는 자주 먹는데, 너는 자주 못 먹었지?
다음에 달라고 하면 꼭 줄게.'
영은이는 마음속으로 이야기해 보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