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영은의 비밀

#27 아빠와 제대로 한 판

by 에스더쌤

나는 아빠를 좋아하지 않았다.

어렸을 때 까르르 웃고 재미있게 놀다가

급 화를 내버리는 다혈질의 아빠는 불안감을 주었다.

웃다가도 좋은 분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르니까

나도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엄마는 아침 식사 후,

큰언니를 붙들어 놓고

하소연을 했다.

"너거 아빠가 세상에 이래 짜다.

생활비도 쬐금만 주고, 소리치고 진짜 못살겠다."

"그래, 엄마. 엄마가 힘들제?"

"내가 진짜 너거만 아니면 도망가고 싶다."

"엄마가 참아야지. 우야노?"

이런 패턴이었다.



옆에서 듣던 나도 세뇌를 당했다.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나쁜 놈이었다.

게다가 다 맛있게 식사하고 있는데,

아빠만 유독 짜네 싱겁네 하며

엄마에게 핀잔을 주었다.

입만 열면 엄마한테 타박을 주는 아빠가

나는 너무 싫었다.

아빠가 싫으니까 세상의 모든 남자들이 싫을 정도였다.

학교에 다니면 이래저래 살 것들이 생겼다.

"아빠, 문제집 사게 오천 원만 주세요."

인상이 구겨지며

"엄마한테 달라 캐라."

그러면 영은이는 또 엄마한테 가서

"엄마, 문제집 사게 아빠한테 돈 달라니

엄마한테 받으라는데예."

엄마는 또 한숨을 내쉬며

"아빠한테 달라 캐라."

그러면 나는 짜증이 솟구쳤다.

아니 다른 것도 아니고 문제집 사달라는데,

둘이서 번갈아가며 되돌려 보내는 것이

이해가 안 되었다.



우리 부모님은 늘 현금을 가지고 있었다.

내 입장에서는 엄마 아빠가 늘 지폐를 들고 세고 있어서,

돈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물론 그 돈으로 연탄을 또 사긴 해야 했지만.




나는 대학교에 들어가면서

조금 반항심이 생겼다.

그렇다고 막 나간 것은 아니고

외모에 관심을 기울였다.

나는 화장품도 사고,

옷과 신발도 샀다. 그리고 미용실에서 파마를 했다.

뽀글뽀글 볶으니 들장미 소녀가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너무 북실북실하고

빗질도 쉽지 않고

한 달도 안 되어 지겨워졌다.

다시 또 머리를 폈다.



나는 용돈도 20만 원 받고 있었고,

과외도 하고 있어서

하고 싶은 것을 많이 할 수 있었다.

또 한 달이 지나니,

나는 다시 파마머리가 그리운 것이었다.

이번엔 아예 앞쪽은 보브컷을 하고

뒤에 꼬랑지를 길게 늘어뜨려 파마를 하였다.

어디서 본 적도 없는 요상스러운 스타일이었다.

왜 그랬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남들이 안 하는 것을 해보고 싶은 마음이었다.

미용실에서도 걱정을 했다.

"이런 머리 스타일링하기 쉽지 않을긴데예."

"괜찮으니까 그냥 해주시지예."

저녁에 집에 들어가니 엄마는 표정관리가 안되었다.

"가시나가, 돈도 안 아깝나?

머리를 볶았다가 폈다가 또 볶았노?

머리 꼬락서니는 그게 또 뭐꼬?"

"내가 머리를 볶든지 펴든지

내 머리니까 내 마음대로 하믄 되는 거 아이가?"




그날따라 나는 핀잔을 주듯 비아냥거리는

엄마의 말투가 영 거슬렸다.

쿵쾅쿵쾅 걸어가 방문을 확 닫아버렸다.

그때였다.

"이 가시나가, 어데 벼르장머리 없이 말대답이고?"

아빠가 바로 왔다.

나는 너무 무서워서 한 대 맞을까 봐 바로 방문을 걸어 잠갔다.

난생처음 느껴보는 공포심이었다.

어릴 때 아빠는 화나면 손이 올라가고

내가 동생과 싸우면 매도 들었지만,

중고등학교 이후로는 맞아본 적은 없었던 터였다.

문이라도 열리면 맞을 것 같았다.



혈압이 제대로 오른 아빠는

내가 문을 잠그니까,

망치를 들고 문고리를 깨부숴버릴 참이었다.

"영은이 니 빨리 문 열어라,

안 열면 망치로 부숴부릴끼다."

"문 무수기만 해 보세요, 경찰에 신고해뿌릴끼니까네."

나는 목소리로 소리 질렀다.

아빠는 너무 화가 나고

어쩔 줄을 모르겠고 감당이 안 되었다.

아내와 다른 딸들이 말리는데

화를 어찌하지 못해 결국 졸도해버리고 말았다.



나는 방문을 걸어 잠그고

목놓아 울었다.

그렇게 소리는 질렀지만,

이후 어찌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계속 우니까 눈물도 마르고

입도 마르고 목이 너무 마른데

무서워서 방문도 못 열었다.

동생이 와서 말했다.

"언니야, 나와봐라. 어서 아빠한테 사과해라."

"언니야, 일단 문 조금 열고 물이라도 마셔라이."

동생이 계속 문을 열라는데도

나는 문을 굳게 걸어 잠근 채 나올 생각도 안 했다.

문만 잠근 게 아니었다. 마음도 잠갔다.




나는 당시 선교단체에서 성경공부도 하고 있었고,

은혜도 받고 있었다. 그런 내가 아빠와 싸우기나 하고

말도 했다는 것이 스스로 용납이 되지 않았다.

한심하고 정죄가 되었다.

'이래 살면 뭐 하겠니. 콱 죽어뿔란다.' 하는

마음이 들고 누군가 속에서 그냥 죽으라고

소곤거리는 것 같았다.



당시 다른 곳에 살고 있던 셋째 언니 영의에게 전화를 걸었다.

"언니야, 내 아빠한테 소리 지르고 문도 잠그고

나 같은 거는 살아도 소용이 없겠다, 맞제?"

"영은아, 니 무슨 일인지 몰라도 그래 생각하면 안 된다.

사람이 실수도 다 하는 거 아이가.

나쁜 마음먹으면 안 된다."

셋째 언니의 따뜻한 위로에 나는 죽음은 피하게 되었다.



나는 혹시라도 아빠와 마주칠까 무서워서 새벽 5시가 되자마자

조용히 몰래 방문을 열고 나와,

지하철 역에 가서 첫차를 타고서

1호선 종점을 왔다 갔다 했다.

밤을 꼴딱 새운 나는 빨간 토끼눈을 하고

주일예배를 드리러 갔다.

그리고는 예배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가서

"아빠, 제가 잘못했어예. 앞으로는 안 그럴게요."

"영은이 네 잘못을 알긋나?"

"네, 엄마가 너무 화나게 해서 저도 화나서 그랬어예."

"그래도 네 엄마한테 그러는 거 아이다, 조심해라."

그렇게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내가 아빠에게 용서를 구한 것은 진짜

잘못했다고 여겨서는 아니었다.

내가 아직은

능력이 없어서 나가 살 것도 아니고,

살긴 살아야 하니까 고개를 숙이고 들어간 것뿐이었다.

일종의 생존전략이었던 셈이다.

한편 나는 속으로 시원하기도 했다.

좀 무섭긴 했지만 감히 아무도 대들지 못하는 아빠에게

대들어본 것이 후련한 것이었다.



나나 엄마나, 아빠가

감정을 차분히 말할 수 있고,

원하는 것을 배려있게 말할 수 있었다면

큰 문제도 되지 않을 일이었다.

나는 머리로 이해하고 마음으로 깨달았어도

그것이 몸에 배여 나오기까지는 한참이 걸린다는 것을 그때에도 미처 알지 못했다.

나는 아빠와 제대로 한 판 붙어보고 나서야

사람의 밑바닥, 그리고 자신의 밑바닥도 볼 수 있었다.

그제야 더 진리가 궁금해졌다.

사람의 속을 알고 싶어 졌다.

사람이 죽을 때는 큰일이 아니어도 가능하다는 것도 알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책을 읽게 되었다.

알고 싶어서.




sticker sticker


금요일 연재
이전 26화호영은의 비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