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영은의 비밀

#28 캐나다 밴쿠버로 떠난 어학연수

by 에스더쌤


머지않아 1학기 기말고사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학교 4학년이 된 호영은.


수업을 땡땡이치고 도망 다니던 내가 아니었다.


3학년 때부터 정신을 차리고 수업에 열심히 임하였다.


3학년 2학기 때는 전액 장학금까지 받은 나는


열심히 공부를 하긴 하는데 학교에서 큰 재미를 느끼진 못했다.



그나마 '조선후기경제사'는 재미있었다.


서울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셨다는 교수님은 나중에는


조선후기 경제사를 전공하게 되셨다.


다른 것보다 일본이 침략을 해서 그렇지


내부에서도 근대적인 경제로 이행되는 면들이


싹트고 있었다는 점이 재미있었다.


맨 앞자리에 앉아서 열심히 수업을 들으니까


교수님도 좀 놀라는 눈치였다.



4학년이라 다들 임용고시를 열심히 준비하는 분위기였는데,


나는 해야 된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떻게 해야 할지 막막하던 차였다.





큰언니는 결혼을 한 지 5년 정도가 되어


두 아이를 키우느라 많이 지친 상태였다.


위로 아들이 4세, 아래로 딸이 2세였는데,


바람이 들어서 캐나다 어학연수를 알아보았다.



당시 어린 조카를 셋째 언니가 돌보고 있어서


큰언니는 고마움의 보답과 또 본인이 학원에 가 있을 동안


아이들을 돌봐줄 겸 셋째 영의언니에게 같이 가자고 했다.


그런데 당시 영의언니는 갈 형편이 못되었다.



실은 나는 캐나다 어학연수 이야기를 듣자마자


너무 가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기도도 했다.


"하나님, 제가 꼭 캐나다로 갈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런데 원하면 이루어진다고 진짜로 내가 가게 되었다.


그것도 내가 어학연수를 받고 주말엔 내가


두 조카를 봐주는 조건이었다.




6월부터 어학원에 가서 교육도 받았다.


여권도 만들고, 짐도 준비하기 시작했다.


기말고사를 치기 전부터 출발하는 7월 말까지


나는 인생 최고의 시간을 보냈다.


무슨 옷을 가지고 갈 것인가를 고민하며 커다란


여행가방에 패션쇼를 나갈 정도로 옷을 가득 담았다.




그런데 내 옷가방을 본 큰언니는


"가시나야, 니 거기 패션쇼 하러 갈라 카나,


다 빼라. 이거 다 못 갖고 간다."


"알았다. 빼믄 된다 아이가."


시작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대학교 4학년이라지만 말하는 거부터 행동하는 것까지


여전히 어린아이 같이 유치했던 나는


두 조카를 돌봐주기보다 큰언니에겐


또 다른 큰 아이와 같았다.



일본 나리타 공항을 거쳐 밴쿠버까지는 10시간도 넘었다.


나와 어린 두 조카, 큰언니는 너무너무 힘들어서 밴쿠버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질 것 같았다.



유학원에서 보내준 멋진 리무진을 타고 앞으로 한 달 동안


묵을 North Vancouver Princess Street에 갈 때도


나는 자신이 마주하게 될 갖가지 고난을 예상하지 못했다.




숙소에 도착하니 안주인이 맞아주고


과일을 사놓고, 치킨라이스도 준비해 주었다.


그리고 너무 피곤했지만 먹을거리가 없으니


함께 마트에 가자고 했고, 큰언니와 조카들을 두고


나 혼자 따라나섰다.



나름 영어회화 동아리에도 나가고


토익 공부도 했지만,


안주인의 빠른 영어를 좀처럼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대충 필요한 몇 가지만 사서 숙소로 왔다.


2층 집의 1층 전체를 우리가 쓰고,


2층이 주인집이었다.


언덕 위의 집은 영화에나 나올 법한 멋진 집이었다.


밖으로는 초록초록한 정원이 있고,


동네 전체가 언덕 위에 아름다운 집들이 즐비한 부촌이었다.



안주인이 내가 가게 될 어학원까지 데려다주며


버스는 여기서 타고, 내려서 또 갈아타고,


씨버스 타고 어쩌고 저쩌고 얘기하는데


나는 잘 못 알아들으면서도 무조건


"Yes, I got it"


하고 대답했다.




7월 25일에 도착하여, 다음날 7월 26일 월요일에


어학원으로 가기 위해 버스를 타고 항구에 내려, 씨버스를 탔다.


세상에나 지하철을 타듯 배를 탔는데, 눈부신 바다가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모른다.


씨버스에서 내려서 다시 두 블록쯤을 걸어 어학원에 갔다.


주로 어린 청소년학생들이 많았는데, 대학교 4학년인 나도 영락없이


청소년 같아 보였다. 레벨 테스트를 치르고 반에 배정되었다.



말이 몰입 교육이지 크게 교육에 관심 없는 여성이 담임이었는데,


회화가 말이 이어져야 하는데, 다들 시큰둥했다. 그 와중에도


나는 언니들도 만나고 비슷한 또래의 여대생도 만나서


대화도 나누었다. 점심은 밖에 세워진 트럭에서 해결하거나


밖에 나가 식당을 이용했는데, 큰언니가 준 용돈에서 아꼈다가


옷을 사려고 벼르고 있었다. 내가 주로 점심을 해결한 곳은


일본식 초밥집이었는데, 딱 충무김밥과 똑같이 생긴 초밥을 시켜 먹었다.


그것이 제일 쌌다.





어학원에는 일본 학생들이 많았다.


은근히 안 되는 영어로 대화하며 집으로 놀러 오라고도 하고


성경 이야기도 하였다.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한동안


편지를 주고받는 친구도 사귀게 되었다.



그런데 첫날 다시 똑같은 방법으로 홈스테이집으로 가려는데,


버스가 갑자기 중간에 서서는


"Get off here!"


"Isn't this bus going to the Princess Street?"


"No, Get off here right now!"


크게 소리 지르며 기사가 화를 냈다.


캐나다라고 다 친절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도착하고 바로 다음날 아직 시차 적응도 안 된 나는 아찔했다.



눈대중으로 돌아가려고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도 가도 집이 안 보이는 거였다.


주소는 알았는데, 공중전화가 어디에 있는지도


사용법도 몰랐다. 가다가다 자전거 타고 하이킹에 나서던


한 아저씨에게 물었다.


"Could you help me? I lost my way gome."


세상에나 친절한 아저씨는 주소를 확인하더니


자전거를 도로 가져다 놓고 자동차를 몰고 나와주었다.


"You are the savior to me. Thank you so much."


한 날 큰 불친절과 큰 친절을 만났다.




어학원에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주말에는 시애틀도 관광을 가기도 하고


로키 산맥에도 여행 가는 일정이 있었는데,


나는 큰언니를 위해 갈 수가 없었다.



토요일만 기다리던 큰언니는 나에게


두 아이를 맡기고 콧노래를 부르며 시내로 놀러 갔다.


귀여운 조카였지만, 어린아이들을


하루 종일 보는 것은 나에게는 버거운 일이었다.


게다가 기저귀를 떼려는 둘째 조카는 옷만 입혀놓으면


실수를 하고, 또 갈아입히면 또 싸고


그러니 나는 너무 힘들어서


저녁에 큰언니가 돌아왔을 때는


힘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




큰언니는 아름다운 자연환경 속에서


힘들었던 학교생활과 권태로운 결혼생활을


잊고서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주말을 이용해서 다 같이 '부차드 가든'이라고 빅토리아 섬에 있는


아름다운 정원에도 가고


로키 산맥에도 올라가고


스탠리 파크라고 커다란 공원에도 갔다.







011_11_edited-1.JPG 부차드 가든


나는 또 UBC 대학교 안에 있는 수영장에도 갔다.


한 번은 다이빙을 해보기로 했다.


1m, 3m, 5m, 10m짜리가 있었다.


3m에 올랐다. 옆에서 구경하던 꼬맹이가


"Will you dive?"


"Yes, I will."


내가 그렇게 대답하지 않았더라면


올라갔다가 내려왔을 텐데,


꼬맹이가 빤히 보고 있었다.


막상 올라가 보디 3m는 너무 높았다.


그래도 일단 하기로 했으니까 나는 멋지게 뛰어내려 볼 참이었다.


한 번도 배워본 적도 없는 다이빙을 말이다.


머리를 아래로 텔레비전에서 봤던 선수를 흉내 내다


가슴팍으로 팍 물에 부딪히면서


수경은 어디로 날아가고


순간 심장이 멎는 것 같았다.


너무 아픈데 숨을 헉헉 거리며 나왔다.


이러다 죽는구나 싶었다.



또 귀여운 다른 꼬마가 다가왔다.


"May I help you?"


"Yes, thank you."


꼬마가 영은이의 수모와 수경을 찾아 주었다.


그러곤 조심하라고 이르며 가는 것이었다.




나는 길을 가다 화장실을


toilet이라 말했다가 엄청난 수모를 겪기도 했고,



또 한 번 수영장에 갔다가 열 살은 더 어린 꼬맹이가 자꾸 따라다니는 바람에


몰래 빠져나오기도 했다.



또 잘못 버스를 타고 길을 잃고 헤매다


몸살이 나서 며칠간 어학원에 결석도 했다.



어학원에서 아저씨 한 분을 만나 언니들과 밥도 얻어먹었고,


아는 선교사님을 찾아가 예배를 드리고 함께 나가서


복음을 전하는 일도 하였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한 달 동안


나는 자신의 어린애 같은 모습을 마주했고,


준비되지 않고 떠난 어학연수의 안타까움도 느꼈고,


새로운 세상에서 크고 작은 일도 겪으며 잊지 못할


추억을 쌓았다.



그러고는 두고두고 본인이 캐나다 밴쿠버로 어학연수를 다녀왔다고


얼마나 뻐기고 다녔는지, 그 누구도 내가 한 달간 다녀온 것은 몰랐을 것이다.


한 일 년은 다녀온 줄로 알았을 것이다.



어쨌든 나는 그 한 달 때문에 어깨를 쭉 펴고


언젠가 또 가리라 다짐하며


더 열심히 영어 공부에 매진하게 되었다.



*내가 어학연수 떠날 당시엔 휴대폰이 보급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음.



*당시 타임테이블엔 230번 버스가

시간대별로 종점이 조금 달랐음.

내가 미처 확인을 못해 벌어진 에피소드임.







금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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