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 수영강습을 시작한 호영은
기말고사를 치르고 난 새내기 호영은.
나는 학교에 굳이 갈 일은 없지만
책도 읽을 겸 도서관에 자리를 잡았다.
자리를 잡았을 뿐 화장실로 갔다가,
매점에서 음료수 사 먹었다가,
커다란 독서대롤 놓고 공부하는 수험생들을 구경하기 바빴다.
혹시 또 아는 선배 만나서 과자라도 얻어먹을 심산에 눈알이 돌아갔다.
나는 도서관에 몸이 있었을 뿐
이미 마음은 붕 떠서 여름 방학을 어떻게 보낼지
골몰히 고민했다.
딱히 아이디어가 떠오르지 않았다.
사시사철 바닷바람이 부는 부산이지만,
바다는 바다일 뿐,
바로 옆이 바다인데도
우리 집에선 여름방학이면 딱 한 번
물놀이를 갔다.
계곡으로 물놀이를 가면 그걸로 끝이었다.
공기가 눈에 보이지 않고
산소가 없으면 생명이 위태로워지지만,
그 존재를 인식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에게 바다는 그런 존재였다.
그냥 보고만 있어도 바다는 좋긴 했다.
철썩철썩 파도가 왔다가 모래를 쓸어
빠져나가는 광경은 비슷해 보여도
파도가 칠 때마다 달랐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커다란 파도가 생기기도 하고,
잔잔해지기도 하고
끼룩끼룩 갈매기는 먹이를 찾아 물가를 헤매고,
소리를 내며 멀리 날아갔다.
본격적인 여름이 시작된 6월의 어느 날,
내가 대학교 정문으로 가고 있는데
눈에 들어온 '여름방학 수영특강'이었다.
예쁜 여자선배 한 명과 남자선배들 여러 명이 있었다.
뜨거운 햇볕 아래 시원해 보이는 '수영'이라는 글자가 대비되었다.
나는 수영이 너무너무 하고 싶어졌다.
7월 첫 주와 둘째 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딱
10일간의 여름방학 수영특강을 신청하게 되었다.
시작도 하기 전에 이미 나는 스스로가 수영선수가 된 것 같았다.
목욕탕에 갈 때마다
냉탕에서 잠수하고 수영을 했던
자신의 실력을 뽐낼 때가 온 것이다.
문제는 수영복이었다. 수모와 수경도.
수영복 입을 자신의 몸도 고민되었다.
마침 큰언니가
수영을 배우려고 사둔 수영복이 있었다.
큰언니는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고 말았다.
"큰언니야, 내 수영 배울라 카는데 수영복 좀 빌리도."
"그래, 알았다. 잘 배워봐라."
문제는 큰언니는 살을 뺀 상태여서 수영복이 85 사이즈였다.
나는 대학에 입학해서 술자리에서 밤이 늦도록 안주도 많이 먹어서
살이 많이 쪘다. 적어도 95는 입어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수영강습에 갔더니 강습생이 영어교육과 2학년 언니 한 명뿐이었다.
선배 언니와 함께 딱 둘이서 강습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예상을 했지만, 수영동아리 학생들이 지도를 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수영동아리라 수영을 하는 거고,
학생들이 돌아가면서 지도를 하니
월요일에 가르쳐 준 것이랑 \
화요일에 배우는 것이랑 크게 연관이 없었다.
수영강습에서 검도 동아리 선배도 만났다.
검도도 멋있어 보여서
친구랑 시작했는데,
마침 셋째 언니 영의가 검도를 했어서
집에 검도복이 있었다. 죽도도.
친구와 함께 7시에 몇 번 나갔다가 발이랑 손이 다 까여서
안 나가고 있었다.
검도도 엄청나게 잘하는 두꺼비 닮은 선배는
수영도 무지하게 잘했다.
선배는 아는 얼굴이라고 수영수업이 끝나고
시원한 음료수도 사주었다.
수영을 잘 못 배워도 그런 건 또 재미있었다.
그렇게 나는 킥을 제대로 배우지도 못했고,
자유형에서 팔을 젓는 법, 호흡 등 어느 것 하나 정석대로 배운 것이 없었다.
하긴 2주 동안 수영을 배우면 얼마나 배우겠는가.
내가 20년이 지나 다시 수영강습을 받고 이후 쭉 수영을 하면서
새내기 시절 수영강좌가 자주 생각이 났다.
마침 영어교육과 언니는
호리호리하기는 했어도 미색이 아니었고,
통통한 나는 거의 뚱뚱한 상태여서
볼품이 없었다.
수영동아리 남학생들도
예쁜 미녀들을 만나볼 심산이었는데,
내심 실망을 하여
수영강습에 열심을 낼 동기 자체가 없었다.
수영동아리 내 유일한 여학생 한 명이 있었으니,
거의 탤런트 수준이었다.
콧대가 높고 롱다리에 몸매도 예술이었는데,
내가 수영강습에 갈 때마다 수영복이 바뀌었다.
"수영복이 매일 바뀌시네요. "
하고 영은이가 말을 붙이니 대답도 안 하고 쌩하고 가버렸다.
나는 괜히 말 붙인 게 무안했다.
더운 여름 집에 있어봤자
더위와의 사투를 벌일 게 뻔한데
수영장에서 몸을 물에 담그니 시원하긴 했다.
수영을 마치고 나가면,
언제나 젖은 머리로 섹시하게 바깥에 앉아
담소를 나누던 예쁜 선배한테 두 번 다시 말도 못 붙여봤다.
예쁜데 도도했던 콧대 높은 그 수영동아리 선배는
수영동아리 홍일점으로 늘 남학생에게 둘러싸여 있었다.
가을 학기가 시작되고도 자주 그 모습을 목격했다.
언젠가 교회에서 수련회를 가서 수영을 하는데, 어떤 오빠가 이야기했다.
"영은아, 니 수영 어디서 배웠노? 안 되겠다. 다시 배워야겠대이."
나는 그래도 2주간 열심히 배운 수영이었는데,
그 말을 듣고 충격을 받았다.
어쩐지 아무리 팔을 휘저어도 앞으로 안 나간다 했다.
그것은 측면으로 몸을 돌려 물의 저항을 덜 받게 하여 사이드킥을 해야 했던 것이었다.
그래도 배운 점은 있었다.
무언가를 배우려면 전문가에게 제대로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늘 마음속에 배우고 싶고,
새로운 것을 경험하고 싶은 마음은 한가득이었다.
그런데 새롭게 시작한 것을 끝까지 밀고 나가는 끈기는 없었다.
사람도 마찬가지였다.
관계라는 것은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고
갈등이 생겨도 해소하며 쌓아가는 건데
나는 싫으면 피했고,
할 말이 있어도 못했고,
싫증이 나면 때려치워버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자신이 그런 줄도 몰랐다.
어쨌거나 시행착오를 하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신나고 멋진 일이었다.
비록 제대로 배우진 못했어도
이미 그때부터,
아니 훨씬 전부터
목욕탕 냉탕에서 잠수놀이를 했을 때부터
나에게 수영은 힐링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