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예인이 요가를 해서 살을 뺐단다, 그럼 나도?
나는 늘 외모에 관심이 많았다. 고등학교 때 목표는 도달하기 힘든 몸무게 48kg.
현실은 주로 52~54kg이었다. 방법은 오직 한 가지. 굶는 거였다. 사흘쯤 굶으면
48kg이 되었다. 문제는 다시 밥을 먹으면 제자리를 찾는 것이었다.
한편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2교시 끝나고 도시락을 까먹기 일쑤였고,
수시로 매점에 뛰어가서 몽쉘통통을 사 먹었으니 나는 목표를 세웠지만, 실패감과 좌절감만 맛보았다.
일시적으로 몸무게를 줄였지만, 힘이 없어서 쓰러질 것 같았다.
나의 십 대와 이십 대는 주로 이 몸무게와의 싸움이었다.
대학교에 들어가서 마시지도 못하는 술과 안주를 먹으니 살은 더 쪘다. 대학가 앞에서 학회나 동아리 활동을 하고 나서 뒤풀이를 했다. 오떡순이라고 어묵과 떡볶이, 순대가 어우러진 볶음요리는 정말 맛이 좋았다. 국물은 가락국수인데 면은 쫄면인 쫄우동은 또 얼마나 맛있던가. 자주 가지 못하는 레스토랑의 함박스테이크는 기가 막히게 맛있었다. 육즙이 가득한 스테이크 위로 달걀이 흘러내렸다. 잘 사용하지도 못하는 포크와 나이프로 우아하게 썰면서 먹으니까 기분이 좋았다.
그리고 나는 논노 잡지를 즐겨보았다. 어느 날 미용실에서 펌을 하면서 논노 잡지의 표지모델의 스타일이 마음에 들었다. 하얀 집업니트에 까만 스커트, 그리고 하얀 부츠를 신은 모델이 멋있었다. 당장 그 아이템들을 사러 나갔다. 옷은 구하기가 비교적 쉬웠는데 하얀 부츠는 없었다. 신발가게에 가서 하얀 걸로 부탁드려서 특별 주문을 했다. 가죽 부츠를 샀다면 더 좋았을 텐데. 그땐 몰랐다. 에나멜 소재의 번쩍이는 하얀 부츠는 나의 가장 굵은 종아리에 걸려서, 안 그래도 굵은 다리를 더 굵어 보이게 만들었다.
내가 잡지의 모델이 멋있어서 따라한 패션은 모델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다. 같은 과 선배 언니들은 혀를 끌끌 찼다. "너희 엄마는 니 그래 입고 다녀도 뭐라 안 하나?"
부터 집에 들어가면 언니들은
"니, 와 그라고 다니는데?"
나는 늘 한 소리를 들으니까 위축이 되었다.
여성으로서 예쁘게 꾸미고 칭찬을 듣고 싶었는데,
반응은 차가웠으니까.
내가 외모에 관심을 가지게 된 건 사랑받고 싶어서였다.
특히 교회에서도 예쁜 아이가 새로 오면
내가 짝사랑하던 오빠도 그 아이한테 잘해주었고,
학교 축제에 가도 예쁜 아이들이 관심을 가지니까
나는 예뻐지고 싶었던 것이다.
나에게 있어 외모를 가꾸는 것은
단순이 예뻐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다.
내 삶에서 거의 모든 것이었다.
대학교에 가서는 그 정도가 심해져서
사고 싶은 옷이 있으면 눈에서 아른거렸고,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조금 마음에 안 들게 입고 학교에 간 날이면
빨리 집에 가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편하게 입고 열심히 공부해야 할 시기에
더운 여름 방학 직전 땀이 줄줄 흐르는 날,
하얀 부츠를 신고 발에 땀띠가 난 것은 참 안타까운 일이었다.
상체가 꽉 조이는 트렌치코트를 걸치고
필기하기도 어려울 만큼 팔이 들어지지 않았고,
그런 날 집에 들어가면 온몸에 몸살이 난 것 같았다.
활자는 가리지 않고 좋아하던 나는 서점에서 혼자
책을 읽거나 했고, 선물에 혹해서 잡지도 많이 구매했다.
미용실에서 잡지를 읽으며 화장법도 익히고.
어느 날 한 여성 연예인이 요가를 하고
3kg 정도 감량을 했는데,
라인이 예뻐졌다는 인터뷰를 읽었다.
패션잡지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래서 나는 요가를 시작하게 되었다.
영어강사가 되어 한창 일할 시기였다.
오후부터 저녁까지 강의를 하면 기진맥진했지만,
일주일에 두 번 부산 서면에 있는 요가라이프에 갔다.
처음 요가를 한 날,
거기서 느낀 감정은 새로움과 편안함이었다.
어려서부터 유연한 편이었던 나는
비록 하이힐을 신고 다니느라
온몸 구석구석 쑤시고 아팠지만,
좌우를 교대로 움직이는 이지요가가
시원하고 좋았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진짜 시원하게 화장실에서 볼 일을 보았다.
기적 같았다.
나는 날씬해지고 싶어서 요가를 시작했는데,
요가를 하고 나서 느낀 가뿐하고 개운한 느낌은
정말 새롭고 신선했다.
마지막 사바아사나 때 진짜 깊은 잠을 잠깐이지만 잤고,
깨어났을 때 그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당시 요가원이 얼마 없었고,
비용도 만만치 않았다.
그때도 재즈댄스를 배우러도 다녔는데,
요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
내가 청각이 예민해서 재즈댄스는 좋아해도 음악이
너무 시끄러워서 스트레스를 받던 상황이었기에,
잔잔한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이어지는 시퀀스도 마음에 들었다.
당시 이십 대 후반에 접어든 나에게
요가 강사의 모습은 경이로움이었다.
화장기 없는 말간 얼굴, 군살 없는 몸매는
어찌나 부럽던지. 감히 범접할 수 있는 세계였다.
어떻게 하면 요가 강사가 될 수 있을까? 싶다가도
역시 나에겐 무리겠지 싶었다.
영어 강사로서의 고충, 미래에 대한 불안,
임용고시에 대한 부담, 결혼에 대한 걱정 등
수많은 스트레스에 짓눌렸던 나는 요가를 만났다.
그리고 조금은 쉴 틈이 생겼다.
영어 학원에 출근하기 전
서면 롯데 백화점에서 하릴없이
돌아다니며 화장품과 옷을 사며
월급을 탕진하던 나,
발성이나 자세에 대해 잘 몰라서
하이힐을 신고 목에 힘을 주어
수업을 다하고 나면 목이 쉬고
허리가 쑤시던 나,
영어공부를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에 짓눌렸던 나,
교사의 꿈을 버리지 못했지만
준비는 힘겨워하던 나.
그런 나는 요가를 하면서
몸과 마음이 조금씩 이완이 되고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
단순히 살을 빼고 싶어서 시작한 요가,
나는 요가를 하면서 다이어트의 효과를 보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과 만났다.
그리고 과거의 후회와 미래의 불안과
조금씩 멀어져갔다.
마쉬는 숨과 내쉬는 숨에 귀기울이며
지금 그리고 여기에 머무는 것을 배워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