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자살하지 않는가?
올 2월말에 가출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한창인 때였다. 경영평가 보고서 제출을 코앞에 두고 일이 태산이었다. 집에서는 걸핏하면 버럭하시는 ‘버럭장군’ 남편과 열 살 ‘시로공주’ 따님 사이에서 아슬아슬 외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경평보고서 제출 책임을 맡은 팀장으로서 200 페이지 분량의 보고서를 점검하고 피드백을 줘야하건만, 어마무시 쌓인 일로 보고서는 손도 못 댄 채 딸 데리러 냅다 뛰어야 했다. 뛰어가서 미친 듯이 저녁밥을 차리면 따님은 뭐가 불만인지 까칠 뾰족 날을 세우고 제 엄마를 몰아붙인다. 못 참고 소리 소리 지르다 신경줄이 찢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지옥이 따로 없다. 미쳐 버릴 것 같다구!!!
‘잔소리왕비’ 급기야 옷가지 몇 개 챙겨들고 새벽에 집을 나왔다.
그날 저녁은 퇴근 걱정 접어 놓고 실컷 야근하고 찜질방으로 직진했다. 온천에 푹 담그고 고소한 김치전 찢어 입에 쏘옥 넣고, 맥주 한잔 캬아~~ 세상 요래 좋은걸! 뜨근한 구들에 대자로 뻗어 신나게 잤다. 요렇게 몇일 집안일 싸악 잊고 집중해서 경영평가 보고서를 간신히 털어냈다.
아싸, 불금이닷! 친구들 만나 한바탕 놀며 가출 신고했더니 난리다. 여자 친구들은 내 걱정, 남자 친구들은 남편 걱정, 아이 걱정이다. ‘딸내미가 엄마를 찾을 텐데... 엄마가 집 나간 거 알면 상처받지 않겠냐’며 걱정이다. 오십 넘으니 남자애들이 더 감성적이다. 솔직히, 딸 걱정 보다는 내가 견딜 수 없는 게 먼저였다. 내가 나쁜 엄마, 나쁜 아내인 것 같은 자괴감이 온 몸에 가득 차 있었다. 실컷 먹고, 돈 팍팍 쇼핑 지르고, 이뻐진 내 모습에 흡족해 하고 ‘너 나쁜 엄마 아냐, 썩 괜챦은 사람이야’라는 일방적인 친구들 응원에 제법 기분 전환이 됐다.
그렇게 마음의 때를 싸악 벗겨내고 한결 가벼운 걸음으로 교보문고로 향했다. 마음이 고플 때면 늘 책방을 찾는다. 교보문고에서 마음 가는대로 열권쯤 책을 골라 다시 찜질방으로 향했다. 수면실 구석에서 김미경의 <엄마의 자존감 공부>를 읽으며 엉엉 울었다. 그동안 딸한테 지쳐서 미웠던 마음, 일주일동안 외면했던 냉정함, 나쁜 엄마 자괴감이 뒤엉켜 알프스산맥 눈사태처럼 무너져 내렸다. 목소리가 걸걸하고 억척 아줌마 같은 김미경 스타일을 그동안 별로 안 좋아했다. 관심 있게 그녀의 강의를 들은 적도 없었다. ‘나쁜 엄마’라는 괴로움에 짓눌려 있을 때 그녀의 책이 딱 와서 들러붙었다. 자기실현을 위해 아이 셋을 돌보지 않고 때로는 모질게, 나쁜 엄마였던 그녀의 눈물담을 읽으며 나도 같이 엉엉 울었다.
찜질방에서 유시민의 <어떻게 살 것인가>도 함께 만났다.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멘붕 사회에 해독제로 쓰일 책!’
이 책의 뒷커버 카피다. 출판사에서 카피를 잘도 뽑는다.
– 본문 중에서-
"상처받지 않는 삶은 없다. 상처받지 않고 살아야 행복한 것도 아니다. 누구나 다치면서 살아간다. 우리가 할 수 있고 해야 하는 일은 세상의 그 어떤 날카로운 모서리에 부딪쳐도 치명상을 입지 않을 내면의 힘, 상처받아도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정신적 정서적 능력을 기르는 것이다. 그 힘과 능력은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 사는 방법을 스스로 찾으려는 의지에서 나온다. 그렇게 자신의 인격적 존엄과 인생의 품격을 지켜나가려고 분투하는 사람만이 타인의 위로를 받아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타인의 아픔을 위로할 수 있다."
그랬다. ‘인생이 살 만한 가치가 있다’는 확신이 없었다. 그때는...
지옥 같은 상황이 끝날 것 같지 않았다. 나 하나 눈감으면 그만이지라는 생각을 매일 했다. 고통 없이 눈 감을 수 있는 방법이 뭘까 궁금했다. 술 마시고 몽롱한 상태에서, 프라이팬에 번개탄을 피워 서서히 중독사하는게 가장 고통 없이 가는 방법이라는 얘기를 들었다. 우리 딸은 어쩌고? 그게 제일 발목을 잡았다. 다른 건 두고 가도 별 아쉬움이 없을 것 같았다. 23년간 가꿔온 나의 커리어? 개코같은 소리... 남푠? 쫌 미안하긴 하지만 잔소리꾼 마누라 사라지면 어떤 아줌씨 만나서 또 살아가겠지... 온통 이런 마음이었다. 그러다 이 책을 만났다.
"‘왜 자살하지 않는가?‘ 카뮈의 질문에 나는 대답한다. 가슴이 설레어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 있다. 이루어지기만 한다면 너무 좋아서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어오를 것 같은 일이 있다. 누군가 못 견디게 그리워지는 시간이 있다. 설렘과 황홀, 그리움, 사랑의 느낌... 이런 것들이 살아 있음을 기쁘게 만든다. 나는 더 즐겁게 일하고, 더 열심히 놀고, 더 많이 더 깊게 사랑하고 싶다. 더 많은 사람들과 손잡고 더 아름다운 것을 더 많이 만들고 싶다. 미래의 어느 날이나 피안의 세상에서가 아니라, ’지금‘ 바로 ’여기‘에서 그렇게 살고 싶다. 떠나는 것이야 서두를 필요가 없다. 더 일할 수도 더 놀 수도 누군가를 더 사랑 할 수도 타인과 손잡을 수도 없게 되었을 때, 그때 조금 아쉬움을 남긴 채 떠나면 된다."
그래... 좀 더 살아야겠다. 아직 살아야 할 이유가 이렇게 남아 있었네. 궂이 애쓰지 않아도 갈 때 되면 갈 터이니, 그 전에 좀 더 놀아보자...하는 마음이 고개를 디밀고 쑤욱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