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브런치
노후에 어떻게 살 것인가? 죄다 오십이 넘어버린 나의 친구들과 만나면 빠지지 않고 오르는 화두다. 결론은 늘 건강과 돈이다. 두 가지 관리를 잘해야 노년에 살 만하다는... 여기에 같이 놀 친구까지 있어야 행복한 노년이 될 수 있다는 것으로 결론이 나곤 한다. 모처럼 즐거운 브런치하자며 여의도 IFC몰에서 친구들을 만났다. 좋아하는 홈머스 요리를 먹으면서도 화제는 '늙어 어떻게 살아야 하나'다. 오빠가 둘이나 있는 막내이면서 아빠를 요양병원에, 엄마는 암 수술 후 집에서 수발하는 친구 A. 둘째 딸이면서 엄마, 아빠 각각 병원 모시고 다니느라 내내 고달팠는데 아빠가 먼저 떠난 친구 B. 그녀들은 서로의 상황이 너무 흡사해 말 안 해도 서로의 마음을 이해한다.
남편이 주는 생활비에서 아빠 병원비와 하루 4갑 담배와 헬스 등 아빠 용돈까지 살뜰하게 챙겼던 B는 모처럼 커피숍 알바를 하면서 번 용돈이 솔찬이 도움이 되었다. 알바가 끊기고, '아휴 힘들어..' 생각한 지 두 달 만에 독감 앓던 아빠가 갑자기 심장쇼크로 돌아가셨다. 올 1월에... '내가 힘들어하는 거 알고 아빠가 떠나셨나...' 미안한 마음에 아빠 얘기할 때마다 쫄쫄 눈물을 흘린다. 싱글인 A는 큰 오빠는 지방에 작은 오빠는 중국에 있다. 독립해 혼자 살았는데 아빠가 치매로 입원하고 수발들던 엄마마저 암수술을 하게 되자 가까이 있는 막내딸 차지가 되버렸다. 지난 주 친구들과 속초 여행 가기로 한 달 전부터 단단히 약속했건만 아빠가 병원 옮긴 첫날이라 함께 가지 못한 그녀. 직장을 그만두자 돈줄 끊기고 취미생활도 못 하고, 하루 세 끼 엄마 밥 차린다. 오늘 외출하려고 어제 바리바리 반찬 싸서 아빠 챙겨드리고 왔단다. 착한 년들...
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 나는 울 엄마한테 미안하다. 간암인지 담낭암인지 판정조차 안 받고, 중환자실/수술/연명치료 안 하겠다고 선을 딱 긋고 복수로 배가 차올라 숨쉬기도 힘들었던 엄마. 나는 하룻밤도 엄마 곁을 지키지 못한 채, 엄마가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고 끙끙거리다가 엄마를 보내버렸다. 그냥 엄마가 떠났다. 온 가족 모아놓고 당신이 암에 걸렸다, 말기다, 연명 치료 외 3종 세트 거부 선언을 한 지 5개월 만에 훌훌 떠나버렸다. 엄마 옆에 누워서 두런두런 얘기도 못 나누고, 그렇게 좋아하는 사우나도 같이 못 가고 5개월이 휘리릭 지나갔다. 그게 울 엄마의 사랑 표현인가. 나 고생 안 시키려고 암 말기까지 입 딱 다물고 있다가 너무나 쿨하게 총총 떠났다.
친구 A와 B는 ‘너 참 효녀다’ 이런 말 듣는 게 무지 짜증 난단다. 각자 자기 버전의 삶이 있다. 우리도 늙고, 부모는 병들고 떠나고... 우리 아이들이 늙으면 엄마에 대한 부담감과 애증과 복잡 미묘한 일들이 생기겠지. 아무리 싫어도 이게 삶이니까.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일이니까. 늙음, 병듦, 죽음.
‘Well Dying’을 준비하는 오십 대를 살아야 한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