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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로니아 Jan 18. 2019

엄마 손은 똥손 아냐

- 흔들어 도시락을 추억하며

<사진 출처 : 율마의 키친테이블>


성수여자중학교 1학년 1반 교실. 빳빳하게 풀 먹인 흰색 카라에 검은색 교복을 입은 단발머리 여학생 칠십 명이 빼곡히 앉아있다. 그 한가운데 드럼통보다 땅딸한 갈탄 난로가 뜨끈하게 익어 간다. 난로를 둘러싼 칸막이 네 면을 빙 돌아가며 층층이 쌓인 스텐 도시락들이 겨울 햇살에 반짝인다. 콩장, 어묵 볶음, 콩나물무침이 제일 흔한 반찬이다. 어쩌다 동그랑땡 같은 고급 반찬을 싸간 날엔 젓가락들이 빛의 속도로 움직이다가 쨍그랑 부딪치곤 했다. 뭐니 뭐니 해도 달걀프라이와 분홍색 소시지가 제일 인기가 많았다. 도시락 뚜껑을 열고 그 안에 찰싹 붙어있는 황금빛 달걀을 젓가락으로 떼어낼 때의 흡족함은 해 본 자만이 알 수 있다. 음하하하!      


도시락 반찬 칸에 담긴 김치 국물은 자주 밥을 적시고 이따금 책까지 흘러들었다. 김치 냄새 폴폴 날리는 공책을 펴서 말리는 풍경을 흔히 볼 수 있었다.      


얄궂은 깍두기 국물이 귀한 대접을 받는 때가 있었으니 ‘흔들어 도시락’을 만들 때였다. 평범한 반찬 두어 가지를 섞어 일 분 정도 흔들면 환상적인 맛으로 거듭난다. 우리 반의 명물인 흔들어 비빔밥의 최애 반찬은 깍두기와 잔멸치 볶음이었다. 사각사각한 깍두기와 쫍조름한 잔멸치가 섞여서 한 몸을 이룰 때 입안에서 절묘하게 터지며 부드럽게 넘어갔다. 이때 깍두기 국물이 밥에 촉촉하게 스며드는 게 관건인데 국물이 부족하다 보니 마지막 한 방울까지 경쟁이 치열했다.      


도시락을 흔드는 일은 생각보다 간단치 않았다. 일 분 정도 계속 흔들려면 제법 힘이 들었다. 손목에 부드러운 스냅을 넣어 강약약 중강약약, 오른손으로 흔들다 왼손으로 넘겨서 흔들어 주고 다시 오른손으로 마무리를 했다. 촌티 폴폴 나는 단발머리들이 삥 둘러앉아 일제히 도시락을 흔들며 침을 꼴깍 삼키다가 뚜껑 열고 덤벼드는 모습이라니. 1980년대 초에는 요새 학교 급식에 나오는 제육볶음이나 훈제오리 같은 반찬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심시간은 늘 까르르까르르 즐겁기만 했다.       



고등학교 3학년 때 대입 학력고사를 앞두고 한 달 동안 학교 앞 독서실에서 지냈다. 통학시간을 아끼고 ‘3당 4락’ 투혼을 불사르겠다는 결연한 의지로 부모님의 허락을 받았다. 당시 3시간 자면 대학에 붙고 4시간 자면 떨어진다는 입시 낭설이 있었다. 엄마는 매일 따끈한 밥과 반찬을 날라 주셨다. 버스로 왕복 30분이 걸리는 거리를 마다하지 않고 말이다. 4단 찬합에 점심· 저녁밥과 반찬 2통, 국을 담은 보온병까지 풀 세트 정찬이었다.   

   

그 한 달 동안 3시간만 자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렸다. 밤마다 잠을 쫓겠다고 떡볶이를 사 먹고 커피를 마셨다. 책을 보면 잠이 왔고, 독서실 통로에 이불을 깔고 누우면 멀뚱멀뚱 잠이 안 왔다. 환경이 바뀌어서 그런지 공부에 통 집중을 못 하고 헤맸다. 엄마가 맡기고 간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가지런히 누워있는 계란말이를 보니 콧등이 시큰했다.       


학교 선생님이 운영하는 독서실이라 믿을 만하다고, 공부 좀 한다는 애들이 다녔던 그곳에 이웃 학교 남자애들도 있었다. 학력고사 끝나자마자 몇몇 애들이랑 어울려 명동거리를 쏘다녔다. 남녀 짝수 맞춰서 ‘하나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연말 고아원 방문’을 빙자해 매일 만났다. 에궁... 우리 엄마는 이런 사실을 감쪽같이 모르고 떠나셨네. 딸내미가 찬합 도시락 까먹고 입시는 망치고 청춘의 꽃망울을 튀었다는 것을. 엄마 미안해요~~^^


초등학생인 우리 딸은 학교 급식을 먹으니 울 엄마처럼 하루 두 개씩 도시락 쌀 일이 전혀 없다. 현장 학습 갈 때 유부초밥이나 볶음밥을 싸 준 적은 몇 번 있다. 뭘 만져도 망가뜨리는 ‘똥손’ 엄마라 김밥조차 말지 못한다. 방울토마토랑 당근 따위를 얹어서 장식하는 귀요미 도시락 같은 건 엄두도 못 낸다.


가끔 딸에게 점수를 따고 싶을 때 비싼 등심을 사서 스테이크를 굽고 애호박이랑 버섯도 곁들여 식탁을 차린다. 남편 접시에는 삼겹살만 수북이 담아놓고 살짝 미안했다. 옆에서 딸이, “엄마 스테이크가 세상에서 제일 맛있어!”라고 말하니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한방에 사라졌다. 역시 자식의 맛있다는 말 한마디가 어미를 춤추게 한다.      


우리 엄마도 같은 마음이었겠지. 깍두기 국물로 얼룩진 ‘흔들어 도시락’ 뚜껑을 열었을 때, 4단 찬합이 칸칸이 빈 것을 확인했을 때 엄마도 환하게 웃었을 거야. 그 힘으로 10년 넘게 삼남매 도시락을 척척 싸 낸 울 엄마 손은 ‘금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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