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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3: 스위스

<Touch Down!>

by 오셍

늦가을, 제네바 공항에서 나가는 고속도로 양 옆으로 펼쳐진 나무들은 모네 나 고갱 보다 반 고흐의 그림에 더 잘 어울리는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쓸쓸하고 외로워 보였지만 분명 아름다움이 숨어 있었다. 자욱하게 내려앉은 안개가 한 몫 한 것 같다.


"웬일이야? 내가 오는데 비가 안 내리다니......" 어디만 가면 첫 날에 비가 오는 징크스가 사라진 것 같아 떨리는 마음에 동생에게 말했다.

"내가 집에서 나올 때만 해도 완전 쨍쨍하고 맑았는데 언니 데리러 제네바에 오니까 갑자기 안개가 심해지던데?"
동생이 능숙하게 차를 운전하면서 말했다. 120km/h의 속력을 내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운전하는 걸 보면 역시 큰 간의 소유자이다.


나도 한 때는 200km/h 가까운 속력을 우습게 내며 1등을 도맡아하는 카레이서였다. 브레이크라는 건 내 사전에 없다. 그렇게 운전대라고는 오락실에서 잡아본 게 끝인 나에게 동생은 능력자임에 틀림없다.

"아마 여기까지 오면서 체력이 방전돼서 언니 기운도 사그라들었나 보다." 운전을 하면서 농담도 하고 경치도 볼 수 있다니...... 와우 브라보 언빌리버블.

마지막 기내식을 먹은 지 이미 7시간 정도 지났기 때문에 체력도, 기력도 바닥났던 터라 중간에 동생이 잘 아는 태국 음식점에 들려서 밥을 먹기로 했다.


목소리 변조까지는 실패하셨지만 큰 키와 글래머 몸매를 가지신 트랜스젠더 아줌마저씨가 주인이셨다. 새우파타이와 새우 볶음밥을 먹었는데 맛도 일품이었지만 새우 하나가 손바닥만 한 것이 굶주린 사자의 배를 채우기에 안성맞춤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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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태국 음식점 앞, 보기만 해도 늦가을을 직감할 수 있다.


든든히 배를 채우고 다시 수영레이서의 차에 타고 구불구불 산길을 달리기를 20분, 드디어 내 동생 집에 도착했다. 왼쪽에는 체른마트, 정면에는 알프스 산맥, 오른쪽은 알프스 산의 최고봉 몽블랑이 보이는 전경은 한참 내 눈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야~ 이런대서 살고 진짜 부럽다 야.."신선한 공기를 마음껏 마시려고 실컷 심호흡을 하면서 말했다.
"진짜 예쁘지? 근데 살다 보면 그냥 산이고 하늘이야"
수영이가 장시간 운전에 피곤한지 목을 빼고 어깨를 돌리면서 말했다.
"여기 살다 보면 산 끝에 눈이 얼마나 내려왔나 그 경위로 계절을 가늠해요."
동생과 같이 사는 키 큰 친구, 은서가 부가설명을 해주었다.


동생은 일주일에 한 번씩 학생식당에서 일하는데 거기서 매일 일하는 학생보다 햄버거를 잘 만들어서 '햄버거 걸'로 통한다고 한껏 자랑을 했다. "그래, 그 유명한 햄버거 걸 햄버거나 맛보자"고 하고 마침 5시부터 9시까지 일을 해야 하는 동생을 따라갔다. 두꺼운 패티 위에 바삭하게 구운 베이컨까지 올려준 동생 표 햄버거와 감자튀김 플러스 화이트 와인은 정말 정말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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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고속도로를 달리며... 대~충 눈감고 찍으면 나오는 엽서. 왼쪽 사진에 보면 정말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페러글라이딩을 하고 계시는 분이 보인다. UFO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