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기를 내동댕이 치고 싶은 그 곳>
다음 날, 7시에 눈을 떠서 다시 발코니를 향했다. 끝이 하얀 눈으로 덮인 산들이 산중 산으로 겹겹이 보이고 그 위에 제트기가 거의 직선 형태로 올라가고 있어 흰 봉우리 위로 하얀 꼬리를 남겼다. 아직도 차가운 새벽 공기가 코로 들어와 폐를 간질였다. 진짜구나.. 아직도 이런 산 앞에 서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직도 피곤한 듯 동생이 부은 눈을 비비면서 일어났다. 오래 서있지는 못했다. 역시 산 위라 태양빛이 뜨거웠기 때문이다. 배고프다는 나의 닦달에 동생은 쌀을 안치고 생선을 구워 아침을 먹고, 스위스 드라이브를 시켜주겠다는 동생의 리드에 따라 차를 타고 다시 구불길을 거의 다 내려왔을 즈음 너무 아름다운 호수를 보고 동생이랑 잠깐 멈췄다 가기로 했다.
차를 앞에 대고 내렸더니 가까이에 소나무 숲이 있는지 강한 솔 내음이 후각을 자극했다.
옆에는 잔디 위에 아이들이 놀 수 있도록 자그마한 놀이터가 있었고 그 옆에 호수 위에 두 사람이 다닐 수 있을 정도의 통나무 길이 나있었다. 그 위를 걸어서 호수를 보고 있자니 뭉개 구름을 가르고 분산되는 태양빛과 끝이 하얗게 눈 덮인 몽블랑이 오리가 잔잔히 가르는 물살을 따라 살랑 살랑 움직이고 있었다. 멀리서 아이들이 웃는 소리가 미세하게 들리고 솔내음과 멋진 광경들이 합해지자 나도 모르는 사이에 깊은 한숨이 나오고 동시에 눈물이 고였다.
난 너무 주책 바가지여서 아름다운 것을 보면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난다. 아름다움을 내 눈에 담기에 벅차기에 그럴 수도 있고 자연의 경이로움에 매료되어 그럴 수도 있다. 자세한 이유는 나도 모른다. 이런 걸 나만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사진기를 들고 사진을 찍었고 사진을 확인하자마자 카메라를 내동댕이 치고 싶었다.
"뭐야? 이 정도밖에 안 담겨?"
신경이 곤두선 목소리로 말했다.
"사진 진짜 안 나오지?"
내 동생은 이미 알고 있었나 보다.
나중에 은서에게 들은 얘기지만 원래 보는 거에 10퍼센트도 사진에 담기 힘들다고 한다. 그래도 계속 찍다 보면 가끔 뽀록으로 한두 장 예쁜 사진이 나온다고 조언도 해줬다.
<사진> 호수 뒤로 이어지는 잔디 밭과 소나무가 얼마나 큰지 비교샷.
소나무 밑을 자세히 보면 솔방울 만한 내가 있다.
나무 아래 떨어진 솔방울이 진격의 거인 만하다.
호수 주변을 구경하고 수영이가 추천한다는 마을까지 30분가량 드라이브를 하고 갔다. 마을에 내리자 우리나라 절간에서나 들을 수 있는 특유의 종소리가 들리길래 수영이한테, "이 마을 절 있는 거 아냐?"라고 물어봤다. 그리고 마을을 둘러 보다가 커다란 소 두 마리가 풀을 뜯고 있는 것을 봤다. 알고 보니 이 송아지에 매달아 놓는 종이 내는 소리였는데 우리나라 워낭소리랑은 차원이 다른, 진짜절간에서 나는 종소리 같았다.
무서움을 무릅쓰고 인증 샷을 남기기 위해 슬금슬금 가까이 갔다. 펜스가 있었지만 이것들이 언제 달려 들지도 모르고 나를 계속 째려보고 있어서 진짜 오줌 지릴 뻔했지만, 나의 "실례합니다" 인사를 알아들었는지 나를 헤치지 않았다.
잽싸게 인증샷 찍고 마을을 나와서 수영이와, 친구들과 같이 치즈 퐁듀를 먹으러 갔다. 치즈에 와인을 듬뿍 넣었는지 쌉싸름한 맛이 강한 토마토 치즈 퐁듀에 바게트와 구운 감자를 찍어 먹고 퐁듀를 먹을 땐 물을 마시면 소화가 안 된다는 동생의 말을 핑계로 화이트 와인을 곁들이니 식사가 끝날 때 즈음 조금 알딸딸한 느낌을 받았다.
동생과 함께 사는 친구들과 포켓볼 치고 놀다가 집에 들어와 씻지도 않고 뻗어 버렸다. 내일부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는 우리 일정을 재확인해야 하는데 긴장이 풀렸는지 갑자기 밀려오는 피로를 이길 수 없었다.
<사진> 신기한 검정 소!
목에 엄청나게 큰 방울을 달고 있다.(앞에도 검은 물체가 있지만 동생 수영 양이고 뒤쪽에 조그맣게 나온 게 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