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거지 경보 in 밀라노!>
나라 모양도 예쁜 다리에 어울리는 장화처럼 생겨서, 유럽 문화의 꽃을 담당하고 있는 건 물론이고, 무엇보다도 세심하게 파놓은 조각처럼 생긴 남정네들이 길거리에 널렸다는 허다한 소문이 이태리를 방문 1순위 유럽 국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남자 구경하고 짝 찾으려고 유럽에 온 것은 아니지만 눈과 마음이 즐거우면 여행길이 더 가벼워지기 마련이다. 호호호.
물론 "구경"에서 그칠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나는 진라면 박스 대짜 만한 검은 가방을 등껍질처럼 매고, 패션을 짓밟고 오로지 실속만을 고려한 거대한 오리털 잠바와 미스매치의 종점, 파란 운동화까지 겸비한 모양으로, 누가 봐도 남쪽나라에서 온 배낭여행 족 이었다. 동생과 "우린 어디에 떨궈나도 잘 살 거야"라며 서로 아낌없이 격려하면서 밀라노에 도착하였다.
"어머나......"
밀라노 기차역은 왕궁을 헐어서 만들었는지, 엄청 높은 천장+ 천장과 벽에 그려진 커다란 유채 그림들 + 틈틈이서 있는 조각상+ 이를 받치고 있는 거대하고 흰 들보가, '꼬맹아, 너는 유럽에 온 거야. 우린 기차역이 이 정도라고' 라며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나라 기차역도 기왓장 하나 하나 댄 전통 궁 모양에 신라의 섬세함과 고구려의 용맹함과 백제의 부드러움이 합쳐진 조각상을 여기저기 세워놓고 풍속화와 장영실 선생님이 발명하신 해시계 중간에 딱 놔두면 너희 암 것도 아니야 ㅠ!
문화는 차이가 아닌 특색이라는 것을 힘겹게 받아들인 후, 3호선을 타고 밀라노 대성당을 찾아가기로 했다. 성당을 가려면 지하철을 사용해야 했기 때문에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바로 밑으로 이어져있는 지하철역에 들어갔다.
외국 지하철은 더럽고 탈게 못 된다는 소리가 무색하게 깔끔하고 우리나라처럼 자동 매표소가 있어서 우리처럼 유럽초짜도 쉽게 표를 뽑을 수 있게 되어있다.
우리는 좀 전에 기차역에 있는 ATM으로 유로를 뽑았기 때문에 지폐밖에 가지고 있지 않아서 10유로(13000원) 지폐를 넣고 천 원짜리 표 2장을 선택 후 표와 잔돈이 수저통 만한 동전 반환구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데...... 잔돈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기계 뒤에서 털 많은 낯선 손이 불쑥 튀어나와 동전 반환구에 손을 넣는 것이 아닌가! 순간 당혹스러웠지만 내가 그 손을 가로막고 그 순간 동생이 빠르게 동전을 수집하여 잃은 것 없이 기차표를 손에 넣었다.
그 사람을 슬쩍 봤는데 옷도 꾀죄죄한 것이 거지인가, 잘생겼다 (?). 아무튼, 난 눈이 4개나 있지만 외국에 나와서는 절대 한 눈이라도 팔지 말아야 한다...... 그 사람한테 왕빠큐나 날려줄걸.
잠시 후, 나와 동생은 밀라노 대성당을 찾아가기 위해 지하철을 탔고 밀라노 첸트랄레역에 내리자마자 사람들에 떠밀려 출구로 나와보니 정면에 똬! 웅장하면서 절제된 아름다움을 동시에 갖춘 새하얀 건물이 눈에 확 들어왔다. 가로로 긴 성당의 표면이 중간으로 가면서 높아지고 하늘도 가를 것처럼 얇고 뾰족하게 올라온 지붕과 10미터는 되어 보이는 거대한 문과 창문들, 좌우 완전 대칭형으로 안정감까지 주는 완전 내 스타일인 건물이었다.
큰 건물을 한 번에 보기 위해서 멀찌감치 떨어져서 사진을 찍고 있는데 찍으면 찍을수록 커다랗게 찍히는 흑형이 눈에 띄었다. 우리에게 다가오고 있었던 것이다. 이태리 리서치를 하면서 읽은 말인데, 흑인들이 아프리카에서는 행운의 상징이라며 0.1미리로 꼰 팔찌 같은걸 파는데 처음에는 '예쁘다'며 혹은 '공짜'라며 팔에 채워주지만 곧이어 돈을 요구한다는 내용이었다.
2미터 남짓 되는 흑형의 손에 들린 무수한 팔찌들은 귀여운 실오라기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았다.
"프리예요 프리. 아프리카에선 이게 행운의 상징이죠"
흑형이 빨간색 실오라기를 내 팔에 걸쳐주면서 말했다.
"노...... 노...... 위 아 낫 인 아프리카 (We are not in Africa)"
팔찌를 다시 돌려주며 말했다.
"프리라니까요. 이제 당신 거예요."
'예쁘다'고 채워주면 하나 사줄라고 했더니 이 사람 장사할 줄 모르네.
"노. 노.." 다시 돌려주며 얘기하는데 이제 심지어는 내 발 밑에 떨구면서 내 꺼라고 한다. 동생이 보다 보다 못했는지 한국말로 "뭐라는 거야?"화를 내면서 그 사람 발 밑에 팔찌를 빙자한 실오라기를 집어 던지고 왔다.
수영이가 말하길, 그런 사람이랑 대화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끝까지 영어 못하는 척 해야 한다고.. 내 동생은 강했다.
어느 중동 외국인 커플이 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부탁하길래 "그럼요 그럼요."라고 대답하고 사진을 찍으려고 하는데 이번에는 다른 흑형이 다가온다.
키는 1번 흑형보다 작은데 얼굴은 더 험악하게 생겼다. 나도 모르게 긴장해서 성당 전체가 잘 나오게, 예쁘게 사진을 찍어줬어야 했는데 급하게 셔터를 누르는 바람에 성당 문지방만, 그것도 옆으로 기울어지게, 찍어버렸다.
내 동생은 배짱도 좋게 그 커플에게 우리 둘도 사진을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남자는 거의 눕다시피 앉아서 정성스레 각도를 잡았다. 그 사이, 흑형이 우리 주위에 옥수수 알을 마구 던져서 비둘기 때가 주위를 감쌌다. 내 동생은 조류를 무지 무서워하는데.. 손에 든 옥수수 알을 뺏어서 모조리 씹어먹어 버리고 싶었다. 내 동생을 자세히 보면 웃으면서도 미간이 살짝 찌푸려져 있지만 대체적으로 사진은 잘 찍혔다.
<사진> 옆에서 옥수수 알을 던지는 통에 계속해서 몰려드는 비둘기 때들
바로 옆 편에 갈레리아라는 둠 형식의 길이 나있어서 그 곳을 지나 밀라노 여행을 시작하기로 했다. 아직도 놀라운 것이 어떻게 옛날 사람들이 그렇게 노오오옾은 천장을 건설하고 그 위에 그림까지 그렸냐는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도전정신은 끝이 없는 것 같다.
건물도 건물이지만 역시 패션의 도시답게 길거리를 걸어 다니는 사람들도 아주 멋스럽게 입고 다니고 상점에서 파는 옷들의 디자인도 다양하고 예뻐서 거리를 걷는데 하나도 지루할 틈이 없다. 갈레리아 거리의 중간 지점쯤 되는 바닥에는 코끼리가 그려져 있는데 이 코끼리 똥꼬에 신발 끝을 대고 한 바퀴를 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이 있다. 그런 걸 믿지 않을 뿐 아니라 산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발을 코끼리 똥꼬에 대고 싶지 않았다. 설령 그것이 그림이라고 해도.
갈레리아 거리를 나와 알지도 못하는 골목길 구석 구석을 누비면서 돌아다녔다. 이태리거리에는 트램이라는 게 지나다니는데 지하철 두 칸 정도 되는 길이에 위에 난 더듬이가 전깃줄에 이어져있고 앙증맞은 크기를 가지고 있는 차도 위의 기차였다. 자동차와 같은 신호를 받고 움직인다는 게 신기했다. 이태리거리는 우리나라 보도블록처럼 빤빤한 돌로 되어 있는 게 아니고 주먹만 한 돌을 이리저리 붙여서 만들어 놨는데 운동화를 신고도 오래 걸으면 발이 아프다. 그런데도 이태리에 많은 여성들은 힐을 신고 이 험한 길 위에서 런웨이를 한다. 독한 것들..
그러다 삐끗하면 발목 나가...
밀라노 거리를 한 시간 정도 걸어 다니니 배가 곯았다.
이태리에 왔으니 이태리 음식을 먹어봐야 하지 않겠소~ 마침 길 왼편에 오드리 헵번 사진과 로마의 휴일 명장면 등으로 가게 앞을 꾸며 놓은 음식점이 있길래 앞에 서서 한참을 고민하다가 결국 점심을 해결하기로 했다. 재즈가 흐르는 음식점 안은 더 많은 그림과 사진, 그리고 초창기에이 음식점을 세운 주인의 두상이 테이블마다 놓여있었다.
유명한 곳인가? 조용히 앉아서 잠시 우리의 등껍질을 풀어놓고 밀란 식리조또와 카푸치노와 까르보나라를 시켰다. 우리가 흔히 접하는 크림이 듬뿍 들어간 까르보나라와 다르게 잘게 다진 베이컨과 양파가 들어가고 면에는 크림이 살짝 묻어있어서 파스타 느낌이 나는 스파게티였다. 점심으로 22유로(28000원)의 거금을 쓰고 3시쯤, 쿠아드리라테로 도로 명품거리를 지나 스포르제스코성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배가 부른 후 보는 경치는 더욱 아름다웠다. 집을 짓는데 사용한 돌의 색깔과 바닥에 깔린 타일 색이 모두 파스텔 톤이어서 늦가을 낙엽과 단풍에 매우 잘 어울렸다.
스포르제스코성은 담쟁이 덩굴이 성의 거의 모든 벽면을 감싸고 있었는데 강철로 된 기사갑옷이 커다란 창문으로 비추는 것이 아주 오묘한 조화를 만들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 즈음 우리는 로마로 가는 기차를 탔다. 하루 종일 짐 가방 들고 행군을 했더니 발이 너무 피곤해서 신발을 벗고 싶었으나 신발 안에서 전해지는 뜨거운 열기로 신발을 벗으면 일어날 일을 이미 짐작할 수 있었다. 오늘 아침 묵상 말씀이 '공의를 위해 힘쓰라'가 아니었다면 얼굴에 철판 좀 깔았을 텐데. 사람들이 나처럼 나의 발 내음을 고소하게 받아들이진 않겠지?.. 괜찮아, 4시간만 참으면 너에게 로마의 따뜻한 물과 보송한 수건을 선사해줄게..
<사진> 스포르제스코성 정면과 안을 거닐면서…
낙엽도 성의 색깔도 모두 가을을 느끼기에 안성맞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