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 고난 in 로마>
오들오들~오들오들~
“하.. 추워..”
마음먹고 호스텔까지 잡았는데 냉동실 동태 모양으로 아침을 반겼다. 우리가 묶은 곳은 3층 서쪽에 위치하고 침대 4개가 가로로 뻗어져 있는 방이었다. 화장실과 샤워실은 공용이었지만 따뜻한 물도 콸콸 나오는 곳이 왜 난방이 되지 않았던 것일까? 이야기는 8시간 전으로 돌아간다.
“제일 싼 방이 얼만가요?”
수영이가 이탈리아인 두 명이 앉아있는 리셉션에 물어봤다.
“어.. 저희는 네 명 혼성 방이 제일 싸요. 두당 12유로 (15000원)입니다.”
두 사람 중 중국인처럼 생긴 사람이 말했다.
“그럼 그걸로 주세요. 두 사람이요.”
하루 종일 계속된 행군에 지친 우리는 서둘러 키를 받아 리셉션 옆 쪽에 나선형으로 된 계단을 올라 세 명만 탈 수 있는 크기의 엘리베이터를 타고 삼 층으로 향했다.
“우리 밖에 없었으면 좋겠다..”
밤이 좀 늦은 대다가 씻을 준비도 해야 하고 가방도 정리해야 하는데 혹시나 다른 여행객이 자고 있으면 방해가 될까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우리의 바람과는 다르게 우리가 지정받은 방에는 이미 통통한 금발 여행객이 자고 있었다. 우리가 방에 들어오자 흠칫 놀라더니 갑자기 케리어를 들고 꽂아놓은 키를 뽑고 나가는 것이다.
‘저 여자가 왜 저러지? 나가는 건가? 다른 방 배정받고 싶어서 저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우리 키를 그 자리에 꼽고 오른쪽 두 개 침대를 차지했다.
한참 씻을 준비를 마치고 있는데 갑자기 그 금발 여자가 다시 들어오더니 침대에 퍽 눕는 것이다. 아마 원하는 대로 안됐나 보다. 동생이랑 나는 최대한 피해를 끼치지 않도록 하자라는 생각으로 꽂아놨던 키를 뽑았다. 그래야 그 사람에게 따뜻한 어둠을 선사할 수 있을 테니까.
난방도 끊긴다는 사실을 아주 하얗게 잊은 채, 오돌오돌 떨면서 아침을 맞아야 했다.
덕분에 아침 일찍 기상도 하고 발 뻗고 잔 것과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한 것에 감사하며 아침 7시부터 성 베드로 대성당을 찾아갔다.
지하철을 타고 버스를 타고 찾아갔는데 이태리 대중교통의 특이한 점이라 꼽으면 대중교통 티켓이 시간제로 되어있는 것이다. 예를 들면 100분 동안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하는 티켓 또는 20시간 동안 지하철과 버스를 이용할 수 있는 티켓처럼. 20시간 티켓은 거의 10배 정도 비쌌기 때문에 불쌍한 남쪽나라 배낭여행 족은 감히 엄두도내지 못하여 주머니 동전 한 잎 두 잎 세가면서 100분짜리 티켓을 사서 썼는데 관광지 하나 갈 때마다 100분이 훅훅 지나가는 바람에 티켓 5번은 끊은 것 같다.
내 여행의 제 1 법칙은 ‘걸어서 45분 이상 걸리지 않는 이상 대중교통을 사용하지 않는다.’이다. 그 나라의 방식이나 문화나 사람 사는걸 보려면 도보 여행이 최고다.
로마에서도 군데군데 밀집되어 있는 관광지 덕분에 짐 가방 짊어지고! 운동화 끈 질끈 동여 매고! 열심히 돌아다녔다. 이태리는 이 골목길 사이에 또 골목길이 있고 그 골목길 사이에 또 다른 골목길이 있고 어느새 보면 이 골목길과 저 골목길은 이어져있고 이렇게 미로 같은 형식을 띠고 있어서 골목길을 걷는 재미도 아주 쏠쏠하다.
어제와 같은 차림새로 골목길을 걷고 있었는데 저 앞에서 갈색 정장에 흰색 베레모를 쓰신 할아버지가 한 손에는 지팡이를 짚고 다른 한 손에는 검정 봉다리를 가지고 돌 바닥을 턱 턱 치시면서 오시는 것이다. 그러더니 곧 바구니 달린 자전거를 가득 채운 ‘잘생긴’ 이태리 청년 한 명이 슉 지나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는 여기다! 싶어서 그들이 오던 길을 따라 가봤다. 7분쯤 걸었을까…… 즉석에서 짠 석류 주스, 알록달록 신선하고 탱탱한 과일과 채소, 각종 견과류와 파스타 종류. 우리나라 오일장 같은 모습을 갖춘 제례시장을 찾은 것이다. 배고픈 하이에나에게는 성지나 다름없었다.
흥정하는 아줌마의 모습도, 달달한 군것질 거리를 입에 물고 세상을 다 가진 표정을 짓는 아이의 모습도, 학교 끝나고 간식 사먹으러 온 학생들의 모습도, 모두 닮았다. 집의 구조는 달라도, 먹는 음식은 달라도, 입는 패션이 달라도, 보도블록이 달라도, 세상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비슷했다. 아침도 안 먹어서 뱃속에서는 천재지변이 나고 있던 터라 조그마한 위로를 주고자 즉석에서 짠 석류 즙과 치즈가 주~욱 주~욱 늘어나는 4유로짜리 샌드위치를 사서 동생과 반씩 나눠 먹었다. 우리는 가난한 남쪽나라 배낭여행 족 이니까.
<사진> 석류를 짜 주시는 분은 말레이시아 사람이신 것 같았는데 둘이서 나눠 먹을 거라고 하니 석류에 오렌지까지 넣어 두 컵 가득 주셨다.
로마에 왔으니 콜로세움을 보아야 한다. 이 집념하에 아침 10시 20분부터 콜로세움을 찾기 시작했다. 오늘 아침에 호스텔에서 받아온 커다란 로마 지도를 펼쳐 들고 우리가 가야 할 곳에 크게 동그라미 세 번을 그린 후 별표도 했다. 콜로세움까지 직접 가는 버스를 찾을 수 없어, 스페인 계단 앞에서 내려 걸어가기로 했다.
스페인 계단에서 로마의 휴일에서 나온 오드리 헵번과 같은 곳에서 사진도 찍고 지도를 따라 술렁 술렁 걸어 올라갔다. 처음 30분은, 아 이제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했는데 길은 계속 오르막 길이고 끄트머리 부러진 싸움 장은 코빼기도 안 보여서 우리 둘 다 지쳐있었는데 왼쪽 밑을 쳐다보니 백 명은 족히 돼 보이는 관광객들이 올림픽 경기장보다 더 넓은 공간에 이끼가 잔뜩 낀 돌멩이 가득한 곳에 들어가 사진을 찍고 있는 것이다. 어디서 많이 봤다 했더니 영화 ‘점퍼’ 중에 싸움 장소로 나온 곳 같았다. 뭔지 모름 + 시간 없음 이었기 때문에 대충동산 위에서 사진 삑삑 찍고 왔는데 집에 돌아와 찾아보니 그게 바로 판테온(=모든 신을 위한 선전) 이었다. 사람들은 줄 서서 돈 내고 들어가야 보는 곳을 동산 위에서 이렇게 쉬이 발견하다니. 유레카.
<사진> 신기하면 찍고 보라.
부서진 천연 기념물인지 뭔지 몰랐으나 뭔가 일 것 같아 찍어놓은 것이 사실 판테온 이었다.
1시간 30분가량 걸었는데 그 망할 콜로세움의 키읔 조차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것이, 지도에서 동서남북을 바꿔서 보고 있었다.
동생이 지도도 못 보는 지도 쟁이라고 놀렸다.
무엇보다 오후 12시 50분에 베니스로 가는 열차를 예약해놓은 탓에 당장에 기차를 타러 가지 않으면 놓칠 것이 분명했다. 시간은 12시 15분이다 되어가고 마음은 점점 초조해져 갔다. 로마에 왔는데 콜로세움을 못 보다니……
“수영아, 우리 여기서 그냥 택시 잡아타고 콜로세움 보러 갔다가 택시 타고 기차역 가야겠다. 이러다가 기차 놓치겠어..”
“언니, 여기 택시 값이 얼마나 비싼 줄 알아? 그냥 버스 타고 바로 기차역 가자”
그리고 가까운 버스 역으로 갔다. 사람 한 명도 기다리지 않는 곳이었지만 분명 버스 표지판은 있었다.
12시 20분…… 여전히 버스는 보이지 않았다.
“수영아 콜로세움은 둘째 치고 그냥 택시 타고 기차라도 타자. 이러다가 진짜 기차 놓치겠어.”
“언니, 저쪽으로 가서 타면 돼. 좀 전에 내린 데서 5분만 걸으면 되잖아.”
그리고 급하게 걸어서 정류장에 도착했다.
“아차! 우리 티켓 100 분다 되었어! 이제 못 쓰는 거 아니야?”
“근처에 티켓 파는 곳도 없고 어떡하지?”
시간도 없고 티켓도 없는 우리가 결정한 것은…… 무. 임. 승. 차.
이태리 버스는 티켓을 잘 검사하지 않아서 노숙자 친구들도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온 천하에 ‘어글리 코리안’으로 소문나고 싶진 않지만 상황이 너무 급했던 지라.. 근데 걸리면 벌금이 100만 원이다.
12시 40분……
하필 버스에서 내린 곳이 기차역에서 한 정거장 전이어서 바로 옆에 있는 지하철로 내려가서 지하철을 타고 기차역으로 갔다.
12시 47분……
“언니 뛰어!”
“끄~~~~~~아~~~~~ㅅ”
우리는 지하철 문이 열리자마자 입에서 피맛 나게 달렸다.
12시 49분……
우리는 기차역에 올라가는 에스컬레이터를 진짜 불나게 달리고 있었다.
“오! 오! 저기 스크린에플랫폼 닫혔나 봐봐!”
그리고 열차는 떠났다. 우리를 버린 채로……